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 위에 핀 꽃, 사랑. 영화 <캐롤>, 사랑이 말라버린 시대에 사랑을 끄집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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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캐롤’ 포스터 | ||
‘사랑이 그대들에게 손짓하거든 그들을 따르십시오.
그 길이 험난하고 가파르다 하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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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그대들에게 왕관을 씌우기도 하지만
그대들에게 십자가를 지우기도 합니다.’
-칼릴 지브란, 예언자 中
[디아티스트매거진=은서형] 사랑의 기척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무런 말도 없이, 발소리도 없이 어쩌면 숨까지 죽이고 내 삶에 걸어 들어오는 것이 사랑이라면 우린 이 사랑을 어찌해야 할까. 과거 오드리헵번은 삶과 죽음 사이의 불안에 대해서 이런 말을 했다. ‘차도를 건널때 우린 좌우를 살핀다. 차에 부딪혀 죽고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린 여전히 길을 건넌다.’고. 무언가를 감수하면서도 살아가는 것, 약간의 불안감을 늘 안고 사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사랑은 참 우리의 삶과 닮았다. 언젠가 우리의 삶이 다할 것을 알고도 오늘을 열심히 살듯 언젠가 사랑이 날 상처입힐 것을 알고도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가.
여기 우리가 잠시 잊고 있던 사랑의 단상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바로 올해 초 개봉한 토드 헤인즈 감독(‘벨벳 골드마인’, ‘파 프롬 헤븐’ 등 연출)의 영화 ‘캐롤’이다. 그간 세상의 먼지 속에 덮여있던 사랑의 원형(原形)을 보여주는 이 영화를 독자 여러분들께 기쁜 마음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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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캐롤’ 스틸 이미지 | ||
‘Strange girl you 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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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ung out of space.’
(당신 참 신기한 사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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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1950년대 어느 겨울날, 딸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고자 백화점에 들른 ‘캐롤 에어드'(케이트 블란쳇 役) 는 그곳에서 점원인 ‘테레즈 벨리벳'(루니 마라 役)을 만나게 된다. 사랑에 참 재밌는 점이 있다면 말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닐까? 굳이 ‘난 당신에게 첫눈에 반했어요.’라는 말을 하지 않고도, 한 순간의 눈맞춤으로 마음을 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입술보다 눈으로 먼저 한 인사로 말이다. 캐롤과 테레즈는 사람들 틈 사이로 눈과 눈이 닿은 단 몇 초간에 서로를 알아보고 그렇게 둘은 서로에게 닿았다. 그리고 그렇게 둘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남편과 이혼을 진행중인 캐롤, 연인 리처드에게 확신을 갖지 못하는 테레즈. 두 사람은 각자의 삶에서 찾지 못하던 확신을 서로를 만날수록 강하게 느끼게 된다. 특히, 이는 테레즈의 캐릭터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프랑스에 가서 결혼하자고 거듭 조르는 리처드를 두고 맘을 정하지 못했던 테레즈는 캐롤과의 점심식사에서 캐롤이 주문한 것을 그대로 따라 주문하며 ‘저는 점심식사 하나도 제대로 정하지 못하는데요.’라며 초반 다소 우유부단하고 자신의 선택에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성격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테레즈의 캐릭터는 캐롤을 만나면서 달라진다. 아이의 양육권을 남편에게 빼앗길 위기에 놓인 캐롤은 몇 번 만나지도 않은 그녀에게 함께 서부여행 갈 것을 제안하고 그녀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네, 그럴게요.’라고 대답한다. 가정문제로 힘들어하는 캐롤에게 ‘당신을 도울 수 있는 것이 없어 답답하다. 혹시 두렵거나 하는 것이 있으면 내게 털어놔 달라.’라는 말도 건넨다. 초반에 캐롤이 먼저 테레즈에게 다가갔던 만큼 테레즈도 조금씩 다가간다.
연인 리처드에게 갖지 못했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캐롤을 통해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둘은서로에게 묘한 감정을 갖게 되고 이것이 사랑임을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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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캐롤’ 스틸 이미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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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캐롤’ 스틸 이미지 | ||
‘Do you hate me?
No, How could I hate you.’
(내가 싫죠?
아뇨, 어떻게 당신을 싫어할 수 있겠어요.)
무언가를 손에 쥐려면 반드시 다른 무언가는 손에서 놓아야 하는걸까? 둘의 사이를 알게 된캐롤의 남편으로 인해 캐롤은 잠시 테레즈에게 안녕을 고해야만 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단독양육권을 양보해야 했다. 테레즈를 사랑하는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데서 오는 댓가였다. 홀로 남겨진 테레즈도 아픔을 치뤄야 했다. 리처드와 관계를 일찍이 정리했던 테레즈는 ‘타임즈(TIMES)’잡지사에 취직했고 용모도 세련되게 가꾸며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캐롤과의 헤어짐을 극복하고자 달라진 테레즈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몇 달이 지나고 캐롤이 테레즈에게 연락을 취해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되었다.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고했던 캐롤에게 조금 차가워진 얼굴을 한 테레즈. 그리고 그녀에게 갑자기 불쑥 찾아와 사랑한다며 남편과 이혼 후 따로 아파트를 얻었는데 둘이 살기 충분하니 같이 살지 않겠냐고 하는 캐롤. 테레즈는 처음으로 캐롤을 밀어낸다. 자신에게 지독한 아픔을 줬던 사람에게 다시 마음을 여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하지만 테레즈는 캐롤이 자신을 부정하지 않았듯, 자신의 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아직도 그녀를 가슴 한켠에서 사랑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여, 후에 테레즈가 그녀에게 찾아간다. 처음 만났던 어느 겨울날, 캐롤이 그녀에게 다가왔듯 이번엔 테레즈가 그녀에게 다가간다. 지금의 테레즈는 그때와 다르다. 과거 점심메뉴도 못 고를 정도로 우유부단했던 그녀는 이제 한걸음 한걸음 확신을 갖고 사랑하는 캐롤에게로 걸어간다. 캐롤과의 사랑이 테레즈를 놀랍도록 성장하게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이 주는 아름다운 모습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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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캐롤’ 스틸 이미지 | ||
‘ 내 의지로 당신을 받아들인거에요.’
과거 자신때문에 캐롤이 곤경에 빠졌다며 자신을 탓하며 우는 테레즈에게 캐롤은 이렇게 말했다. ‘이건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내 의지로 당신을 받아들인거에요.’ 라고. 선택엔 책임이 따른다. 사랑이라면 더욱 그렇다. 사랑은 용기와 희생의 합성어이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알았다. 서로를 선택함에 있어 자신이 갖고 있는 무언가를 놓아야한다는 것을. 그녀들은 기꺼이 희생을 감내했고 그렇게 서로를 택하는 용기 있는 선택을 하였다.
우리는 많은 것이 풍요로운 ‘현대 사회’를 살고 있다. 모든 것이 넘쳐난다. 지식과 정보마저 넘쳐나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외롭다고 말한다. 심지어 현대인들은 모두 가슴에 20%의 우울함은 갖고 산다는 말도 있다. 유독 감정의 영역은 박해져간다는 생각이 드는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사랑과 이별을 말하는 노래도 셀 수도 없이 많지만 가슴에 스미고 우리를 성숙케 하는 진정한 사랑을 만나긴 힘들어 보인다. 이런 점에서 본 영화 ‘캐롤’은 우리가 잊고 있던 진정한 사랑의 단상을 보여주므로 더욱 이 시대에 가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며 이 글을 마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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