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박현석] 최근 여유가 생기면, TED에 들어가서 ‘Design’을 검색하고 그에 관련된 강의를 듣는 취미가 생겼다. 이런저런 강의를 보면서 느끼는 것은, 분명 디자인을 검색했건만 디자인 그 자체만을 주제로 하는 강연뿐만 아니라 타학문과 융합된 형태의 디자인들에 대한 강연도 많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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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rbnb 브랜드 로고 / 출처-wearedesignstudio.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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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리 옥스만과 3D printed Gemini acoustic chaise / 출처-blog.stratasys.com | ||
여행 좀 다녀본 사람이라면 잘 알 법한 에어비앤비의 최고제품책임자인 조 게비아라든지, MIT 미디어랩 교수인 네리 옥스만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조 게비아의 경우에는 명시적인 학문간 융합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복지와 디자인이 융합되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네리 옥스만의 강연의 경우는 순전히 디자인 강연이라기보다는 생물학과 소재공학 강연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이 두 발표자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둘 다 ‘디자이너’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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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스틴 엘린의 triptych_front_wide / 예술가로서의 그의 작품 / 출처- dustinyellin.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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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스틴 엘린의 triptych_back_wide / 예술가로서의 그의 작품 / 출처- dustinyellin.com | ||
처음 강연을 봤을 때는 ‘무슨 의미에서 디자인이라는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이 어렴풋이 정리된 것은 현대 예술가 더스틴 엘린의 강연을 보면서 정리가 되었다. 그의 강연이 직접적으로 큰 연관성을 갖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응용을 해서 이해하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세상을 하나의 상자로 정의한다. 그리고 이 상자 속에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인간들이 있고, 그 뿐만 아니라 장소, 사물 등등이 들어있다. 그리고 상자가 흔들릴 때, 이 각각의 요소들이 ‘서로 입자처럼’ 부딪힌다. 그는 이것을 세상을 변혁, 변화시키는 방법이라고 했다. 내 나름대로의 정리는 이렇다. ‘요소’라는 단일개체만으로는 변화를 일으키기 힘들다. 하지만 ‘부딪힘’이라는 이름의 상호작용이라는 것을 변화가 더 수월하게 일어나게 한다. 단일개체로써 승부를 보는 방식은 정직할 수는 있으나, 모든 개체들이 단일개체로써 승부를 봤을 때처럼의 발전성은 미비하다. 그 당시라면(물론 단순한 추측이지만) 누구든지 맨땅에서 시작하기에 기반이 없었을 것이고 정직한 것이 가장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 사회는 많은 발전을 이뤘고 이루고 있다. 정직한 것이 효율적이기는 어려워진 것이다.
지금까지 나의 글을 읽는다면 주제와의 연관성은 찾기 어렵다. 하지만 위 글의 내용으로부터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중요하고, 꼭 말하고 싶은 내용의 근거를 추출해 낼 수 있다. 조 게비아나 네리 옥스만으로부터 ‘본질을 잃지 않는 자세’를, 그리고 더스틴 엘린으로부터 ‘끊임없는 상호 작용의 필요성(=끊임없는 공부의 필요성(글의 진행상 임의로 ’공부‘를 상위범주로 지정하고, 정의함)’을 배웠다. 이러한 것들은 특정적으로 디자이너가 아닌 어느 누구에게도 해당될 수 있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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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공부에 대해서 다시 정의해봐야 될 것 같다. 공부라는 말을 듣는다면 일단 무엇이 떠오를까? 일반적으로 공부에 대한 좋은 인상을 받기보다는 ‘지긋지긋한 것’, ‘힘든 것’, ‘어쩔 수 없이 하는 것’라는 식의 생각이 든다. 정말 요즘처럼 공부를 많이 하는 시대도 없을 것 같다.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보는 받아쓰기는 어느새 훌쩍 커서 취업시험이 되었다. 단순히 이름만 바뀐 것도 아니다. 시험에 대한 부담감은 고스란히 공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되어서 공부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으로 만든다. 그런데 왜, 그리고 언제부터 공부를 단순히 시험을 봐야하기 때문에 하는 것으로 제한하는 것일까?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공부를 학문이나 기술적인 것으로 제한하고 있다. 얼마 전에, MBC의 ‘시사매거진 2580’에서 세계일주를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었다. 세계 일주라는 말을 들으면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냥 여행 갔다 왔구나.’정도로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내용을 보게 된다면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세계 일주를 갔다 온 사람들은 여행 도중의 다양한 희노애락을 겪음으로써 인간적으로 성숙하였고, 가치와 인식의 큰 변화를 겪었다. 단순히 학문적인 공부를 통해서 얻지 못하는 것을 ‘배운 것’이다. 인생 공부를 한 셈이다. 이처럼, 공부는 학문이나 기술적인 것으로만 제한되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이 다양한 방법의 공부가 된다. 조 개비아의 경우에는, 젊은 시절에 자기 집 거실에 처음 만난 외지인을 재움으로써 에어비앤비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경험이라는 이름의 공부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또한, 그는 사업을 진행하던 도중 경험을 통해서 고객, 그리고 고객 간의 신뢰를 얻는 방법을 배웠다. 우리가 기존에 생각하는 공부(학문, 기술에 제한)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것은 공부가 아닌 것인가? 아니다!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면, 그리고 더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공부인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공부를 한다는 것은 특정대상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다 해당되는 것이다.
모든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배우는 행위는 좋다. 하지만 그것에 안주해 버린다면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 공부를 하는 것을 즐기기에는 너무 어려워진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 자신이 안주하는 순간에도 나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발전해나가고 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들었을 때의 일이다. 전공교수님이 과제를 내주시면서 ‘우리 때는 프로그램 같은 거 없어서 판넬 같은 거 만들면 일일이 손으로 다 그리고 자르고 다 했는데, 요즘은 참 편한 거 같아요.’라는 말씀을 하셨다. 당시, 내가 1학년이기도 했지만 속으로 드는 생각은 ‘나는 아닌데 어쩌라고?’였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바뀐 거는 정말 얼마 안 된 후였다. 다음 학년이 되면서 신입생들이 새로 들어오게 되었고, 1학기가 끝날 때 쯤 신입생 후배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 중 그 후배가 말했던 불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자기네들 학번부터는 필수적으로 프로그래밍을 하는 수업을 이수해야하는데, 그 수업을 들어야 되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 수업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어떠며~, 뭐는 또 어떤데~ 식의 불평을 하는데, 나는 부러움과 겁이 들었다. 이 신입생 후배는 좋든 싫든 간에 프로그래밍 수업을 들어야만 될 것이고, 이수 후에는 전문가 정도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프로그래밍에 대해서 이해를 할 것이라는 점에서 부러움을 느꼈다. 그리고 10년, 20년 후에는 대학생들은 기본적으로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알게 될 것이고, 나는 전공교수님과 똑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니 겁이 났다. ‘내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은 것들이 나중에는 기본적으로 누구나 하는 것이 된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대수롭게 생각했었기에, 배울 생각을 하지 않았고 남들보다 퇴화한다.’라는 생각을 하면은, 소름이 돋는다. 비록 정의는 최근에 했지만, ‘끊임없는 상호작용,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 이때였을 것이다. 특히, 디자인처럼 유행에 민감하고, 변화에 빠르게 발 맞춰야 되는 분야에서는 더더욱 필요한 것이다. 공부할 수 있다면 다양한 방법으로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만 한다. 단순하게 미적 가치와 실용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디자인은 지금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 그 중 눈에 띄기 위해서는 특별해야만 한다. 문화에 대한 이해는 기본이고, 스토리텔링이 담겨져 있고, 미적이며 실용적 이여야 하며……정말 충족해야 할 게 너무 많다. 단순히 디자인 하나만을 공부한다고 이것이 가능할까? 나는 힘들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경험이던 독서건 간에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공부해야한다. 인맥을 만드는 것이 공부가 될 수도 있고, 운동을 하는 것도 공부가 될 수 있다. 배우면 배울수록 다다익선인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 잘 나오는 반론이 있다. ‘하나라도 제대로 해라!’이다.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본질의 중요성을 생각해보게끔 하는 반론이다. 비록 끊임없는 공부를 강조했지만, 본질을 잃으면은 안된다. 예를 들어, 전공이 A인데 막상 전공보다는 새롭게 배우는 B라는 전공에 관심이 쏠려 전공을 소홀히 하는 사례를 들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결과는 A와 B중 어느 쪽도 아닌 어중이가 되는 경우가 많다. 어느 분야, 어떤 전공이 되었건 간에 같다고 생각하지만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되는 것은 최악이다. 전공이 A라면 A에 집중을 하는 게 맞다. A를 배우러 와서 B에 집중한다? 애초에 B를 전공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A를 배우러 와서 어중간하게 B를 배우는 사람과 처음부터 B를 전공한 사람의 수준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쉽게 답이 나올 것이다. 물론, 개인의 노력에 따라서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긴 하다. 하지만 대부분이 어중이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본질을 잃어서는 안 된다. 서론에서 조 게비아와 네리 옥스만의 공통점으로 언급했던 것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본질에 ‘디자인’을 놓고 공부를 하였고, 자신들을 ‘디자이너’라고 지칭한다. 서론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들의 강연에서 어느 부분을 디자인적 관점에 근거해서 이해해야 하는지가 어렵다. 일반적으로 디자이너라고 하면은 무언가를 그려내고 만들어내는 것을 많이들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디자이너는 단순한 생산직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진짜 그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디자인적 사고이다. 디자이너는 연구, 관찰하는 과정에서 영감을 얻어 새로운 것을 창조 혹은 발견하는 직업이다. 조 게비아와 네리 옥스만의 강연을 본다면 그들이 영감을 얻는 과정이 보일 것이고, 이전 과정으로 연구하고 관찰하는 과정 또한 보일 것이다. 그리고 결과물을 창조 혹은 발견하는 과정에서 ‘경험’이라는 공부가 혹은 ‘생물학’, ‘재료공학’이라는 공부가 도구로 사용되었다. 그들은 전반적인 과정에서 본질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끊임없이 필요로 혹은 경험적으로 해왔던 공부들이 훌륭한 도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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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생각하는 디자이너 / 출처-magix.com | ||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강조했었던 ‘본질을 잃지 않는 자세’와 ‘끊임없는 상호 작용, 공부의 필요성’이다. 여기에 덧 붙여 본다면 ‘지금에 안주하지 않기’이다. 본질을 잃지 않는 것과 끊임없는 상호 작용, 공부의 필요성의 경우 그 누구에게나 다 해당될 수 있는 말이며, 정말 기본적인 것이다. ‘지금에 안주하지 않기‘ 또한 기본적이지만, 디자인을 하는 사람에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디자인처럼 유행에 민감하고, 변화에 빠르게 발 맞춰야 되는 분야에서 안주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것이다. 지금에 안주하지 않는다면 보다 의미 있는 상호작용, 공부를 할 것이다. 그리고 본질을 잃지 않는 자세를 갖춤으로써 하고자 하는 일의 방향성을 설정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각 요소는 서로 맞물려서 개인의 변화, 변혁을 이룩하게끔 할 것이다.
Joe Gebbia
http://www.ted.com/talks/joe_gebbia_how_airbnb_designs_for_trust
Neri Oxman
http://www.ted.com/talks/neri_oxman_design_at_the_intersection_of_technology_and_biology
Dustin Yellin
http://www.ted.com/talks/dustin_yellin_a_journey_through_the_mind_of_an_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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