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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물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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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이 되고싶다 

   
▲ 붉은 모델, 마그리트, 1937

고통과 절망의 시간 속에 사로잡혀 있을 때면 차라리 돌이나 흙이나 나무토막처럼 아무런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사물이 됐으면 하고 생각한다.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강요나 중압감에 시달리지 않고 그저 내 안에서 고요히 머물고 싶다란 바람.

이러한 유혹이 가슴속에 일렁일 때면 나는 사물의 근원적 특성을 생각한다. 자기의식은 갖되 일체의 책임을 지지 않는 무기력한 존재양태!

 이 완전한 수동성에 대한 염원은 카프카의 소설 『변신』에도 잘 드러나 있다. 평범한 회사원으로 힘들게 돈을 벌며 가족을 부양하던 주인공이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흉측한 벌레로 변신한다는 소설의 내용은, 가정의 치욕 거리이자 저 스스로도 수치스러움을 피할 길 없는 무기력하고 하찮은 존재가 되어서야 비로소 모든 책임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 속 인물 또한 벌레로 변신한 카프카의 인물처럼 그 형태가 왜곡되고 변형되어 보는 이에게 심리적인 충격을 가한다. 나는 이런 마그리트의 그림에서 사물이 되고 싶어 하는 화가의 충동을 엿본다.

우울한 인간은 세상이 사물화 되는 것을 본다

   
▲ 마그리트, 발코니, 1950

 마그리트의 그림은 데페이즈망(Depaysment)* 화법으로, 물리적인 모순을 꾀하고 논리적인 환치를 이루며 자유롭고 변칙적인 것이 특징이다.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이 뒤바뀌고 안과 밖의 구분이 없으며 밤과 낮이 공존한다. 인물의 얼굴은 꽃, 비둘기, 사과 같은 걸로 가리어 표정과 시선을 숨긴다.

 마그리트가 재해석한 다비드의 <레카미에 부인>과 마네의 <발코니>에서는 인물이 사물로 가려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물화 되었다. 육체의 부피, 보드라운 피부, 펼쳐진 치마 옷자락, 수줍고 당돌한 시선이 모두 딱딱한 나무 관으로 처리됐다.

 얼굴과 육신이 해체된 자리.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나무 관은 부재의 공허로 채워져 있다. 마치 인생의 필수적인 변증법인 존재와 무를 암시하는 듯.

 왜 이렇게 그렸을까? 마그리트는 왜 인물의 얼굴을 지워버리고, 사물로 가리고, 천으로 뒤집어 씌우고, 종국엔 나무 널빤지로 만들어버린 걸까? “우울한 인간은 세상이 사물화 되는 것을 본다. 사물에 생명이 없으면 없을수록 그것을 숙고하는 정신은 더욱 강력하고 영민해진다”는 수전 손택의 말처럼 마그리트는 지독히도 우울했던 걸까?

   
▲ 마그리트, 레카미에 부인, 1951

 

 하얀 네글리제 소재의 잠옷을 얼굴에 휘감은 채 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한 어머니 때문에 평생 정신적 외상에 시달려야 했던 그의 일생사를 들춰보면 그에게 드리워진 우울의 그림자를 이해 못할일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림 속 사라진 육체와 그 자리에 덩그러니 놓인 텅 빈 나무 관은 죽음을 희구하면서도 막상 자살을 결단할 용기는 없는 그에게 모든 얽매임, 그러니까 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그리움, 줌음에 대한 강박증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줄 전략적인 죽음이었을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미천한 존재가 되거나 돌처럼 굳어버려 타인과 맺은 관계와 기억의 끈을 모두 끊어버리겠다는 욕망으로.

* 어떤 물체를 본래 있던 곳에서 떼어내는 것을 가리킨다. 데페이즈망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은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인 시인 로트레아몽의 유명한 시구절 ‘재봉틀과 박쥐 우산이 해부대 위에서 뜻하지 않게 만나듯이 아름다운’에서 잘 나타난다. 즉 낯익은 물체라도 그것이 놓여 있는 본래의 일상적인 질서에서 떼내어져 이처럼 뜻하지 않는 장소에 놓이면 보는 사람에게 심리적인 충격을 주게 된다. 이러한 원리에 의해서 초현실주의자들은 경이와 신비에 가득 찬, 꿈속에서만 볼 수 있는 화면을 구성했는데, 초현실주의에 의하면 이런 그림이 보는 사람의 마음속 깊이 잠재해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해방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월간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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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주 기자
motunge@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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