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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출처 = 정동극장 공식 홈페이지] 바실라 | ||
[디아티스트매거진=송우람] 올해 초. 경주에서 출발한 발 없는 말이 서울에 도착했고, 그 소문은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바로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문화센터에서 올해 12월 31일까지 무대에 오를 ‘바실라’에 관한 이야기였다. ‘바실라’는 작년 2015년에 공연이 한 차례 이루어졌지만, 전체적인 안무수정과 더불어 이야기의 구성·전달에 관한 부분을 일부분 개선해 올해 3월 재공연이 시작 된 작품이었다. ‘바실라’는 작년에도 호평을 받으며 나름의 성과를 얻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올해 다시 무대에 오른 ‘바실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는 소문들로 가득했다.
본디 카더라통신(?)의 이야기는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필자는 08월 03일. 무더위를 피해 휴가를 떠나는 피서객들과 함께 경주로 떠났고, 소문의 근원지인 ‘바실라’의 무대를 마주했다. 무대에 대한 이야기보다 앞서 무엇보다 작품의 리플렛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이유인즉슨 “단 하나의 절대적인 퍼포먼스”라는 문구가 리플렛에 적혀 있었는데, ‘바실라’를 너무나 정확하게 정리해놓은 바람에 필자가 뭐라고 칼럼에 써야할 지 모르겠는 좌절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바실라’는 그들이 표명하는 것처럼 단 하나의 절대적인 퍼포먼스가 맞았다. 또한 “무용 공연으로서 뿜어낼 수 있는 역대 최고 수준의 에너지”와, “최고의 시각적 포만감을 선사하는 무대”라고 필자는 첨언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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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출처 = 경주세계문화엑스포 공식 홈페이지] 바실라 | ||
본격적으로 ‘바실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바실라’는 프롤로그와 피날레를 합쳐 총 11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안에는 서로 다른 문명의 충돌과 연합, 나라간의 침략과 전쟁, 영웅의 서사시까지 거대한 세계관이 녹아 있었다. 또한 ‘바실라’는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사랑과 개인의 탐욕,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달리는 한 인간까지 정밀하고도 세밀한 감정의 영역을 섬세하게 다루고 있었다. 이러한 웅장하고도 정교한 이야기를 ‘바실라’는 치열한 연출과 세밀한 계산의 안무로 충실히 끌어나갔고, 이는 필자가 ‘바실라’라는 작품을 가장 흥미롭게 지켜본 지점이도 하다. 국내에서 명실상부 실력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안무(김윤수 안무가)와 연출(최성신 연출가)이 만나 작품을 만들어 냈으니 이미 예견 된 결과임은 틀림없었지만, 최고의 창조주들이 빚어낸 최고의 세계를 온몸으로 마주한 느낌은 사뭇 색달랐다.
페르시아인과 신라인, 마술사, 고양이, 군사, 왕족 등등. 서로 다른 환경에서 비롯된 각자의 세계관과 철학을 가지고 있는 역할들이 살아 숨 쉬는 ‘바실라’는, 그만큼 하나의 ‘역할’이 무너지면 성립할 수 없는 거대한 유기적인 세계를 이루고 있었다. 또한 그렇기에 출연자들은 하나의 ‘역할’로서 작품에 충실히 임함과 동시에 거대한 작품의 틀을 훼손하지 않아야 하는 책임을 가져야했다. 마치 정교하게 짜여 맞춰진 퍼즐과도 같았다. 그 측면에서 ‘바실라’의 안무가 무대에 단순히 출연자를 존재케 하는 것이 아닌, 살아 숨 쉬게 만들기 위한 창작과정이었음을 의심할 여지없이 무대에서 알 수 있었다. 심층적인 연구에서 도출 된 것이 분명한 개인의 표현 목적이 안무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고, 그 안무를 표현하는 출연자들의 움직임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작품을 한 단계씩 쌓아 올렸다. 각각의 역할마다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이자 삶이 녹아있었던 것이다. 이 과정이 자칫 개인의 개성이 부각되어 다른 개인과 어긋나기 시작하면 너무나 허망하게 무너지는 지점임을 알기에, 새삼스레 ‘바실라’의 창조주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혹여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작품이 먼저냐, 개인이 먼저냐”의 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대목이기에 감히 필자의 얕은 지혜로 대답하자면, 작품도 개인도 아닌 관객이 먼저다. 관객은 ‘바실라’라는 하나의 작품과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개인 모두를 원하고, 그것은 관객 아래 서로가 상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작품이라는 퍼즐판과 개인이라는 한 조각의 퍼즐인 것이다. 한 조각의 퍼즐 안에 담긴 그림이 아름다워 크기를 키우거나 모양을 변형하면 그것은 좋아하는 퍼즐은 될 수 있어도 좋은 퍼즐은 될 수 없는 법이다. 거대한 퍼즐 판의 형태를 띠고 있는 무대 위에 각기 다른 그림을 담고 있는 퍼즐들은 각각의 자리와 역할이 있고, 그것이 모여 더 크고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바실라’는 필자의 의견을 뒷받침할 좋은 증거가 될 것이다.
‘바실라’는 최고급 원석들과 세공 전문가들이 만나 만들어진 공예품이자 작품이었다. 그리고 1시간 남짓한 시간을 객석에 앉아 있음을 통해 필자는 그 작품을 선물 받았다. 정교하게 깎여진 이 보석은 사실상 값어치나 성과가 더 이상 중요치 않다. 그저 두고두고 곁에서 바라보고 싶은 욕심만이 남을 뿐. 한창 시각적 효과나 자극적 소재들로 관객들의 사고를 차단하고, 즉각적 반응만을 쫓는 작품들이 범람하는 공연 예술계의 현실에서 심심한 위로(?)를 받은 감동을 곱씹으며 이만 글을 마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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