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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이질감이 빚어낸 불협화음 ― <비밀은 없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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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김민아] *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무릇 신선함과 이질감이란 동시에 찾아오기 마련이다. 새로운 것은 필연적으로 낯선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미쓰 홍당무>가 처음 극장에 걸렸을 때, 평단과 관객은 이 이상야릇하면서도 재기발랄한 새 바람에 기꺼이 동화되었다. 이경미 감독의 충무로 데뷔는 단연 성공적이었다. 

   
ⓒ 비밀은 없다 스틸컷 (네이버 영화 포토)

그녀가 무려 8년의 세월을 지나 전작과 전혀 다른 장르로 관객 곁을 찾아왔다. <비밀은 없다>의 정체성은 명백한 스릴러이다. (감독은 장르를 규정지을 수 없다고 밝혔지만 이는 오류에 가깝다. 그리고 그녀가 데뷔한 2008년도에는 아니었겠지만, 사실 이제 스릴러는 한국영화에서 조금도 생소하지 않은 장르다.) 화목했던 한 가정이 자녀의 실종으로 무너지는 스토리는 그다지 튀거나 독특하지 않다. 정치인 남편과 내조하는 아내 설정은 각종 이야기에서 신물이 나도록 써먹었다. 캐스팅은 다소 의외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아내가 결혼했다>로 호흡을 맞췄던 두 주연 배우임을 상기한다면 아예 허를 찔렀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주인공인 손예진은 종종 미스터리 스릴러라 이를 만한 작품에 얼굴을 비친 배우였다. 요컨대 이 영화는 ‘어디선가 본 듯한’ 요소들로 꾸려져 있다. 이러나저러나 첫 인상은 그런 셈이다.

그럼 뚜껑을 열어보자. 지난날 접해온 상투적인 장르물을 예상했다면 누구든 보기 좋게 깨질 것이다. <비밀은 없다>는 전적으로 ‘어디선가 본 듯한’ 면모들을 철저히 피해간다. (때로는 너무 피하느라 전개가 어색해지기까지 한다.) 국회의원 선거를 앞둔 정치인 종찬(김주혁 역)과 아내 연홍(손예진 역)은 슬하에 중학생 딸을 두고 있다. 선거 유세가 시작된 첫 날, 학교에 간 딸이 집으로 귀가하지 않으면서 이 의문의 사건은 시작된다. 선거 캠프를 돕는 참모와 운전기사, 딸의 단짝 친구, 학교 선생 등이 용의 선상에 오르지만 모두가 의심스럽기만 할뿐 직접적인 단서는 나오지 않는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유세를 강행하는 종찬과 연홍 사이에는 기괴한 갈등들이 벌어진다. 진실에 근접했다 싶으면 애먼 퍼즐 조각이 튀어나와 그림을 망쳐버린다. 연홍은 차라리 혼자서라도 수사에 나서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녀가 밝혀낸 전말은 실로 예측 가능한 결과를 벗어난다. 냉혹한 이면은 상상보다 훨씬 잔인하다. 눈치 빠른 관객이라면 중반 이후부터 반전을 짐작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설령 흐름이 눈에 보인다 할지라도 긴장이 떨어지는 영화는 아니다. 플롯은 맥거핀(* 특정 사건을 중요한 것처럼 꾸며 관객의 주의를 엉뚱한 곳으로 돌려버리는 속임수)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만큼 치밀하게 설계되었고 이를 밀어 나가는 배우들의 힘 또한 만만치 않다. 도대체 무슨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가늠이 안돼 최후까지 전전긍긍하게 만드니, 이만하면 8년 복귀작으로 내세우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 비밀은 없다 스틸컷 (다음 영화 포토)

큰 문제는 따로 있다. 감독은 이토록 흥미진진한 판을 깔아놓고도 당최 몰입을 시켜주지 않는다. 푹 빠져들어 즐길 수 없는 스릴러라니 얼마나 당황스러운가? <미쓰 홍당무>에서 등장했던 코믹한 상황과 B급 감성은 시도 때도 없이 스크린을 물들이고 배경은 지극히 현실 자체건만 에피소드는 온통 연극적이다. 과하게 개성 강한 캐릭터들은 충돌하고 섞여가며 희한한 불협화음을 빚어낸다. 이 모든 불균형이 러닝 타임 내내 끊이지 않고 폭주한다. 일견 기존 영화들을 향한 반항과도 같이 보이는 감독의 연출은 지켜보는 우리에겐 지나친 곤혹이다. 정말 이렇게까지 관객의 기대를 배반해도 되는 것일까. 누군가는 이 차별화된 시도에 반색하겠으나, 애석하게도, 솔직히 다수에게 환영받을 작품이 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상업 영화라면 더욱이 그렇다. 그런데 예술 영화로도 분류할 수 없는 모호한 진부성이 이 영화엔 산재한다. (영화는 대부분의 순간에서 박찬욱 감독의 전작들, 구체적으로 <친절한 금자씨>와 <복수는 나의 것>을 연상시킨다.) 마치 노련한 비주류를 흉내 내려 노력하는 사춘기의 덜 익은 감수성과 마주친 기분. 이 편치 않은 정체성은 머지않아 관객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구심을 발현시킨다. 그러니까, 이다지도 비틀리고 조악한 면면을 과시한 영화에서 어떤 차원의 카타르시스를 느껴야 하나? 단지 이제껏 접한 적 없는 괴상한 종류의 위화감을 누리기 위하여 선뜻 시간을 내어줄 관객은 세상에 그리 흔치 않다. 아무리 영화가 취향의 영역이라고는 하지만 창작자와 감상자 사이에 최소한으로 존재하는 교집합 정도는 지켜줘야 마땅하지 않은가. 

   
ⓒ 비밀은 없다 스틸컷 (다음 영화 포토)

이쯤에서 분명히 해두자. 현 시점에서 내놓은 이의는 결코 관객의 수준을 폄하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우리는 이미 거칠고 불친절하며 제멋대로 요동치는 에너지의 장들을 충분히 만끽해왔다. 멀리 갈 필요도 없으니. 최근 개봉한 박찬욱 감독作 <아가씨>와 나홍진 감독作 <곡성>의 스코어만 봐도 한국 관객이 더는 전형성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지적하고 싶은 점은 <비밀은 없다>가 가진 괴이한 매력들이 아니라 그걸 조합하는 연출 방식이다. 같은 재료를 써도 완전히 상반된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은 구태여 요리를 해보지 않아도 알 만한 개념이건만, 감독이 꾸려낸 상차림은 (비유하자면) 어울리지 않는 육해공의 식단이 모조리 몰려 있어 먹기도 전에 체하겠다는 느낌을 준다. 미스터리 범죄와 정치판의 음모가 중심축인 ‘척’ 했던 영화는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면서부터 숫제 다른 양상으로 흘러간다. 물론 <비밀은 없다>가 높이 평가되어야 할 모종의 이유들, 충무로에서 보기 힘든 여성 주연 영화라거나 (화자와 행위의 주체, 사건의 실마리를 전부 여자가 쥐고 있는 경우는 확실히 드문 케이스다.) 가볍지 않게 다루고 넘어가는 사회 소수자에 대한 시선들, 부조리한 지역감정의 풍자, 무엇보다 틀에 박힌 식상함에 정면 반박하려는 규범 파괴적 제스처는 한국 영화 감독으로서는 취하기 힘든 놀라운 액션이었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그렇지만 이런 긍정적인 해석들도 관람 후의 불쾌함을 효과적으로 상쇄시키기엔 역부족이다. 어디까지나 영화는 대중 예술의 울타리 안에서 향유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퀀스 간의 연결고리가 지닌 빈약성은 <비밀은 없다>를 소위 ‘클래스’까지 끌어올리지 못하는 가장 큰 약점이다. 연홍의 딸과 그녀의 학급 친구가 벌인 사건은 그 나이대의 무모함을 차치하더라도 허구성을 띄고 있다. 극적 리얼리티의 성립은 영화를 지탱하는 태초의 근간이다. 쉽게 말해 뭐든 ‘믿게 해줘야’ 여남은 장치들이 눈에 든다는 것이다. 폭력적인 묘사 역시 내용에 발맞춘 선택이었다기보다 잔혹성의 맹목적 탐닉에 지나지 않는다. 뒤틀리고 어긋난 인간 심리를 조명했다는 점, 이를 포장하는 방법으로 음악과 미술을 활용했다는 점은 <고백>이나 <갈증>의 감독 나카시마 테츠야를 떠오르게 하는데 (실은 이조차 <비밀은 없다>의 한계점을 드러내는 객관적인 지표라고 여겨진다. 자꾸 박찬욱 또는 나카시마 테츠야와 비교된다는 전제는 뒤집어 설명하면 이들의 아류작이란 의미다.) 안타깝지만 테츠야 감독만큼의 촘촘한 서사가 돋보이지는 않는다. 언뜻 자의식 과잉처럼 보이는 이 영화는,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자의식이랄 것이 없다. 인물끼리 벌이는 마찰과 그로 인한 폭발이 끝날 때까지도 이들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통 짐작키가 난해하다. 어떻게든 진실을 밝히려 고군분투하는 연홍, 정치 생명이 걸린 선거를 앞둔 종찬, 경악스러운 사건을 일으킨 연홍의 딸과 친구, 일부는 정당하지만 한편으로는 혐의 짙은 주변 환경은 하나의 메시지를 향해 협동하지 않고 저마다 딴 주머니를 찬 채 부유한다. 그래, 이 혼란스러운 리듬이 때때로 매혹적인 변수를 발생시켜온 것은 맞다. 다만 <비밀은 없다>에서 그렇지 않을 뿐이다. 

   
ⓒ 비밀은 없다 스틸컷 (다음 영화 포토)

촬영, 미술, 조명과 소품은 각자 떼어놓고 보자면 나름대로 훌륭하다. 이들이 조화롭게 기능하느냐 묻는다면 대답을 함구하겠다. 여기서부터는 개인의 취향 차이일 수 있으므로. 판단컨대 그 취향이 메이저에 기울어 있지는 않다. 의도된 마니아 스타일이라 존중할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과함은 모자라느니만 못하다. 그래도 기어이 과해야겠거든 주제 의식과 재미를 흐트러뜨리지 않을 만큼의 완성도는 갖춰줘야 예의이지 않을까. 광기서린 이경미표 복수극의 흥행은 다분히 녹록치 않아 보인다. (물론 관객의 호응이 한 영화를 대표하는 유일한 바로미터로 작용할 순 없겠지만.) 부디 다음 작품에선 유연한 완급조절을 겸비한 그녀의 새 장기를 발견할 수 있길 기원한다. 이보다 조리있고 심도 깊은, 그래서 다시금 한국 영화계를 놀라게 만들 비범한 장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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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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