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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의 폭력에 대한 역설, 카타르시스 영화 <아가씨>

민소영 기자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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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VER Movie

[THE ARTIST 매거진=민소영] 영화 속에서 여성을 지속적으로 대변해온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었기에,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그가 제작할 영화에 대한 궁금증은 “노출 수위 타협 불가” 라는 말보다 더 깊은 의미가 존재하기를 기대했다. 혹자는 여성을 되려 시선 안에 가둠으로써 결국은 되풀이가 아닌가 라고 회자하거나, 변태적인 영화일 뿐이라며 거북해하기도 한다. 그 거북함에 대해 필자는 궁극적인 메시지 전달을 위한 역설이었음을 말하고자 수많은 불호 속에서 극호의 칼럼을 적는다.

   
▲ ⓒ media DAUM 영화 아가씨 사진전

 숙희(김태리)의 관점과 히데코(김민희)의 관점, 그리고 둘의 관계 속에서는 타자인 백작(하정우)의 이야기로 진행되는 3부작의 이야기 전개방식은 원작으로부터 나온 것이었기에 필자는 신선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또한 숙희의 관점에서 히데코의 관점으로 이동할 때, 관객을 속였던 부분에 대해 차례차례 다시 읊어나가는 부분을 불편해한 이도 있었으리라 예상한다. 그럼에도 이 플롯이 의미 있는 것은 필자가 말한 역설을 통한 ‘카타르시스’ 겠다. 분명 무언가 잘못됐음을 경험하고, 여기서 풀어나감에 있어서 숙희와 히데코의 유대관계의 의미가 발전하고, 이 것이 되려 관객들에게 사랑이 어떠한 엄숙함을 가져야 한다는 편견에 돌을 던지기도 한다.

   
▲ ⓒ media DAUM 영화 아가씨 사진전

 숙희가 히데코에게 감정을 품은 것의 시작은 그녀가 갓난 아이를 키워 팔면서 경험했던 모성애 아닌 모성애겠다. 사회 속에서 요구되는 모성애는 지극한 사랑이다. 하지만 숙희의 “저도 젖이 나와서 아가씨에게 젖을 먹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라 말하는 모성애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여성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숙제에 대해 이 영화는 1차로 역설한다. 그녀가 원하는 젖은 자신의 배로 낳은 아이에게 느끼는 것이 아닌 상품이 될 아이의 아름다움을 위한, 혹은 숙희가 애기씨라고 부르는 히데코의 아름다움을 위한 것이다. 자신에게 속한 존재에게만 베풀 수 있는 행위임에는 틀림없으나 생존을 위한 젖은 아님에 분명하다. 왜 젖이 우유처럼 생존을 위해 생산된 것이어야만 하는가? 주체성과 어떠한 의미로는 괴기한 역설을 꾀면서 이어지는 히데코의 관점은 이를 강화시킴과 동시에 죽이게 된다.

   
▲ ⓒ media DAUM 영화 아가씨 사진전

 자신만의 다른 주체성을 가진 숙희임에 분명하다. 백작에게 거침없이 ‘애기장난감 같은 좆대가리’ 라 말하는 당돌함을 보라. 이에 반해 히데코는 억압받으며 남성들의 욕망의 시선 속에서 감금당해 왔다. 아이처럼 타인 의존적인 성향을 보이는 히데코의 모습은 살아있을 적 이모의 말을 반복하고, 행동을 반복함으로써 드러난다. 그런 히데코의 인생을 망치기 위해 다가온 숙희는 마치 아기를 돌보듯 그녀를 대한다. 그녀에게 있어서 숙희와의 육체적인 사랑은 글로만 읽어온 남성들의 억압적인 시선이 아닌 부드러움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가 동성애로서 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겉으로 보여지지 않는 내면에는 탐욕이 아닌 욕망의 부드러움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필자 주변의 많은 여성들은 그 둘 간의 사랑에 대해 ‘변태적이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그 둘의 사랑 장면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 중 하나는 글로 읽어내려 가는 소설의 음란함이 너무나도 폭력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 ⓒ NAVER movie

 그렇기에 필자는 시선의 폭력을 내세워 칼럼을 쓰고 있다. 옷을 단정히 차려 입고 점잖아 보이는 남성들 앞에서 음란한 글을 실감나게 읽는다는 것은 우리가 일반화하고 있는 시선의 폭력을 풀어낸다. 필자는 이 장면에 대해 박찬욱 감독에게 기립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일반적으로 육체적인 것을 드려내야지만 시선의 폭력이라 생각하는 혹자들에게도 이 장면이 의미가 있으면 좋겠다. 가장 야하고 변태적인 장면은 두 여성이 온 몸을 드러내고 욕망하며 사랑하는 장면이 아니다. 보이지 않음에도 게슴츠레한 눈으로 존재하지 않는 행위를 훑으며 담배 연기를 연신 내뿜던 그들을 보아라. 심지어 그들은 그 경험을 다시 상상하게 해줄 도서를 돈다발 위에 올려놓고 평가한다.

   
▲ ⓒ media DAUM 영화 아가씨 사진전

 숙희와 히데코의 사랑에 대해 대부분의 혹평은 그들의 정사가 너무 무의미하게 많은 것이 아니냐 이다. 필자는 그 장면이 신사들 앞에서 히데코가 당한 폭력에 맞서기 위해 필요한 장치였다고 평가하고 싶다. 비록 타자의 입장에서 관람하는 우리에게 있어서 시각적인 요소는 크게 다가올 수 있다. 다만 정사의 의미가 탐욕이 아니라 해방을 의미한다면, 그 것은 기존 시선의 폭력을 되려 되받아치는 모습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이루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물론 필자에게도 정사의 장면보다는 숙희와 히데코가 도망치던 들에 지던 노을이 더욱 인상 깊었다. 그렇지만 강렬한 시선의 프레임을 통해 “이 것은 시선의 폭력이 아니다” 라고 말하며 되려 관객을 농락하듯 열심히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어떠한 해방인가’ 되새기다보면 몇 번을 말해도 사랑스러울 뿐이다.

   
▲ ⓒ NAVER movie

 필자의 생각과 시선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상업영화로서 다가온 아가씨였기에 이미지가 가지고 있는 근원적인 폭력에 대해 이것이 역설인지 아닌지는 본인이 느끼는 여부에 달려 있으므로. 불편하다면 불편한대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면 벅차는 가슴 그대로 영화관을 나오리라.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나의 다마코, 나의 숙희.” 대사 속에서도 이미 역설이 존재하듯, 영화가 가진 시각적 언어로 역설의 작품을 빚어낸 박찬욱의 영화 <아가씨>는 욕망이 탐욕이 아니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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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소영 기자
mandy7547@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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