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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네이버영화] | ||
[디아티스트매거진=홍성빈]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이하 <당신자신>)은 홍상수식 ‘사랑’ 영화입니다. 언제나 남녀의 연애담(戀愛談) 안에 자신의 세계를 투영해왔던 그의 영화에 새삼 ‘사랑’이라는 단어를 붙여봤습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홍상수의 이번 연애담은 순진하리만큼 반복적으로 사랑을 예찬하고 또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도가 다를 뿐 전작들에 어렴풋하게나마 남아 있던 인간에 대한 냉소와 절망감이 이번 영화에서는 거의 사라져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자신>에 대한 호불호는 영화 내·외적인 이유로 극명히 갈릴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 영화에서의 ‘사랑 예찬’이 감독이 처한 상황에 대한 변명 혹은 합리화로 읽힐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언제나 신비하리만큼 절묘한 영화적 구성과 만듦새를 보여주던 홍상수 월드가 지나치게 단조로워진 게 아니냐는 느낌을 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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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네이버영화] | ||
하지만 이 영화의 미덕은 그가 끊임없이 천착해온 ‘정체성’에 관한 테마를 가장 신비스러운 방식으로 구현해냈다는 데 있을 겁니다. 어떤 문제로 인해 다툰 연인이 다시 만나 화해를 하고 진짜 사랑을 시작한다는 기본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다소 생뚱맞습니다. 영수(김주혁 배우)와 다툰 뒤 연락을 끊어버린 민정(이유영 배우)은 동네 카페에서 각기 다른 남자들을 차례로, 우연히 만나게 됩니다. 자신을 알아보며 말을 거는 남자들에게 민정은 되묻습니다. “절 아세요?” 마치 남자들을 처음 본다는 반응입니다. 남자들은 분명히 민정을 알고 있는 듯한데 말입니다. 그때부터 영화의 분위기는 미묘해집니다. 저 여자는 분명 영화 초반에 주인공 영수와 다툰 민정이 맞는데, 정작 본인은 민정이란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고 자신의 이름이 민정이 아니라고까지 말합니다. (공교롭게도 그녀가 카페에서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은 카프카의 <변신>입니다.) 관객들 역시 그녀에게 말을 걸었던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혼란에 빠집니다. 그럼 도대체 저 여자는 누구란 말이지?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민정인 듯 민정이 아닌 듯 행동하는 이 ‘민정의 얼굴을 한 존재’는 우리에게 하나의 수수께끼가 되어갑니다. 물론 이 영화는 결국 기묘한 해피엔딩을 맞이하지만, 끝내 우리는 ‘민정’이 누구인지 알 수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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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네이버영화] | ||
이쯤되면 <당신자신>을 홍상수식의 미스터리 멜로라고 불러도 무방할 지경입니다. 물론 미스터리가 속시원하게 해결될 거라는 기대는 금물. 이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홍상수의 영화니까요. 자신의 많은 작품들이 그래왔듯 그는 이 영화에서도 현실과 환상을 자연스레 넘나드는 방식을 통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너를 알지만, 나는 정말 너를 아는가?” 우리는 누군가와 깊은 관계를 맺게 되면 그 사람을 다 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그 관계가 우정의 층위에 놓여있든, 사랑의 층위에 놓여있든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타인은 결국 ‘내가 아는 만큼의’ 타인에 불과합니다. 그의 드러난 모습만을 보고 그 사람을 다 알았다고 판단하는 자체가 굉장한 폭력적 행위인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폭력 행위를 스스로는 의식도 하지 못한 채 저지릅니다. 홍상수는 그동안 18편의 영화를 연출하면서 사람들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타인에 대해 자의적으로 내리는 판단을 경계해왔습니다. 또한 모르는 것을 억지로 알려고 들거나 아는 척하려는 행위도 경계했습니다. 그의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나온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해요.”라는 대사에서 볼 수 있듯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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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에 대한 홍상수의 인식론적 성찰과 윤리는 이번 영화에도 선연히 흐르고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남자들이 ‘민정’을 알지만 끝내 ‘민정’이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는 설정은 많은 것을 시사해줍니다. 우리는 영화 속 인물들처럼, 타인을 타인 그 자체로 보려 하지 않고 그를 둘러싼 수많은 말들과 편견을 통해 보려 합니다. 그 수많은 말들이 과연 한 인간이 지닌 모든 것을 모조리 설명해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자신의 편협한 시선과 말들로만 타인을 ‘부자연스럽게’ 판단하고 옭아매려 하지는 않습니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죽을 때까지 타인의 모든 것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로지 그를 다 안다고 ‘착각’할 뿐이고, 그저 그를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할 뿐입니다. 자칫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이 진실에 관해 마치 홍상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모르는 것은 모르는 대로’ 두면 됩니다. 모르는 채로 살아가며, 그냥 있는 그대로를 느끼면 됩니다. 타인이라는 수수께끼를 억지로 풀려하지 마세요. 삶은, 사람은 원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니까요.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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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네이버영화] | ||
물론 이 영화를 이렇듯 순수한 관점으로만 관람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최근에 그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때문입니다. 유독 사랑을 강조하는 이번 신작은 홍상수의 오랜 팬조차도 마냥 편한 마음만으로 관람하기는 어려웠으니까요. (게다가 전작인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에 비하면 영화적 감흥 역시 상대적으로 덜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홍상수를 둘러싼 가십의 그림자를 잠시 접어두고 영화를 영화 자체로만 볼 수 있다면 이 늦가을에 우리는 ‘뜻밖의’ 사랑 영화를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주인공 영수가 “당신이 너무 좋아서 당신 믿을 겁니다.”라고 말했듯 이 영화는 다툼 끝에 서로를 온전히 받아들이려 노력하는 연인에 관한 홍상수식의 연애담입니다. 또한 민정이 “절 아세요?”라는 대사를 여러 번 반복했듯 보기에 따라서 이 영화는 정체성에 대한 신비로운 철학 우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영화의 관람 여부를 포함하여, 관람을 통해 어떤 것을 느끼든 그것은 전적으로 당신자신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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