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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부산행> 메인 포스터 | ||
[THE ARTIST 매거진=민소영]
“싸울 수 있다면 싸워라. 서로를 돕고, 만반의 준비를 해라.”
이는 영화 <월드워Z>의 마지막 대사다. 2013년 북미 지역을 제외, 해당 영화의 10% 수익을 한국이라는 국가가 이끌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 <월드워Z>에서의 좀비는 연대하고자 하는 인간의 의지, 인류애와 가느다란 희망이 존재한다면 끝까지 싸워나가야 한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기 위해 존재한다. 물론 재난과 역경을 기적같이 이겨내는 제리(브래드 피트 역)의 영웅담처럼 풀어지는 블록버스터는 매해 분기별로 재난영화를 제작하는 한국 영화 시장에서 주목 받기 충분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좀비라는 캐릭터에 유독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단순히 엔터테인의 요소 때문일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서 상영된 영화 <부산행>이 개봉을 앞두고 여러 매체에서 앞다투어 “한국형 <월드워Z>”라 평하지만 필자의 시선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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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돼지의 왕>과 <사이비> | ||
흔히들 장례식장은 죽은 이들을 위한 것이 아닌 살아있는 자들,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의 출처와 애도의 자리가 변질되었는가의 여부를 떠나 필자도 매번 죽음의 자리에서 ‘지속되는 삶’을 느낀다. 공교롭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그 ‘삶’은 희망적이거나 살아있음에 감사하게 되는 것이 아닌, 생명 유지의 연장선에 놓여진 겉치레인 경우가 많다. 필자가 영화평에 앞서 이러한 화두를 던지는 이유는 애니메이션 영화 <돼지의 왕>, <사이비>, <서울역>처럼 인간 내면의 바닥을 샅샅이 드러냄으로 연상호 감독이 영화 <부산행>으로 일깨우고 팠던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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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부산행> 스틸컷 | ||
“인간은 위기를 겪으면 괴물로 변한다.”
삶을 지속하기 위해 희생 열차를 달린 영화 <부산행>은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웅적 존재와 생존에 앞선 인류애에 대해 말한 영화<월드워Z>와는 반대의 노선을 달리고 있다. 영화에 대한 기대감이 높고 이제 막 개봉한 따끈한 신작이기에 평소와는 달리 이번 칼럼만은 일말의 스포일러 없이 작성됐다. 다만 논쟁거리들을 묶어 영화 <월드워Z>와 비교함으로 인간 내면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낼 생각이다. 그것마저도 스포라 생각한다면 영화 관람 후 읽기를 추천하며 평을 이어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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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들을 구하려는 제리(브래드 피트 역), 영화 <월드워Z> | ||
<월드워Z>, 그리고 <부산행>도 가족이라는 가장 연대감 높은 인류애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재난영화다. 그럼에도 희생이라는 소재와 제한적인 공간, 그리고 인간 내면의 선함을 드러낼 것이냐 극악의 추함을 표현할 것이냐가 핵심적 차이다. <월드워Z>는 뉴욕, 한국, 이스라엘, 세계보건기구 등 각지를 활보하며 문제를 찾아 나선다. 우습게도 정말 ‘문제’를 찾아나서 모두의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인류 구원에 가까운 생존 문제를 해결하고자, 그리고 가족을 온전히 지키고자 각계의 현장에서 혈투를 벌이는 제리의 모습은 재난 속 피해자라기보단 영웅에 가깝다. 하지만 <부산행>의 KTX 탑승객들은 다르다. 생존자들도, 좀비들도 모두가 희생자의 모습으로 둔갑하여 열차라는 좁은 공간을 더 비좁고 답답하게 관객의 마음을 조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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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행기에서 전우를 돌보는 제리(브래드 피트 역), 영화 <월드워Z> | ||
<월드워Z> 중후반부의 비행기 씬과 <부산행> 전반을 비교해보면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월드워Z>의 경우, 제리의 움직임을 파악한 승객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그의 지시에 따라 묵언의 수행을 한다. 관객의 입장에서 ‘관망’하며 ‘당연한 현명함’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겠지만, 어디서 온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의 행동에 백미터도 채 되지 않는 아비규환을 앞에 두고도 그렇게 많은 인원이 짐가방들로 벽을 만드는 차분함과 단결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렇게 <월드워Z>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기적 같은 연대를 통해 인류애를 보여줬지만, <부산행>은 처참하게도 그 반대의 상황들만 연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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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존자 칸에 있는 용석(김의성 역)과 일부 시민들 | ||
“살아 남아야 한다” 라는 것은 생각하고 보면 ‘살아서’ 무리로부터 ‘남아야 한다’라는 발상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영화 <부산행>은 말한다. 생존하고자 경험하는 극한의 두려움은 사람들을 좀비보다 더 무서운 존재로 둔갑하게 만든다. 이미 죽은 존재들인 좀비보다 살아있는 인간이 더 무섭다던 진희(안소희 역)의 말이 새삼 새롭지만은 않다. 다른 이의 희생을 불사해서라도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고자 하는 욕심 그득한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할 수만도 없는 자신을 마주하는 것도 달갑지만은 않다. 물론 극단으로 치우친 이기심은 그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 그렇지만 비단 두려움 앞에서 용기 내어 남에게 손을 뻗어주기란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관객들은 숨 죽이며 그 다음 희생자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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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들의 다툼에 두려움을 느끼는 진희(안소희 역) | ||
그럼에도 비단 희생으로만 끝나는 재난이라면 의미가 없을 것이다. 자신과 자신의 아이만을 생각하던 증권 펀드매니저, 사람들 피 빨아먹는다며 일명 개미핥기로 불리던 석우(공유 역)는 다른 이들에게 자비와 관심을 베푸는 딸 수안(김수안 역)에 의해 조금씩 자신과 주변의 모습을 돌아본다. 그 역경 속에서도 함께 생존의 생명줄을 맸던 전우애에 가까운 동지들을 통해 또 다른 인류애가 묘사된다. 이는 필자가 특별히 기대하고 있던 영국(최우식 역)에게서도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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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고 있는 수안(김수안 역)을 안고 있는 임산부 성경(정유미 역) | ||
아이들만큼 용기있고 정의로운 존재도 없는 것이,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발벗고 나서서 누군가를 돕는 곳에는 항상 어른이 아닌 아직 너무나도 어린 손길들이 있다. 비단 영화라고만 하기에 필자는 가슴이 시렸다. 어떻게 해서든 부산이라는 안전지대에 도달하고자 사랑과 정을 무릅쓰는 이들이 존재하기에 영화 <부산행>도 끝까지 달린 것이리라. <월드워Z>처럼 관객들에게 “살아남았다!” 라는 희망의 쾌재를 주기보다, 끝없이 달린 기차에 남은 선명한 핏자국만이 사람다움을 그리고 있는 <부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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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호차에서 13호차로 진입 준비하는 상화(마동석 역), 석우(공유 역), 영국(최우식 역) | ||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는 다양한 영화들 속에서도 가장 핵심은 실낱 같더라도 그 속에 존재하는 희망이다. 영화 <부산행>은 블록버스터로 즐기기 만은 어려운 다소 무거운 주제가 존재한다. 물론 천하무적인 아내 바보, 딸 바보로 등장하는 상화(마동석 역)와 충격과 공포로 등장해 여전한 연기력을 뽐내며 KTX내 첫 감염자로 등장하는 심은경까지, 엔터테인의 요소는 분명 존재한다. 삶이라는 것이 그렇다. 역경 속에서도 드라마와 코미디는 존재한다. 다만 종착역까지 달려가는 우리 모두의 발치 앞에 햇빛이 드리워져 있다고 해서 마냥 안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 <부산행>이 주는 가치관에 대한 호불호와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수시로 오르내릴 것을 안다. 사회에 대한 시선이 담겼다고 평하기 이전에, <부산행>이 말하고 싶은 도착지는 아마도 인간의 선함일 것이며 터널 끝의 빛일 것이다. 그 빛이 쓰라린 것은 둘째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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