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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편견에 비웃음을 날린다.

홍진희 기자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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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가씨>

[디아티스트매거진=홍진희]

조선 땅에 어울리지 않는 일식 건물과 영국식 건물을 지어 억지로 붙여 놓은 것처럼,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두 남자는 두 여성을 자신들의 목적과 취향에 맞게 강탈하고 속박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조선의 역관출신이면서 제국주의를 흠모해 진정한 일본인이 되고 싶었던 코우즈키는 그들이 찬탈할 때 쓰던 방식처럼,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고문을 해 죽이겠다는 협박으로 공포감을 심어줌으로써 히데코의 순결과 재산을 강탈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져있다. 그리고 제주도 머슴의 자식이면서 일본인 백작의 행세를 하는 또 다른 남성은 두 여성을 해방이라는 달콤한 말로 설득을 해, 이들을 조종해서 원하는 것을 얻게 될 거라는 착각에 빠져있다. 하지만 자신의 방에 목을 맬 밧줄을 준비해 둘 정도로 코우즈키의 아내가 되지 않겠다는 히데코의 해방에 대한 의지는 공포를 넘어선 것이었고, 백작은 두 여성이 가진 각기 다른 욕망이 서로를 파멸로 이끌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만들 거라고 믿었지만 사실 두 여성의 욕망은 해방이라는 같은 목표를 향해 있었다.

공주를 성에 가둔 마왕 같은 코우즈키로부터 공주를 구해내는 멋진 기사인 척 하는 가짜 구원자 백작은 스스로가 가짜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늘 그가 보고 듣던 세계 속 이야기처럼 처음에는 목적에 의해 여자에게 접근하고 티격태격하지만 결국 마왕으로부터 탈출한 두 사람은 사랑에 빠지게 되는 해피엔딩을 그는 기대했을 것이다. 히데코를 구해낸 진정한 구원자가 숙희라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구원자란 구원의 대가로 재물을 얻고 여성을 쟁취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를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그에게 젖을 먹이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진 자라는 것을 백작이 진즉 알았더라면 이 이야기의 끝은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연 ‘무지의 경계선’ 안쪽에만 머물러 있는 그가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달을 수나 있었을지 의문이다.

   
▲ 그의 가짜 신분처럼 그는 거짓 된 백마 탄 왕자이다.

코우즈키가 말하는 ‘무지의 경계선’은 남성들의 은밀하고도 변태적인 성적 판타지가 밀집해 있는 곳의 경계선을 말한다. 코우즈키의 덫에 걸린 히데코의 이모는 그 경계선을 빠져 나갈 수 없었다. 그녀는 탈출을 시도하지만 이 저택의 집사 사사키에 의해 저지당한다. 그리고 또 한 번의 탈출 시도는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만다.

사사키는 코우즈키와 혼인했음에도 일본인과 결혼하려는 그의 욕심 때문에 버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는 코우즈키 곁을 떠나지 않고 그의 곁에 남아 코우즈키 주변에 있는 여성들을 감시하고 경계한다. 그녀는 코우즈키의 억압에 저항하는 게 아니라 언제든지 속옷을 입지 않고 남성의 방에 들어갈 준비가 되어있을 정도로 코우즈키처럼 성적 판타지에 빠져있다. 그녀도 경계선 안쪽의 사람이 된 것이다.

히데코는 죽음을 선택해 이 경계선을 벗어나던가, 아니면 사사키처럼 완벽한 경계선 안쪽의 사람이 되는 길 밖에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녀의 구원자 숙희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해방의 희망을 발견한 히데코는 숙희에게 경계선 안쪽의 모습을 공개한다. 히데코의 이모처럼 두려워하며 도망치거나 사사키처럼 그 안에 안주하는 것, 그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고 이 경계선 안의 세계를 혐오하고 저주하고 경멸하기로 결정한 숙희에 의해 그 경계선은 파괴된다.

   
▲ 히데코가 원한 진정한 구원자 숙희

경계선 안에서 남성들의 성적판타지를 충족시켜주던 도구들은 두 여성이 침입함으로써 갈가리 찢겨지고 그들의 판타지는 자신들만의 변태적인 거짓 상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경계선의 파괴를 모르는 백작은 여전히 여자들은 억지로 하는 관계에서 쾌락을 느낀다는 성적 판타지에 빠져 스스로를 함정으로 몰아넣는다.

안타깝게도 코우즈키는 “미안하지만 현실 세계엔 억지로 하는 관계에서 쾌락을 느끼는 여자는 없다고” 적은 히데코의 말을 백작에게 전달해주지 않는다. 백작이 두 여성이 손을 맞잡고 하나가 되는 순간에 느낀 감정이 진정한 쾌락이었다는 모른 채 잘못된 판타지를 계속 끌어안고 떠나게 된 것이 못내 아쉽지만 한편으로 백작에게는 큰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가진 거라곤 근본 없는 허세와 남근뿐인 백작이 자신의 자만이 모두 틀렸다는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떠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그는 최후의 재산인 자신의 물건마저 지켜내고 떠난다.

오히려 백작보다 더 비참한 인물은 코우즈키이다. 재산과 변태적인 수집품들 그리고 히데코까지 남성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주던 모든 것을 거세당한 그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자신을 이런 끔찍한 상황에 빠지게 만든 백작에게도 거세의 고통을 겪게 하려 하지만 끝내 이마저도 실패해 버리고 만다. 더러운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으며 상상하는 것을 조촐한 도락으로 여기던 늙은이, 코우즈키는 모든 것을 다 잃고 히데코와 백작의 초야 이야기로 자신의 즐거운 취미를 잠시나마 즐겨보려 하지만 히데코가 자신이 아내가 되었다고 착각하는 백작의 마지막 자존심 탓에 그도 물거품이 되어 버렸으니 이 영화에서 가장 비련의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 그의 자격지심과 착각은 가장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한다.

허세에 가득 찬 두 남성의 착각을 하나하나 비웃으며 두 여성은 완벽하게 승리를 이룬다. 백작이 심어주려 하던 공포는 오히려 혐오로 바뀌어 그의 수집품들을 파괴하게끔 만들었고, 끝까지 히데코가 자신의 아내라고 믿었던 백작의 생각은 두 사람의 결혼반지가 바다에 버려지면서 그 혼자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어쩌면 이 영화는 여성을 억압하려는 두 남성이 패배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남성과 여성의 대립, 전쟁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서로 대립하다 파멸한 것은 코우즈키와 백작이었다. 히데코와 숙희는 편견에 가득 차서 자신들을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한 남성들에게 비웃음을 날려주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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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희 기자
daluma@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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