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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안정훈의 춤 <傳燈, 전통의 새로운 밝힘> | ||
[디아티스트매거진=송우람]
2016년 7월 2일 토요일.
장마가 시작되는 줄 알았으나 어느새 먹구름은 저 멀리 떠나갔고, 다시 여름의 열기가 남산의 한 자락에 넘실거렸다. 그리고 그 열기의 중심, 장충동 국립극장은 여전히 신통한(?) 힘을 발휘했다. 일종의 보상심리랄까, 3호선 동대입구역에서 내려 온전히 자신의 두 발로 걸어 오르다보면 없던 기대도 생기게 만드는 신통한 힘 말이다. 그렇게 필자 또한 땀으로, 기대로 옷을 적실 때쯤 안정훈 무용단의 숨결이 새어나오는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 도착했다.
이번 안정훈 무용단의 <전등(傳燈), 그 두 번째 이야기>는 지난해(2015.10.22)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 <전등(傳燈), 전통의 새로운 밝힘>의 두 번째 이야기로 제작되어진 공연이다. 보편적으로 ‘한국무용’이라고 알려진 전통무용 작품 <풍류랑, 진주굿거리, 진도북춤>과 그것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창작무용 <내 누구 잇소, 움직임 그리고 Rhythm>, 그리고 김말애 전 경희대학교 교수가 창작한 <굴레>까지. 총 6개의 작품이 한 무대에서 한 호흡으로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공연이었다. 더불어 안정훈(안정훈 무용단 대표) 대표는 이번 공연을 통해 한국 전통춤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시도로서, 춤과 판소리 그리고 공연 해설을 조화롭게 구성하여 보고 듣는 이들의 미적 상상력을 자극하는데 중점을 두었다는 말을 관객들에게 남겼다.
가장 먼저 공연의 문을 연 작품은 김말애(전 경희대학교 교수) 안무의 <굴레>라는 작품이었다. 먼저 굴레라는 작품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하자면,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만나게 되는 모든 삶의 흔적을 굴레라는 상징적인 의미로 설정하고 창착무용화한 작품이다. ‘탯줄에서 끊어지는 순간부터’라는 작품의 설정에 충실하게 긴 천을 허리춤에 두른 채, 무대의 구석에 위치한 출연자에게 조명이 비춰지면서 공연은 시작되어 진다. 필자가 개인적으로 손꼽아 존경하는 작품 중 하나로, 조명 아래 처연한 표정을 담은 무용수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우고 손이 찬찬히 허공을 가른 뒤, 뒤엉킨 삶의 굴레이자 긴 천이 어깨에 짊어져지는 순간. 그 짧지만 영겁과도 같은 순간에 그것을 짊어진 출연자의 모습은, 작품 ‘굴레’의 시작임과 동시에 본인의 인생의 한 순간의 ‘굴레’가 시작되어진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긴 천에 뒤엉키고, 풀어지고 널뛰는 출연자는 침묵으로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말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던지는 춤의 무언(無言)에 담긴 백 마디의 외침인 것이다.
국악이 가진 가장 큰 힘이 무엇일까?
<굴레>와 더불어 두 번째로 인상 깊게 본 <움직임 그리고 Rhythm>이라는 작품의 흥미로운 지점을 설명하기 위해 외람되기 그지없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국악의 가장 큰 힘은 ‘즉흥성과 유기성’이라는 것을 언급하려 한다. 단적인 예로 국악과 서양의 오케스트라는 앉는 ‘자리’부터가 다르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원이나 직선으로 앉아 서로 수평적인 교감을 하는 국악과는 달리, 서양 오케스트라는 지휘자라는 절대 권력자를 향해 모든 감각이 집중되고 지휘봉 속 통제 안에서 음악이 뿜어져 나온다는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지휘자는 국악과 서양 오케스트라 양쪽 모두에 존재하지만, 어찌 보면 국악은 모두가 지휘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철저한 통제가 아닌 연주자 스스로가 단어 그대로 ‘즉흥적’으로 주법을 바꿔도 문제가 없는, 함께 정해진 시간 내에 오롯이 즐기는 협업의 관계가 국악에선 형성 되는 것이다. 그것은 켜켜이 쌓인 관계에서만 뿜어져 나오는 독특한 스케일을 가지게 되고, 필자가 생각하는 국악의 힘이라는 ‘유기성’을 만드는 것이다.
<움직임 그리고 Rhythm>이라는 작품이 가진 힘이 바로 그 지점이었다. 무용수들이 각자의 한 걸음 한 걸음을 모아 ‘발걸음으로 빚어낸 거대한 이야기’와도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한 <진주굿거리>라는 전통무용은 객석의 앞에 소고를 내려놓고 맨손으로 춤을 추다가 장단이 빨라짐에따라 소고를 들고 춤을 추는 작품이다. 소고를 들고 춤을 추는 무용수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소고의 앞면이 객석을 향했다가도 뒷면이 어느새 객석을 가리키고 있는 흥미로운 점을 볼 수 있는데, 그 모습이 무용수의 몸으로, 그 중 ‘발’로써 직접적이지만 추상적인 모습으로 은유 된 것이 흥미로웠다. 더불어 진주굿거리를 보고 있으면 소고가 마치 하나의 ‘구’의 모습을 띄고 있는 것 같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앞면과 뒷면’이라는 어쩌면 이분법적인 특성을 가진 악기인 소고를 오르골 태엽 감듯 돌리고, 흔들며 앞뒤의 구분이 모호한 하나의 구의 형상으로 바꾸어 버리는 것이다. 그 모호한 구의 모습이 지속적으로 멈추지 않는 무용수들의 발걸음과 발놀림으로 치환되어 무대에 가득 채워졌고, 무용수들의 숨과 호흡으로 가득차 풍성한 느낌을 자아냈다. 마지막으로 무용수들의 의도적인 동작의 직선 속에서 발견되는 미세한 곡선의 흐름이 도드라졌는데, 작품 서두에 구형태의 조명에서 무용수들이 등장한 것이 마치 그들의 정체성처럼 느껴지며 무용수 개개인이 <움직임 그리고 Rhythm>만의 독특한 느낌으로서 다가왔다.
필자의 얕은 지식에 의하면 한국무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인데, 이것은 가르치는 선생에 따라 설명이 다르다고 한다. 하지만 원리는 모두 일맥상통하는 것 같은데, 바닥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려 단전을 거쳐 하늘 높은 곳까지 숨이 뻗쳐 나가고 다시 하늘에서 단전을 거쳐 바닥 깊은 곳으로 숨이 향하는 원리다. 어떻게 보면 사람의 몸을 기준으로 숨이 수직으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멀리서 크게 보면 하늘과 땅이 사람을 매개로 연결되어 만들어지는 거대한 뫼비우스의 띠와 같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관점으로 보았을 때 안정훈 무용단이 풀어낸 춤의 한 호흡은 끝이 났지만, 또한 자연스레 다음 호흡이 돌아올 것이고 그럴 수 있기를 기대한다. 어찌 보면 이 끝없는 뫼비우스의 띠는 춤꾼이 짊어진 ‘행복한 저주의 굴레’가 확장된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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