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UINE BEAUTY OF ARTISTRY.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은서형 기자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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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포스터 | ||
[디아티스트매거진=은서형] 먹먹하다. 눈앞에 놓인 흰 종이가 너무 새하얘서 더 가슴이 먹먹하다. 뭐든지 처음이 어렵다. 글도 그렇다. 긴 대장정의 첫걸음 격인 첫 문장을 고르는 일은 간단치 않다. 단추도 처음을 잘 꿰야 옷을 바르게 입을 수 있듯 글도 첫 문장을 옳게 써야 옳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내 이견(意見)이다. 그래서 썼다 지우고 또 썼다 죽 그어버리고 책상 위에 놓인 흰 종이를 빤히 들여다보고 모니터 안에서 깜빡이는 커서를 멍하게 들여다보는 것도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내가 계속 펜을 쥐고 있는 건 글이 주는 매력 때문이다. 머릿속에 얽힌 ‘생각 실타래’를 흰 종이에 풀어놓고 정리를 하다 보면 글이 정리되면서 생각도 자리를 찾아감을 알 수 있다. 생각이 정리되야 마음도 편안해지는 법이다. 보다 더 큰 매력은 흰 종이와 펜 하나만 있으면 나는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는 거의다. 글쓰기는 내게 무한한 세계를 가져다주고 꿈을 안겨준다. 마치 펜과 종이가 나의 드림랜드 헹 티켓인 것이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골든티켓처럼 말이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참 글쓰기는 말 그대로 ‘쉽고 재미있는 작업’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글쓰기는 확실히 재미있는 작업이긴 하다. 하지만 절대 ‘간단’하게 되진 않는다. 그렇다면 누구나 책을 쓰고 이름난 작가가 되어 먹고 살 수 있지 않겠는가. 학창시절에 공부는 머리가 아닌 엉덩이로 하는 거란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는 선천적인 재능(머리)보다 후천적인 개인의 노력과 끈기의 중요성을 두고 한 말이다. 어느 분야나 그렇지만 특히 음악이나 미술과 같은 예술 분야 쪽은 특히 타고난 재능이 중요시된다. 소위 ‘천재’라 불리는 사람을 찬양하고 그들이기에 가능한 거라며 단정 짓는다. 하지만 재능이 저절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어내던가? 의지 없는 재능은 절대 걸작(Masterpiece)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아니,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진정한 예술가들은 ‘빛과 그림자’는 공존(共存) 하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들은 빛이 들면 그림자는 자연히 생기게 마련이니 그림자가 있으면 언젠가 빛이 비치리라는 믿음을 품고 그들의 길을 정진(精進) 해왔다. 자신의 빛을 향해 많은 그림자를 뚫고 나왔다. 하지만 대중은 조명 아래 그들의 화려한 삶만 바라보지 정작 그들이 여기까지 오기까지의 기나긴 과정은 별로 관심에 두지 않는다. 그들의 재능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감내해온 노력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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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스틸 이미지 | ||
“어느 날 전 제가 왜 이 일을 하는지 궁금해졌어요.
표면적인 이유, 물질적 부(富), 유명세는 모두 허상이란 걸
알게 되면서요.
그러다 어느 날 제 친구가 초대한 저녁식사 자리에서 만난
세이모어와 나눈 한 시간 가량의 대화는
그간 제 커리어보다 더 많은 답을 제게 주었습니다.
그게 제가 이 영화를 만든 이유입니다.”
– 연출자 에단 호크(Ethan hawke)
<비포 선라이즈>에서 떡진 머리에 능글능글한 미소를 뽐내던 에단 호크는 이제 40대 중반에 접어들어 배우뿐만이 아닌 감독, 시나리오 작가, 소설가 그리고 뮤직비디오 감독으로도 활동하며 그의 다재다능함을 맘껏 발휘하고 있다. 에단 호크를 보면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맘껏 하고 즐기며 별다른 고민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에게도 깊은 고민이 하나 있었다. 자신은 그저 아름다운 삶을 살고 싶은데 커리어를 쫓으면 쫓을수록 돈을 좇는 것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오랜 시간 이러한 고민을 품고 있었고 그러다 세이모어와 만나게 되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세이모어 번스타인은 ‘피아노 거장’이라 불리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교육가로 현재 뉴욕 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레코드 한 장 없던 집에서 자란 그는 6살 때 낡은 피아노를 얻으며 피아노와 연을 맺게 되었는데 어느 일요일 아침 교본에 있던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연주하고 곡이 너무 아름다워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빛을 발한 그의 예술적 감성은 하늘이 분명 그에게 주신 선물일 것이다. 하지만 그의 예술꽃을 피운 건 그의 천재성이 아닌 일찍이 깨달은 재능 이면에 숨은 노력의 중요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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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 포스터 | ||
“연습이 안되는 날은 주위 사람들과 삐걱거렸어요.
그런데 잘 되는 날은 모든 일이 잘 풀렸죠.
그래서 그때 깨달았어요.
어떤 재능이든 재능이 사람의 본질을 결정한다는 것을요.”
‘천재’라고 일컬어지는 그이지만 그가 매일같이 공들였던 건 그의 천재성이 아닌 그의 노력이었다. 그는 4시간 연습으로 되지 않던 건 연습 시간을 2배 늘려가며 매진하였다. 피아노 의자에 앉는다고 하루아침에 소나타를 연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만한 노력이 기울어져야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깨달음을 그의 제자들에게도 끊임없이 강조하였다. 그는 이런 예술의 밑거름을 이루는 ‘노력’을 경시하는 현 세태를 비판하였다. 더불어 내면의 힘을 기르는 예술의 순수 정신보다 표면을 중시하고 예술성의 근간을 흔드는 상업성을 철저히 경계하였다. 이는 진정한 예술가라면 당연히 멀리해야 하는 것이었다.
“쉰 살이 됐을 때야 무대에서 편해질 수 있었어요.
그리고 쉰 살이 되었을 때 조용히 고별무대를 준비했죠.
늘 막대를 벽에 부딪히는 기분이었어요.
연주할 때 신체적인 문제가 있었거든요.
무대에 설 때마다 반복되고 어느 순간 기억력에도 자신이 없어졌어요.
피아니스트로서 부족하다 여겼죠.
음악가이기 전에 인간이기 때문이죠.
음악가로서 부족하다 여기면 개인으로서도 부족하다고 느껴집니다.”
수십 년 동안 무대에 선 그여도 무대에서의 불안감은 늘 피할 수 없었다.
그는 이 불안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예술계에 오래 머물면서 보게 된 어둠의 손길인 ‘상업성’에서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그는 창작활동이 하고 싶었다. 그는 실제로 많은 작곡 집도 출간하였다. 그는 그의 제자들에게도 작곡을 적극 권유하였다. 작곡을 하는 과정에서 개개의 음(音)과 음악 자체의 깊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세 가지 이유로 그는 쉰 살이 되었을 때 무겁던 ‘피아니스트’란 수식어를 내려놓았다.
“사람들은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해요.
성경 속의 신이 당신을 도울까요?
당신 내면에 있는 영적 저장소를 들여다보세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마음속의 신을 찾지 못 합니다.
종교는 신에게 기대지만 전 답이 우리에게 있다고 믿어요.”
인간의 영혼을 쓰다듬는 음악이 경시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세이모어 번스타인. 그는 삶이 곧 음악이요, 음악이 곧 삶이라는 것을 그의 생을 통째로 빌려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었다. 그는 음악이 그에게 어떤 의미냐는 물음에 ‘우주의 질서(Universe of order)”라고 답했다. “하늘에 있는 별자리들이 우주의 질서를 수놓으면 음악은 그를 소리로 표현합니다. 음악이라는 언어를 통해 우린 별과 하나가 되지요. 음악은 조화라는 언어로 세상에 말을 걸어 외로움과 불안을 달래줍니다. 우리 마음속의 진실을 일깨워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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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전쟁 당시 병사들에 위문공연을 하는 세이모어 번스타인(가운데) | ||
과거 한국전쟁 당시 미 8군 소속 참전 용사로 건너와 최전방에서 장병의 사기를 돋우는 ‘위문공연’을 열었던 세이모어. 그는 1951년 4월 한국에 파병되어 1952년 11월 전역할 때까지 최전방에서 100여 차례 클래식 공연을 열었다. 언제 적군이 쳐들어올지 모르는 일촉즉발 전시상황을 감안하자면 굉장한 횟수이다. 그는 자신의 인생관 중 상당 부분이 한국전쟁 당시 이뤄졌다고 말한다. 아직까지도 한국전쟁 당시 썼던 일기장을 간직하고 있는 그는 일기장을 펴치면 그때 눈앞에서 죽어가던 병사들이 떠올라 눈물이 흐른다고 말한다. 절박하고 황폐했던 전쟁의 땅에서 자신들의 음악을 들으며 잠시나마 마음을 추스르고 눈물을 짓던 전우들을 보고 음악의 힘을 느꼈던 그는 보다 많은 이들이 이를 경험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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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6월 27일 서울 웨스턴조선호텔에서 UN참전용사들에 위로연을 하는 세이모어 번스타인(출처 연합뉴스) | ||
과거 피아노 선율로 전우들의 마음을 위로했던 그가 다시 한번 한국을 찾았다. 2016년 6월 참전용사 앞에서 다시 연주를 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세이모어. 무려 64년 만의 방문이다. 한국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데 일조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기쁘게 말하는 그는 이번 방문에서도 음악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름다움에 대한 답은 마음속에 있어요.”
(Beauty is the answer of something deep in you)
과거 ‘단독자’ 란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지금 내 손에 쥐어진 것이 펜이면 작가가 되고 붓이면 화가가 되라.
그것으로 당신을 조롱하고 무시하고 버리고 짓밟는 이 세상을 통쾌하게
때려 부숴라. 티끌 같은 부와 명예에 취해서 거들먹거리는 인간들에게 복수하라.” 인간이 티끌 같은 명예와 부를 쫓는 것이 합리화된 이 자본주의 사회에 누군가는 명예와 부를 쫓고 다른 누군가는 그와 반대 방향으로 향한다. 오랜 시간 동안 세이모어 번스타인은 그 많은 세계 중 음악의 편에 섰고 음악이 인간에게 가져다주는 순수한 힘을 그의 생을 통째로 빌어 알렸다. 모든 것이 급변하고 빠르게 회전하는 이 시대에, 앞다퉈 빛 좋은 개살구가 되어 거들먹거리기 좋아하는 이 시대에,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불가침 영역의 정신이 있음을 가르쳐준 세이모어 번스타인에게 이 글을 빌려 감사의 인사를, 그리고 이 가르침을 나눠준 연출자 에단 호크에게도 같이 전하는 바이다. 더불어 지금도 열심히 빛의 세계로 한발 한발 내딛고 있는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이 긴 글을 읽는 수고를 해준 당신에게 그리고 나에게도 안녕을 빌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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