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감지나] 의도치 않게 이사를 다녀야 할 때, 익숙해진 일자리에서 내몰리는 기분을 느낄 때, 늘 보던 친구가 낯선 사람과 인사하며 내게 안녕을 고할 때, 문득 내가 서 있는 장소가 처음 갔던 여행지보다 낯설다고 느낄 때 등등,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하는 불편함들 사이에서 비로소 나는 스스로 자문해 본다. ‘나,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지?’ 그리고 마치 내 마음에 응답하듯 스크린 속 그녀가 속삭인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태양이 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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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네이버영화 스틸컷=고향을 떠나 브루클린으로 향하는 에일리스 | ||
– 익숙함과 작별하기
존 크로울리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영화 <브루클린>은 주인공 에일리스(시얼샤 로넌)의 정신적인 독립과 고향을 벗어나려는 인간의 본성을 그리고자 했다고 설명한다. 1950년대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에일리스는 항상 주변에서 칭찬을 받는 언니 로즈와 달리 의기소침하고 무능력하게 여겨진다. 로즈의 보호 아래 살아가던 그녀는 어느 날 언니의 권유로 미국 브루클린에서 새 인생을 시작한다. 사실 그것은 시한부 선고를 받은 로즈의 삶 전체와 맞바꾼 미래였다. 이후 에일리스는 지독한 향수병, 예상하지 못한 언니의 죽음,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실제의 자신과 마주한다.
크로울리 감독의 말처럼 고향을 벗어나려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근본적인 외로움을 견딜 수 없는 것도 인간의 천성인 까닭에 우리는 종종 외로움이라는 불치병을 만난다. 일상에서 변화는 때때로 박하 향처럼 상쾌하지만, 안타깝게도 정말이지 사람에게는 마치 탄성의 법칙처럼 익숙한 곳으로 다시 회귀하려는 습성이 있는 것 같다. 브루클린에 도착한 이후 에일리스는 언니가 준비해 둔 하숙집에 살며 낮에는 고급 상점의 판매원, 야간에는 회계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바쁜 일상을 보낸다. 그러나 그녀는 늘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친다.
살아있다면 저마다 끊임없이 어떤 일을 성취함으로써 자기-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그와 동시에 일상을 나눌 대상에 대한 갈급함에 목이 마르다. 이런 본성 안에서 환경이 바뀌었다고 해서 감독이 말하는 ‘정신적 독립’은 정말 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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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http://www.theatlantic.com 영화스틸컷=브루클린의 한 고급상점에서 일하게 된 에일리스 | ||
– 삶을 재건하기
에일리스는 크리스마스 봉사활동을 통해 오랜 시간 브루클린에서 수많은 다리와 수로를 건설한 아일랜드 출신 노동자들을 만난다. 그녀는 그들의 일생이 현재의 브루클린을 만들었지만 어디에서도 그 흔적이 드러나지 않았다는 걸 감지하듯 복잡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노쇠해진 그들의 모습 속에서 그녀는 자신의 불안과 슬픔을 위로받은 듯하다. 그날 밤 이후 에일리스의 표정은 밝아진다. 그리고 더 이상 혼자 방문을 걸어 잠그지 않고 친구들과의 외출을 즐기며 문 밖으로 나간다. 그녀 역시 브루클린에서 자신의 인생에 ‘다리 놓기’를 시작한 것이다.
그러던 중 에일리스는 두 남자를 만난다. 미국에서 이탈리아 출신의 배관공인 토니와 사랑에 빠져 남몰래 결혼하면서도, 언니의 장례식으로 돌아 간 아일랜드에서 부유층이자 동경의 대상이던 짐과 짧은 시간동안 마음을 나눈다. 두 명의 남자는 그녀에게 단순히 사랑의 대상이 아니다. 그 관계는 그녀가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과 미국에서의 삶을 개척하는가, 아니면 아일랜드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평온하게 살아가는가 라는 선택의 문제이다. 그것은 그녀에게 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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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네이버영화 스틸컷=에일리스와 토니, 영화 엔딩 장면 | ||
– 사랑은 멜로를 넘어 선 다른 세계로의 통로이자 마주침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살게 될 집은 나와 너의 연합을 의미한다. 에일리스는 결국 브루클린으로 돌아가 토니와의 인생을 그리기로 선택한다. 사랑을 찾아 떠나는 해피엔딩이란 헐리우드 식 결말에 실망하는 관객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토니의 프로포즈 장면을 다시금 떠올려 볼 필요가 있겠다. 그는 그녀에게 현재 황무지 같은 롱아일랜드에서 모든 가족과 집을 짓고 살아가려는 계획을 들려준다. 같은 땅 위에 내 힘으로 내 집을 짓고 함께 살아가는 것. 지금은 아무것도 없고 보이지 않지만, 집이 완공될 미래를 그리며 새로운 마을을 함께 만들며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과 결단 그리고 용기. 그것은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자 내 집을 짓는 수고로움을 겸허히 감당하려는 의지이다. 토니에 대한 에일리스의 사랑은 그 모든 것을 공유하고 지켜 내리라는 약속이다.
한편, -의존적이었던 젊은 여성이 역경을 딛고 변화한다는 식의- 일종의 영국 여류소설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플롯 때문에 영화가 조금은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느 인생 드라마가 그렇듯 영화 <브루클린>은 따뜻하다. 이는 결국 주인공이 달라지고 성장하는 모습에 어느새 나의 마음을 투사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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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http://www.silverpetticoatreview.com 영화스틸컷 | ||
<브루클린>의 로맨스를 보고 있노라면 사람과 사람 간의 애정이 떠오른다. 새로운 땅에서 살 수 있는 터전의 토대를 닦아 준 아일랜드 초기 이주민들의 노고,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신뢰로 지어진 집, 그 선택을 믿어주는 가족들의 지지, 그리고 또 함께 집을 짓고 살게 될 새로운 이웃들. 그 소소한 마음들과 보이지 않는 미래를 함께 바라보는 시선에 의해 그 땅은 또 그들의 자녀들을 통해 새로운 고향-집이 될 것이다. 그곳은 내가 직접 선택하고 건축한 나의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의미이자 공간이다. 사랑의 완성은 좋은 땅을 선택하고 천천히 쌓아 올려야 하는 집짓기 과정과 비슷하다. 진정 나 스스로가 마음에 집을 지을 줄 아는 사람이 될 때, 다른 이에게 내 집에 있는 방 한 칸을 내어 주며 사랑을 말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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