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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 네이버 영화 | ||
[디아티스트매거진=김범진] 동기는 선의에 의해 정당화되지 않는다. 종이를 접어 만든 달은 누구의 앞길도 비추지 못한다. 달이 뜨지 않는 어두운 밤길을 홀로 걷기에는 두려워서, 발걸음이 닿는 바로 앞만 밝히고자 접은 작은 달이지만 뒤편의 태양을 비춰내지 못해 그저 검게 묻힌다.
치밀하게 직조되지 못한 삶의 옷감으로는 리카(미야자와 리에 분)가 걸치고 싶었던 흰 코트를 결코 만들지 못하였지만 그녀는 도덕을 외면하고 언제든지 깨어질 수 있는 인생의 레플리카를 만들었다. 자신의 삶에 대한 주도권을 잃고 회복하려는 의지도 크게 없는 그녀에게 찾아온 대안은 올바르지 않았으나 그녀는 어쨌든 그전과는 다르게 집중해서 교묘하게 거짓의 실타래를 풀어나갔다. 그 삶 안에서는 쓰고 싶은 만큼 썼으며 사랑하고 싶은 만큼 사랑했고 부수고 싶은 만큼 부술 수 있었다. 작고 정교한 집을 지어놓고 실컷 인형놀이를 하다가 질리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맹랑한 인생을 만들었으며 그 삶이 커질수록, 그리고 자신과 그 삶과의 거리가 가까워져서 어느 순간 가죽과 살처럼 들러붙는 자기파괴적인 속도감을 알아채기 시작했을 때, 타락보다 가파른 파멸의 경사에 올라선 가속감에 그 짜릿함에 멈춘다는 생각보다는 흥분감이 더했을 것이다.
희망을 향하여 앞으로 내딛은 리카의 발걸음의 끝에는 절망이 짓밟힌다. 이루어지지 않을 꿈과 완성되지 않을 내일의 그림을 오늘도 어제도 조금씩 채워 왔지만, 완성되기를 바란다기보다도 당연하게 미완으로 결말이 날 것을 예상한다. 허상으로 점철되고야 말 완성되지 않은 희망은 바로 완성되었기 때문에 그 때에 완벽하게 가짜로 들통날 것을 그녀는 순진하게 외면한다. 그녀의 순진함은 기초적인 사실의 무지에 기인한 순진함이 아니며, 모든 도덕의 과정들과 가치판단의 갈림길들을 알지만 무시하는 순진함이다. 그런 성질의 것을 무시하는 그녀의 대담함이 그녀가 횡령한 액수의 돈보다 더 대단하며, 그녀를 향한 다양한 시선에 담긴 각각의 복합적인 감정들은 이미 리카의 행위가 단순하게 부숴내어 아래의 선의나 악의를 밝힐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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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 네이버 영화 | ||
리카는 그냥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지금은 돈이 별로 없지만, 화장품 정도는 지갑 사정을 신경쓰지 않고 사고 싶었고 그냥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고 싶었으며 쓰고 싶은 만큼 쓰고 싶었다. 그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을 것 같으니까, 그 돈을 건네면 코타(이케마츠 소스게 분)가 행복해질 것 같았으니까 돈 같은 건 아무래도 인생에서 신경쓰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선의를 가리는 수많은 이유들보다도 그녀의 선의가 거대하지는 않았기에 사람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않는다. 작은 행복과 큰 행복은 똑같이 행복이지만 행복을 위해 새롭게 생성되는 불행이 있다면 둘은 수리적으로 계산되어 상쇄되는 것이 아니며 상쇄되더라도 흔적을 남겨 각 당사자들의 마음에 이물감을 남긴다. 기본적인 생존의지에 기인하는 이기심은 부당한 것이 아니지만 자신이 가지는 이기심만큼 타인도 그걸 가질 수 있음을, 그리고 그 마음은 점점 커져갈 뿐 결코 뒷걸음질치지는 않는다는 것을 몰랐던 리카는 그녀의 행복을 타인과 나눌 수 없었으며 인정받지도 못한다.
‘같이 갈래요?’라는 말은 그래서 뒤엉키기 전의 리카의 선의를 대변한다. 이국의 어린 아이를 돕고 싶었던 마음처럼 그녀가 가지고 있던 선의는 지금은 몰라도 시작에서는 그냥 선의였다. 수단에 대한 가치판단을 잊을 정도의 선의였으며 그건 그다지 크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녀는 그 선의로 적어도 자신의 삶의 경로에 있어서만은 다른 것들을 가리는데에 성공한다. 그런 그녀 자신만의 선의는 타인들에게 이해의 대상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결코 공감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 리카가 가린 것은 그녀의 시야에 불과하며 ‘같이 갈래요?’라는 말로는 그녀의 선의가 전달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누구의 시야도, 찰나라도 가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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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 네이버 영화 | ||
다양한 경로를 통해 얻어진 금전들은 은행이라는 장소에서 개성을 잃고 쌓여만 간다. 그 중에는 우연히 얻은 돈도 있었을 것이며 평생을 바쳐 시간을 들여 만들어낸 자신의 성과에 따른 보상이었던 돈들도 있었을 것이다. 돈이 많은 것들의 우위에 서 있는 사회에서 그건 단순한 교환가치라기보다도 개개인의 시간에 대한 평가치이며 리카가 횡령한 돈은 그녀가 지나쳐온 시간들에서 정당하게 얻어진 가치들이 아니었기에 종이로 된 지폐 자체에 불과했다. 리카가 가진 선의의 성질과 내용에 대해 판단하기 이전에, 그녀는 그런 돈들에 자신이 새로이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자격 자체가 없었으며 그건 그녀가 타인에게 공감받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개인의 행복이라는 것은 개인에게 절대적이어서 타인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알지 못했다는 것은 정당화의 이유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알지 못하지 않았으며 알았지만 무시하였기 때문에 여전히 그리고 더욱 공감받지 못한다. 삶의 닮은꼴에서의 상승과 추락의 속도감에 잠시 취했지만 그 유사함의 부족함을 무시하였고 선의로 포장된 이기심으로 뒤덮었기에 견고하지 못해 아슬아슬했다. 짧고 거친 꿈에서 깨지 못하거나 깨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결국 도망치고 만다. 그만큼 그녀의 선의는 스스로도 부정해내지 못하게 회피할 만큼 완고했으며 그랬기에 위험했다. 꾸며낸 시간들은 그녀의 사상에 있어서 메인이 아니다. 이기심은 너무나도 커서 타인을 돕고자 하는 이타심마저도 자신의 만족감을 위한 이기심의 일부로 끌어내려 버렸기 때문에, 영화 어디에서도 그녀의 선의는 동기에 의해 정당화되지 않고 그저 이기심의 한 부분으로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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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 네이버 영화 | ||
선의는 누군가의 선의에 편승하여 같이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선의가 병진하며 선의를 포장하는 수많은 가치들이 그 길을 걷는 와중에 희석됨과 동시에 개인과 타인의 완전한 분리와 그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졌을 때, 완벽한 공동체가 형성되고 완전한 개성이 상호간에 이해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더 큰 선의에 대한 공감이 형성될 수 있다. 이건 양립불가능한 시점으로 보이지만 이상이 포함하는 진행의 속성으로 감내할 수 있으며, 영화의 이물감을 떨쳐내고 발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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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 네이버 영화 | ||
알지 못하는 언어로 지껄이는 멜로디들의 한가운데에서 그녀가 뒤돌아본 곳에는 그녀의 정당화되지 못한 선의가 있었다. 선의를 수식하는 부당함은 자신의 몫으로 가져간 채 그녀는 모습을 감춘다. 그렇게 마지막 장면에는 덩그러니 선의만 남는다.
(제목은 ‘Bipolar Sunshine – Where Did The Love Go’ 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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