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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use the silence never stayed, 영화 <5일의 마중>

김범진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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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네이버 영화

[디아티스트매거진=김범진] 매달 치르는 기억의 장례식을 펑완위(공리 분)는 조용하게 맞이한다. 그녀는 오열하지 않으며 그녀에게만은 매달의 5일이 장례식이 아니다.

 상처로 인해 사랑으로 칠해져 있던 펑완위의 삶의 일부분이 흰 도화지가 되었다. 루옌스(진도명 분)은 매월 5일, 자신의 장례식을 치르며 아내가 가져다 놓은 자신을 애도하는 흰 꽃들에 애써 색을 칠한다. 매번 다른 색상으로, 다른 물감으로 다른 손놀림으로 칠하지만 그녀는 장례식이 끝난 다음 날에 기어이 새로운, 고운 흰 꽃을 가져온다. 루옌스는 다시 칠한다. 세월이 지나도 그의 붓은 닳지 않으며 펑완위는 자신이 가져다 두는 것이 흰 꽃임을 알지 못한다. 루옌스는 그가 채색한 꽃들을 다음에 찾아올 5일의 장례식을 기다리는 기간 동안 펑완위에게 조용하게 때로는 지독하게 아파하며 가져다 주고, 그녀는 무심하게 꽃들에게서 색을 빼간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느끼는 것처럼, 루옌스가 칠한 물감들은 펑완위의 손을 거쳐 둘 뒤에 놓은 배경을 한 달, 또 한 달이 지나는 동안 물들여간다. 그렇게 반복되는 세월 동안 둘은 둘만의 사랑을 그려낸다. 혼자서는 그릴 수 없었던 아름답고 사무치는 사랑이 한 달에 단 한 번 찾아오는 순간들이 쌓이면서 완성되어간다.

 돌아갈 수 없는 시절과 앞으로도 없는 세월 한가운데에서 펑완위와 루옌스의 머리칼은 천천히 탈색되어간다. 지나간 어제는 오늘이 될 수 없음에도 둘은 내일을 희망하며 오늘을 힘겹게 디딘다. 각자의 상실의 객체는 같으나 둘 모두는 그에 신경쓰지 않으며, 단지 기다리는 시간들은 반복되고 전의 반복과 꼭 닮은 시간들이 결코 번복되지는 않은 채 지금의 반복을 메운다. 그들의 삶은 진행되고 있겠으나 말 그대로 정지되어 구간반복만이 되풀이되고 있으며 그래서 시간의 단순한 정지보다 더 절망스럽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 출처 : 네이버 영화

 살아서 숨쉬는 자신의 장례식을 장례인지도 모른 채 그저 흰 꽃만을 가져가는 아내를 보며 그는 아스라이 사라져도 상관없을 자신의 미래와, 또는 현재의 모든 순간들을 단지 그녀가 치르는 조용한 제례의 한 순간에서만큼이라도 과거를 추모하지 않으며 내일을 희망하는 것을 조용히 돕는다. 그녀를 제외한 모두가 그녀의 일련의 행위가 추모의 절차와 일치한다는 것을 알지만서도 그녀가 모르기 때문에 바로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루옌스는 장례를 기억의 정지가 아닌 진행으로 변함없이 또는 굳건하게 유지하는 그녀를 위해 곁을 지킨다. 흡사 성불하지 못해 구천을 떠도는 영혼처럼 루옌스는 그녀의 세계에서는 더 이상 돌아올 수가 없어 죽은 자와 다를 바가 없지만 온 몸에 향 내음이 배어 더 이상 슬픔도 기쁨도 절망도 탄식도 들어설 자리가 없을 때까지 곁을 지킨다. 펑완위가 아직 그를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또는 살려내지 않았기 때문에 루옌스는 떠날 수도 남을 수도 없다. 그렇게 그는 그녀의 과거에서는 떠난 채로, 현재에서도 떠난 채로 미래에서는 기다림의 대상인 채로 멈춰버린 그녀의 기억 속에서 함께하며 그 기억 속의 자신을 바라본다. 

   
▲ 출처 : 네이버 영화

 루옌스는 떠날 수가 없다. 루옌스는 사랑하는 상대방의 기억 속의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를 옆에서 절절하게 느끼고 있다. 함께하고 싶었던 찬란한 미래는 그들에게 더 이상 없지만 남겨진 과거의 찬란함을 핥으며 위로받는 그녀의 모습에서 그는 색다른 절망과 무한한 무력감을 느낀다. 그리고 펑완위가 치르는 것은 명백한 장례는 아니다. 그녀에게는 남편이 죽은 사람이 아니며 돌아올 사람도 아니다. 너무나도 사랑했던 순간들이 외상으로 왜곡되어 내면에서 변형되었지만 사랑이라는 감정 하나만은 그대로 남아 절망과 슬픔으로 채워져갈 그녀가 남기는 세월과 삶의 발자국을 조심스럽게 메워준다. 결코 그녀는 이제는 없는 영혼을 달랠 생각도 현세에 없는 상대방의 시간들을 추모할 생각도 없다. 단지 기다릴 뿐이다. 죽은 사람을 기다리지는 않지 않은가. 

   
▲ 출처 : 네이버 영화

 영원한 사랑은 없으나 모두는 영원하다고 수식될 수 있는 사랑을 꿈꾼다. 내가 없는 미래의 어느 순간에도 상대방은 나를 사랑할 것인지, 내 묘비 앞에 놓일 꽃을 매년 바꿔줄 것인지 그렇게라도 찾아올 것인지, 묘비 앞에 조용하게 앉아 조곤조곤 남아 있는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해주며 또 나를 그리워할지, 그리고 그/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묘비에 적힌 글귀가 남겨진 그녀/그의 삶에 단 한 순간이라도 힘이 되어줄 수 있을지를 궁금해하겠으나 죽은 자는 그럴 수가 없다. 루옌스의 삶이 마냥 슬프지만도 않은 이유는 그는 실제로 죽지는 않아서 상대방의 곁을 지키며 그런 영원한 사랑의 궁금증을 일정 부분 해소하였기 때문이고, 그래서 그의 삶은 완벽하게 절망적이기도 하다.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상자를 열기 전에 가장 아름답고 신비스러우며 일단 열고 나면 그렇지 않은 것처럼, 루옌스는 영원한 사랑에 대한 의문이 담긴 상자를 본의 아니게 열었기에 선물 아닌 선물을 받아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상태로 남은 생을 살아가는 중일 뿐이다. 한 가지 알 수 있는 것은, 다행히도 루옌스는 자주 울지만 마냥 울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사랑은 아름답다고 보통 말하지만 난 아직 잘 모른다. 그렇지만 생애 가장 찬란했던 순간들을 기억하게 할 영정을 가운데에 두고 꽃혀진 흰 꽃들에 색을 칠할 사랑, 돌아오지 않을 세월에 대해 아쉬워하지만 그리고 상대방이 없는 미래를 두려워하고 힘겨워하지만 나를 잊지 않을 사랑은 보다 높은 확신을 품고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를 보고 나서 얻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보다 높아진 그 확신 하나와, 조용한 나날들의 계단을 자근자근 오르는 그 둘의 뒷모습을 언제까지고 바라볼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당연하게도, 아름다운 영화였다. 

(제목은 ‘Dustin Tebbutt – The Breach’ 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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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진
bjkim309@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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