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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는 사랑의 무게 <브로크백 마운틴, 2005>

홍진희 기자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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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홍진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 사이에 있어서 자신들의 사랑이 영원할 거라는 미래에 대한 장담은 너무나 허무하면서도 또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너 밖에 없어”, “너만 사랑할게.”, “죽는 날까지 함께하자.” 등의 사랑의 맹세는 사랑하는 사이에 있어서 기본 옵션쯤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런 달콤한 말을 하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연인이라면?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입 밖에 내는 순간 자신과 상대방에게 닥칠 두려운 운명 때문에 애타는 연인의 눈을 보고도 아무 약속도 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면? 그 속이 얼마나 타들어갈지 나로서는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사랑의 언어를 속삭일 수 없는 당사자는 물론 달콤한 사랑의 말을 들을 수 없는 그 연인까지도 모두가 고통스러울 것이다. 뜨거운 여름날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만난 에니스(히스 레저)와 잭(제이크 질렌할)처럼 말이다.

   
▲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

동성애 혐오범죄가 주위에서 번번이 행해질 정도로 다름에 대해 관대하지 못했던 시절에 에니스와 잭의 관계는 당연히 용납될 수가 없었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이미 깨달은 것 같은 잭과는 달리 에니스에게 이 감정은 너무도 낯선 것이었다. 특히 어린 시절 아버지가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동성애 커플 살해현장을 목격한 에니스에게 잭을 사랑한다는 건 어릴 때부터 뿌리 깊게 인식되어 온 가치관을 송두리째 뒤집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스스로의 감정을 억누르려고 해보았지만 일상의 고단함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은 잭뿐이었다.

   
▲ 에니스에게 잭과의 사랑은 인정하는 것은 가치관은 송두리째 흔드는 일이다.

언뜻 보기에는 조금은 무모하기도 하고 소년 같은 면이 있는 잭보다는 마초적인 에니스가 더 강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적어도 사랑에 있어서는 잭이 강자였다. 동성애에 대한 당시 사회적 인식이 어떠했는지는 잭 또한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잭은 매번 먼저 에니스를 찾아 갔다. 두 사람의 미래에 대한 제안을 하는 것도 잭이었다. 에니스가 이혼했다는 말에 에니스를 구속하고 있는 가정이라는 굴레가 사라졌다고 생각한 잭은 한달음에 에니스에게 달려가지만 그 어떤 굴레보다 주위의 시선과 시대의 억압이 에니스에게는 가장 큰 속박이었다.

   
▲ 사랑에 있어서 잭은 용감했다.

광활한 자연 속에서 그 누구의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둘만의 세계에 속해있었던 브로크백 마운틴에서의 시간과 같은 생활을 늘 꿈꾸던 잭은 브로크백 마운틴을 떠나서는 그 어디에서도 에니스와 둘만의 온전한 시간은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슬프지만 인정하게 된다. 늘 자신이 에니스를 찾아 가면서도 행복해 하던 시절의 잭은 사라지고 더 많이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자의 서글픔 때문에 그는 서서히 지쳐간다. 20년 동안의 끊임없는 요청에도 에니스에게서 그 어떤 피드백을 전달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다른 남자와의 새로운 생활을 준비하기에 이른다.

   
▲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행복했던 두 사람

하지만 에니스가 잭에게 빈말이라도 막연한 사랑의 맹세조차 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가 잭을 덜 사랑했다고 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 관계에서 망가진 건 잭이 아니라 에니스였다. 잭은 에니스 때문에 가슴 아파하면서도 자신의 가정생활과의 밸런스를 유지할 정도로 강한 사람이었다. 반면에 에니스는 어긋난 감정을 감추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아내와도 결국 이별하게 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고 시도해도 그의 감정은 잭처럼 체념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누구의 사랑이 더 크다고 섣불리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모든 것을 포기할 각오를 하고 끊임없이 사랑을 요구하던 잭이 지쳐가는 것도 당연하고, 어린 시절부터 강한 마초남으로 자란 카우보이 에니스가 쉽게 시대상황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 둘 중 누구의 사랑이 더 크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잭이 허무한 죽음을 맞지 않았을지라도 그는 에니스를 떠났을 거라는 거다. 전부를 주었다고 생각한 사람은 자신의 사랑이 비참하고 힘들어도 모든 것을 주었으니 후련하게 떠날 수 있다. 그러나 그 못지않게 사랑하면서도 어떤 사랑의 맹세도 할 수 없었던 남은 사람은 연인이 남기고 떠난 그 사랑의 무게를 오롯이 혼자 견뎌야 한다. 잭이 20년간 자신의 옷 속에 에니스의 옷을 간직하며 살아온 것처럼 이제 남은 일생을 에니스는 잭을 품고 살아야만 한다. 이 얼마나 가슴을 짓누르는 일인가.

   
▲ 잭이 떠난 후 에니스는 남은 세월을 홀로 고통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이제 아무리 둘만의 맹세를 말한다 해도 더는 들어 줄 상대가 없는데도 에니스는 잭의 남은 흔적에 대고 맹세를 한다. 그가 어떤 것을 맹세하는지 말을 하지 않는 까닭은 무엇이든 잭이 원하는 것은 다 들어줄 각오가 되어있기 때문인지, 이제 영원히 브로크백 마운틴에 머무를 잭의 곁에 언젠가 가겠다는 맹세인지, 아니면 그 둘 모두인지 정확한 그의 마음은 알 수 없다. 다만 에니스의 사랑의 크기를 모르고 세상을 떠난 잭보다 남아서 그런 잭에게 후회의 맹세를 해야 하는 에니스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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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희 기자
daluma@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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