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영화 <지니어스>의 포스터 | ||
[THE ARTIST 매거진=민소영] [천사여 고향을 보라 Look Homeward, Angel] 로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천재 작가 토머스 울프(주드 로 역)와 뉴욕 스크리브너 사의 천재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콜린 퍼스 역)의 우정과 열정을 그린 영화 <지니어스>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이다. 쟁쟁한 배우들과 더불어 시적이며 예술적인 풍미 가득한 대사가 쉬지않고 펼쳐지기에 필자는 국내 개봉 확정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계속 일정이 잡히지 않는 것을 보아 미국에서 영화 <미 비포 유>와 동시 개봉을 했을 당시 흥행하지 못 했기 때문인 듯 보인다. 심지어 한국에서는 토머스 울프의 저서가 타 미국작가들만큼 일반인들에게 두루 읽히는 편이 아니며, 예술가에 대한 관객의 공감이 어려운 부분들이 존재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 칼럼을 쓰는 것은 특정 문화나 예술이 탄생되는데 있어 발생하는 근본적인 갈등에 대해 최근 관람한 영화 중 가장 잘 표현했기에 추천하고자 함이다.
![]() |
||
| ▲ 원고 수정에 대해 논하고 있는 맥스 퍼킨스와 토머스 울프 | ||
사소한 표현 하나 단어 하나에 담긴 그 느낌을 빠짐없이 전달할 것인가, 아니면 대중들 앞에 필요한 요점만 전달하여 여백을 선사할 것인가는 그 어떠한 예술에서건 중시되는 고민이다. 톰(주드 로 역)은 생각나는 대로 글을 적어 내려가는 작가였고, 그 어느 편집자도 여러 박스에 나누어 담을 정도로 방대한 그의 원고를 다듬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랬던 그의 재능을 알아본 맥스(콜린 퍼스 역)라는 기회를 만난다. 마치 스콧 피츠제럴드의 [천국의 이편 This Side of Paradise]가 수 년 전 찬밥 신세로 거절만 당하던 중 맥스가 그를 알아봤던 것처럼. 톰의 거침없이 흘러가는 문장들에 매혹을 느꼈던 맥스였지만, 소설은 다듬어진 빙산의 일각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를 설득하기 시작한다. 드러난 일각만으로 물 밑의 풍부한 차가움을 경험하고자 독자들이 책을 펼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 |
||
| ▲ [Of Time and The River] 집필 원고량을 보여주는 장면 | ||
자신의 유년시절, 대학시절의 사랑, 작가로서의 소명 등 자전적이며 서정적인 내용들로 이루어진 톰의 작품이었기에, 그는 한 단어, 한 문장을 지우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면서도 맥스와 함께하며 또 다른 글의 가능성을 경험한다. 특히 ‘사랑에 빠지는 장면’이 담긴 부분에 대해 서로가 주고받는 대화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한 여자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온갖 감동스럽고 황홀한 이미지들이 나열된 문장들이 있었지만, 마치 톰이 여자가 아닌 풍경과 사랑에 빠진 듯한 착각이 드는 글이었다. “그녀로 인해 그의 삶이 바뀌었지만, 그 공간 안에서 그의 변화를 눈치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중요한 거에요!” 라고 말하는 톰에게 맥스는 그 요점을 드러내라고 한다. 파랗고 핑크빛 도는 이미지들과 그의 감정이 겪은 비상함 등이 적힌 한 페이지 분량의 글은 그렇게 간략한 세 문장으로 변신한다.
![]() |
||
| ▲ 맥스 퍼킨스와의 대화 끝에 탄생한 세 문장에 희열을 느끼는 토머스 울프 | ||
‘그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파란 눈을 하고 있었다. 너무나 빠른 속도로 그녀에게 빠지는 바람에 그 어느 누구도 그의 변화를 눈치챌 수 없었다. 마침표.’
실로 마법 같은 장면이다. 그렇다고 맥스가 제시하는 방향이 언제나 가장 좋은 것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톰과의 대화에서 맥스 또한 자신의 개입으로 인해 그가 처음 마주한 톰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재창조해내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대중들의 시선을 끌고자 간략하며 번개처럼 강렬한 글들을 함께 만들어냈지만, 톰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느린 문장들은 맥스의 머릿속에만 남아있을 뿐 출판된 책에는 드러나지 않았다.
![]() |
||
| ▲ 토머스 울프와 그의 연인 엘린 번스타인 | ||
여느 뛰어난 예술가들이 그러하듯 그의 작품만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었기에, 그들의 고충과 일종의 대립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여기에는 톰의 연인이었던 엘린 번스타인(니콜 키드먼 역)과 스콧 피츠제럴드(가이 피어스)가 주요 역할을 하게 된다. 아들과 딸, 성공한 비즈니스맨이었던 남편을 버리고 무명작가 토머스 울프의 재능에 반해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된 엘린은 유명한 무대예술가였다. 번번히 그녀의 오프닝 무대를 톰은 일을 핑계로 놓치게 된다.
인생의 위엄과 자존감을 모두 버리고 헌신한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외로움이었기에 그녀는 톰이 맥스와 어울리며 창창히 발전하는 모습에 질투와 불안함을 느낀다. 죽음에 이를 정도의 알약들을 입에 쑤셔넣는 모습부터 맥스 앞에 총구를 겨누기까지 하는 극단적인 모습을 보이므로 그녀에게 톰이 얼마나 절실한지, 그리고 그가 그녀를 얼마나 무너뜨렸는지 보여주나 톰은 습관적으로 그녀를 잠시 안정시킬 뿐 그 문제를 들여다 보지 않는다.
![]() |
||
| ▲ 토머스 울프를 질책하는 스콧 피츠제럴드 | ||
스콧과 그의 아내를 마주한 저녁 식사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자존심을 앞세워 달려드는 톰의 모습에 맥스는 실망한다. 자신의 살아있는 감각들에 넘치는 재능을 선보이지만 정작 그로 인해 주변의 상처받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은 인간적이지 않다며 처음으로 질책하기까지 이른다. 되려 잃어버림으로써 그 존재가 자신에게 가져다 준 반짝거리는 순간들을 기억하는 것이 글을 살아있게 만들었다는 고백을 하고 톰은 사라진다.
추후 스콧에게도 사과를 건네지만, 진정한 우정을 못 알아보며 맥스의 흉을 보아 질타를 받게 된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연인이었던 엘린을 찾아가지만 그녀 역시 “사람이라는 존재는 당신이 생각하는 소설 같은 것이 아냐.” 라고 말하며 그가 떠남으로써 홀로 고통을 감내하며 이겨냈기에, 이제는 그를 보고도 아무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비수를 꽂는다.
![]() |
||
| ▲ 홀로 있게 된 토머스 울프 | ||
철저히 혼자가 되어버린 그는 그제서야 자신이 왜 홀로 있는지, 왜 잃었는지에 대해 눈물을 흘리는 시간을 가지게 되지만, 그마저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죽음의 문턱 앞에 왔음을 알게 된다. 죽음을 맞이 하기 이전 용서의 말과 맥스를 얼마나 소중한 우정으로 생각하는지에 대해 말하는 편지는 마지막 장면을 장식한다. 물론 그 사랑스러운 문장들이 눈물 짓게 하지만 필자는 “술 한 잔을 마시고 건물 꼭대기에 갔던 그 날의 느낌을 간직할 것이다.” 라는 글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 |
||
| ▲ 옥상에서 대화하는 토머스 울프와 맥스 퍼킨스 | ||
둘이 건물 옥상에 올라 어둠의 시대에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하여 말하던 중, 빈곤이 사방에 있는데 그들에게 글자가 무슨 소용이냐 말하며 작가의 소명의 빛이 흔들리는 톰에게 맥스는 이렇게 말했었다. 빛이 전기로 존재하기 이전, 모닥불에 모여 둘러앉은 사람 중 단 한 명이 늘어놓는 이야기만으로도 두려움을 물리쳤으리라.
글이라는 것이 단순히 글자가 아닌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며, 희망일 수 있다는 말에 얼마나 안도했을 것인가. 그랬기에 그의 이기적인 모습과 철없는 방황에 안타까움을 배로 느끼던 맥스였을 것이다. 둘의 우정과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 그들이 살아간 인생과 사랑이 참으로 아름다운 영화 한 편이 되었다. 사실 아름다운 문장 하나 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하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