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장현석]
<페키오 호커센터>
41 Cambridge Rd, 210041
흰 공책을 찢어 호커센터 명단을 적었다. 영화 킬빌에서 주인공이 원수들을 해치우며 하나둘 빗금을 긋듯, 가본 호커센터 위로 빗금을 그었다. 단순히 먹는게 좋아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새 도장깨는 최배달이 되어있었다.
음식이 있고 사람이 있는 호커센터에 매료되었다. 덕분에 다섯 달 남짓 동안 정복한 호커센터가 꽤 된다. 때론 한 곳을 여러 번 가기도 했다. 맥스웰 호커센터에 푹 빠져선 다양한 음식들을 맛보겠다며 닷새에 네 번을 갔다. 싱가포리언도 신기해할 만큼 열심히 다닌 호커센터지만, 원하는 음식을 모두 먹어본 것은 아니다.
![]() |
||
| ▲ Beach Road Prawn Noodle House의 프론 누들 | ||
일전에 친구를 따라 창이Changi 지역의 맛집 Beach Road Prawn Noodle House에 갔다. 돼지 육수에 큼지막한 새우와 국수가 나오는데 고소한 맛이 깊다. 먹자마자 프론 누들이 주는 느끼함과 감칠맛에 반해 한국에 돌아가 이걸 팔아야겠다고 호들갑 떨었다. 해산물을 잘 못 먹어 새우가 맛있다는 얘기를 통 해본 적이 없는데 그날은 예외였다. 좋아하는 나를 보더니 친구는 페키오 호커센터의 프론 누들을 꼭 먹어봐야한다 말했다.
![]() |
||
| ▲ 프론 누들이 유명한 페키오 호커센터 | ||
페키오 호커센터 프론 누들이 Beach Road보다 값은 싼데, 양은 많고 심지어 맛있기까지 하다고 강조했다. 멀리 사는 싱가포리언들도 이 맛을 위해 페키오 호커센터를 온단다. 눈을 반짝거리며 국물 맛을 설명할 땐 대체불가능하다(irreplaceable)는 표현까지 썼다. 도대체 어떻길래 그렇게 호들갑이냐 면박을 주면서도 못내 궁금했다.
멀리 지내던 나 역시 오직 프론 누들을 찾아 페키오 호커센터로 향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던가, MRT를 타고 내려 또 한참 걷기까지 했건만 도착했을 땐 프론 누들 스톨이 문닫은 뒤였다. 영업시간을 잘못 알아놓고선 그런줄도 모르고 신나게 찾아갔던 것이다. 무슨 영문인지 평일 오후의 호커센터에 스톨 대부분이 닫혀있었다. 황량한 건물은 식당이라기보다 몇몇 노년의 쉼터에 가까웠다.
![]() |
||
| ▲ 무얼 먹을지 모르겠다면 상장과 자격증이 많은 스톨을 찾자 | ||
프론 누들은 없었지만 바로 돌아가게는 안 됐다. 뭐라도 먹고 가자는 심산으로 불켜진 스톨들을 기웃거렸다. 사람없는 건물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듯 분주히 돌아가는 스톨이 있었다. 가게 벽면에 상장과 자격증을 잔뜩 붙인 郑兴四炒zhengxingsichao 호키엔미 스톨이었다. 호키엔미는 호키엔(중국 복건성계) 요리로 노란 mee면과 가느다란 bee hoon면을 해산물, 야채 등과 볶아낸 국수다.
![]() |
||
| ▲ 어쨌거나 양질의 호키엔미임은 틀림없다 | ||
견과류 향과 해산물 맛이 따로 돌지 않고 어울렸다. 무엇보다 물기가 적당하니 가히 훌륭한 호키엔미였다. 달리 먹을 게 없어 주문한 요리치곤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납작한 호키엔미 그릇 위로 프론 누들이 떠오르는 걸 막을 순 없었다. 어디서나 먹는 음식 말고 대체불가능한 프론 누들을 위해 여기까지 왔으니 말이다. 그릇 위 새우를 보며 작은 크기를 괜스레 원망했다. 잘 먹고 돌아가는 길에도 새삼 헛걸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이후 어느정도는 바빠서 어느정도는 게을러서 페키오 호커센터에 다시 갈 일이 없었다. 프론 누들에 대한 환상을 갖고 이따금씩 아쉬워하는 지금도 나름 만족스럽다. 싱가폴 플라이어에도 MBS 수영장에서 찍는 셀카에도 관심없는 내게, 싱가폴에 다시 갈 핑계를 하나 남겨놓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