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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는 왜 리차드 파커가 되었을까?

김진아 기자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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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김진아]거두절미 하고 영화를 다 본 걸로 치자. 지금 우리는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고 고생했을 파이를 안타까워하는 그런 시점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에 나오는 하이에나는 요리사, 얼룩말은 선원, 오랑우탄은 어머니 그리고 뱅골 호랑이 리차드 파커는 파이 자신이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시점이다.

오랑우탄이 하이에나에게 습격을 받고 피를 흘리며 죽어가고 있을 때 리차드 파커가 등장한다. 여기서부터 등장한 리차드 파커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파이의 자아분열이 만들어낸 환상아닌 환상이다.

   
▲ ⓒ네이버 영화

S#1 리차드 파커를 훈련시키는 파이

 자아를 분열한 상태로 파이와 리차드 파커는 대면한다. 물론 어린 시절 잠재의식 속에 호랑이는 날 음식을 먹는 매서운 맹수이다. 길들여놓지 않으면 언제 그 맹수의 먹잇감이 될지 알 수 없다. 파이는 리차드 파커를 훈련시킨다. 눈을 마주치며(분열된 자아상태에서도 직관성을 유지) 자신의 방식으로 리차드 파커를 제압한다. 이제 철저히 혼자 남은 파이는 강해져야 하고 강해지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려고 요리사를 죽이지 않았는가? 그 험난했던 파이의 인생에서 첫 번째 의지가 발현된다.

   
▲ ⓒ네이버 영화

S#2 리차드 파커를 죽이고 싶은 파이

 언제고 본능이 살아나는 리차드 파커는 늘 위험하다. 완전히 훈련되어지지 않은 리차드 파커와의 위험한 동거는 보트 안과 밖을 오고가며 아슬아슬하게 이어지고 있다. 배고픈 짐승 리차드 파커는 바다로 뛰어들고 이때다 싶은 파이는 다시 보트 안으로 들어오려는 리차드 파커를 도끼로 내리찍어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눈이 마주치고 파이는 그를 죽이기를 포기한다. 파이는 죽고 싶었는지 모른다. 모든 것을 잃고 바다 위를 떠도는 자신의 처지가 점점 더 비참하고 서글퍼진다. 그렇게 자신을 해하려 했을지 모른다. 그러다 물 속에서 마주친 자신과 처음 대면한다. 그 새까만 바다에서 모든 것을 잃은 파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자신을 위로하며 도끼를 내려놓았을지 모른다. 리차드 파커의 살고 싶다는 간절한 눈빛, 파이는 자신의 그런 눈빛을 발견했을 것이다.

S#3 물고기 사냥

 선원과 눈이 마주쳤던 과거를 회상하며 파이는 괴로워했다. 하지만 선원이 미끼가 되어 잡은 물고기를 먹으며 파이는 얼마간 생명을 유지했다. 그런 파이는 커다란 물고기를 때려잡으며 미안해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을 것을 주신 신께 감사하며 감사기도와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그것을 리차드 파커에게 던져주었다. 리차드 파커를 위해 살생을 하고 감사와 회개의 눈물을 흘렸지만 결국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위해 사냥을 하고 물고기를 먹었다. 죄의식과 죄책감을 덜어줄, 자신을 대신할 리차드 파커가 필요했다.

S#4 본능 앞에서 거세게 대립하는 파이와 리차드 파커

 이미 파이는 자신의 본능과 본성을 뛰어넘었다. 더 이상 거칠 것이 없는 망망대해의 삶에 가장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다. 물고기떼가 날아들어 혼란한 가운데 커다란 물고기를 가지고 대치하는 파이와 리차드 파커. 파이는 그것을 반드시 사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짐승과 대립하는 파이. 파이 역시 짐승처럼 철저히 본능적으로 변한다. 그것은 짐승인 리차드 파커와의 대립처럼 보이지만 파이 내면의 대립이다. 먹을 것을 사수하기 위해서 강해져야 하는 본능과 반드시 먹을 것을 사수해야만 하는 생존에 대한 본능이다. 이토록 강하게 발현된 본능들을 키워나가며 파이는 자신이 살아남을 수 있는 희망을 발견한다.

   
▲ ⓒ네이버 영화

그렇다면 환상과도 가까운 식인섬은?

 한계를 극복하며 생존해가는 파이의 불안한 잠재의식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죽게될 수도 있다. 이러한 악조건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많지 않다. 나도 죽게 될 수도 있다.(식인섬에서 발견된 사람의 치아는 이렇게 나도 죽을 수도 있다는 파이의 불안한 잠재의식에서 탄생한 것)는 파이의 심리일지 모른다. 거의 죽어갈 때쯤 발견한 그 섬은 사람이 누워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편안해지고 싶은 심리상태) 그 섬에서 파이는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얻고 기력을 회복하지만 그런 그의 희망에 존재하는 이면의 불안한 심리는 쉽게 제거하지 못했을 것이다.

S#5 영원히 정글로 사라져가는 리차드 파커

 어렵게 멕시코 해변에 닿아 목숨을 구한 파이는 리차드 파커가 사라지면서 자신을 칭찬하며 귀를 움직였다고 말한다. 파이처럼이나 깡 말라버린 리차드 파커는 뒤 한번 돌아보지 않고 그렇게 영원히 사라진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파이는 오열하며 리차드 파커의 이름을 부른다. 분열된 자아의 소멸이다. 소멸은 현실을 뜻하고 철저히 혼자인 파이의 현실 인식을 뜻한다. 그동안 잊고 있던, 아니 어쩌면 스스로 리차드 파커로 분열하여 참담한 현실의 모습을 감추고 싶었던 파이는 또 다시 자신이 원하지 않는 시점에 현실을 직면한다. 비록 자신이 만들어냈지만 희망과 용기, 생존의 의지와 강한 힘을 함께 나누면 견디어냈던 모든 것들이 직면한 현실 앞에서 무참히 무너지고 만다. 그런 환상은 미련을 두지 않는다. 그래서 리차드 파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혼자 남은 파이는 자신을 위로한다. 잘했다고, 이만하면 잘 버텼다고…

 몇 번이고 이 영화를 보고 또 보고 돌려보며 무수히 만났던 파이, 영화로만은 아쉬워 소설로도 만났던 파이. 그렇게 정이 들어버린 파이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장면해석이지만 이 이야기는 파이 만큼이나 개인적인 이야기로 풀어나가도 될 것 같은, 그런 영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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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아 기자
sm10040209@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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