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황희지] 로버트 고버는 자신의 동성애적 기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독교적 집안의 배경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큰 괴리를 느낀다. 그 자신이 소외와 혐오의 대상이었던 그는 개인의 트라우마를 정치, 사회, 종교의 차원으로 풀어내며, 작품을 통해 이야기한다. 밀랍으로 된 팔다리로부터 솟아 나온 양초들, 머리카락이 붙어 있는 치즈, 벽을 뚫고 나온 한 쪽 발 등, 지극히 평범한 것들이 기이하고 낯선 이미지로 변모된 그의 작품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두려움을 이끌어내어 우리가 지금껏 지켜온 ‘평범함’의 확신을 붕괴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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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Hairy Piece Of Rancid Cheese, 출처=https://valentinagurarie.wordpress.com | ||
고버는 억압된 사회 구조 속의 스테레오 타입,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권력과 성 정체성을 교차시킨다. 이러한 교차성은 그의 인체 조각에서 두드러지는데, 이는 개인의 정체성과 사회 구조 사이의 권력 관계를 해체하는 전복의 기제로서 기능한다. 고버의 인체 조각은 몸의 서로 다른 부분을 결합하고 충돌시켜, 인간의 물질성과 육체성을 강조하고 다채로운 정체성을 표출한다.
고버의 작업에서 인체와 성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그의 그로테스크한 인체 이미지는 정체성, 질서, 경계를 교란시키는 동성애적 욕망에 기인하며 배척되고 소외된 정체성을 대변한다. 이는 동성애자로 살아가며 떠안아야 했던 사회적 단절과 상처의 발현인 동시에 ‘정상적’ 정체성을 판단하는 생물학적, 사회정치적, 종교적 기준을 와해시킨다. 결국 그의 인체는 새롭게 태어나는 잡종적 정체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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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allpaper Forest, 출처=http://www.blouinartinfo.com | ||
구두를 신고 있는 하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나무 위에는 악보가 그려진 하얀 엉덩이가 걸려 있다. 이 작품은 신체, 담배, 신발 등 전체로부터, 또는 관계로부터 이탈한 파편들의 종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처럼 파편화된 사물들은 ‘종합’으로부터 배척당하는 요소들, 즉 사회로부터 배척된 자신의 동성애적 기질을 대변하며 ‘억압’이라는 기존의 스테레오 타입으로부터 탈피하고자 하는 그의 욕구이자 의지이다.
이성애를 강요하는 사회적 도덕성은 유년시절의 고버에게 성적 억압으로 다가왔다. 결국 그의 인체 조각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판단 할 수 없는 혼돈으로부터 파생되어 정신분열적인 심리 상태를 대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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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ntitled Leg, 출처=http://alchetron.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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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in título, 출처=http://www.abc.es | ||
벽면이나 바닥에 핏기 없는 다리를 부착한 그의 작품은 발기 중인 남성이 자신의 페니스를 신체로부터 분리된 별개의 대상으로 생각한다는 아이러닉한 유머를 내포한다. 또 절단된 남성의 가슴에 여성의 유방을 붙여 양성 동체적인 신체를 창조함으로써 남성이 ‘여성의 가슴’이라는 특정 부위에 집착하는 지각적 특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남성과 여성이 혼재된, 기이하고 불쾌한 신체는 관객들에게 충격과 거부감을 발생시킨다. 이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가 소수자를 바라볼 때와 같은 심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불쾌한 심리 속에 우리가 흔히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여성과 남성의 일반적인 성적 특징을 보여줌으로써 소수자에 대한 보편성을 확보한다. 그들은 사회의 스테레오 타입 안에서만 불쾌한 존재들로 정립된 것뿐이다.
이처럼 고버의 관심은 남성과 여성, 2개의 성으로만 정립되는 스트레오 타입으로부터 벗어나, 흔히 ‘비정상적’으로 여겨지는 존재들(동성애자, 트랜스젠더, 인터섹스 등)에 대한 ‘평범함’을 확보하는 데에 있다. 주변적인 신체로부터 찢어져 나온 비이성적인 파편들은 그의 도발적인 직관에 기인하여 주관적 표현 양식으로 정립된다.
그로테스크한 인체, 절단되고 파편화 된 기괴한 이미지들을 통해 고버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의문이다. 일상적인 것은 지금껏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고정관념이자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기도 하다. 그는 ‘동성애’라는 자신의 성향으로부터 비롯된 트라우마를 작품에 표현함으로써 자유롭게 해방되지 못하는 소수자들의 현실을 보여준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일상적인 것이 ‘억압’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 고버는 일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자르고, 찢음으로써 사회의 고착으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분리한다. 분리된 순간, 그의 정체성은 비정상적인 것도, 불쾌한 것도 아닌, 그저 로버트 고버,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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