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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야, 천정 너머 진짜 세상을 느껴보렴

문희경 기자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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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룸(Room)>, 2015 : Lenny Abrahamson / Brie Larson(Ma Joy), Jacob Tremblay (Jack), Joan Allen(Mom Nancy) and Tom McCamus(Leo)

1. 방공호에 갇힌 다나에 이야기

 [디아티스트매거진=문희경]‘다나에’의 이야기를 기억하는가? 손자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신탁 때문에 자신의 딸을 높은 탑 꼭대기에 가둔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오스’. 꼭대기의 작은 창으로만 빛을 볼 수 있었던 그녀에게 어느 날 황금비로 변한 ‘제우스’가 찾아오고, 신에게 범해진 그녀는 훗날 그리스의 영웅이 되는 ‘페르세우스’를 낳는다.

 영화 <룸>의 원작인 ‘엠마 도노휴(Emma Donoghue)’의 동명 소설 『룸』의 소재가 된, 이른바 ‘엘리자베스 프리츨 사건’은 묘하게 다나에 이야기, 즉 페르세우스 탄생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2008년 요셉 프리츨(Josef Fritzl)이 당시 심각한 신부전 증세를 보인 19세의 딸(혹은 손녀) ‘커스틴(Kerstine)’을 병원으로 데려갔다가 경찰에 덜미가 잡힌, 엽기적인 근친강간 사건. 1984년 벨기에 암스테텐(Amstetten)에 거주하던 50대 ‘요셉 프리츨(Josef Fritzl)’은 자신의 집 뒷마당에 치밀하게 설계, 제작된 ‘방공호’에 당시 17세였던 자신의 친딸 ‘엘리자베스 프리츨(Elisabeth Fritzl)’을 감금하고, 2008년 경찰에 발각될 때까지 무려 24년간 강간했다.(이 때 요셉의 나이는 74세였다.) 수사가 진행되며 그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다름 아닌 자신의 집 뒷마당에서 역겨운 범죄를 이어갔는데도 인근의 이웃들은 물론 엘리자베스의 어머니이자 요셉의 아내였던 로제마리(Rosemarie)마저 딸의 실종에 관해 아무런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사건은 벨기에를 비롯한 전세계를 경악시켰다. 24년간의 강간이 이어지는 동안 딸 엘리자베스와의 사이에서 7명의 아이들이 태어나자, 방공호의 살림살이가 커져 자신의 범죄가 발각될까 두려워진 요셉은 ‘사이비 종교에 빠져 도망간 딸이 버리고 갔다’며 아내와 가족을 속이고 7명의 아이들 중 나중에 태어난 3명을 자신의 호적으로 입양하기도 했다.

 아버지에 의해 탑에 갇혔던 다나에와, 역시 자신의 친아버지에 의해 10평 남짓한 방공호에 감금되었던 엘리자베스. 다나에는 페르세우스를 낳으면서 비로소 지상으로 내려올 수 있게 되고, 엘리자베스도 자신의 첫 아이였던 커스틴의 도움으로 끔직했던 방공호에서 꺼내진다. 저주스러운 신탁 때문에 갇혀야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신탁이 점지한 아이를 낳음으로서 탑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다나에처럼, 엘리자베스 역시 끔찍한 폭력으로 태어난 아이의 도움으로 수십 년간 지속된 폭력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글의 맨 마지막 ‘노파심에 덧붙이는 작은 변’ 참조)

2. 누구나 공감하는 ‘상처’, 더 나아가 그 이면의 삶에 대하여

 납치와 감금, 매일같이 가해지는 성적 학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감당해야했던 출산과 육아. ‘프리츨 사건’을 비롯해 반인륜적인 강력사건에 있어 그 사회적인 논의를 이루는 이슈들은 대체적으로 ‘가해자―피해자’프레임 내에서 만들어진다. 사건의 폭력성, 잔학성 혹은 윤리와 도덕에 관한 문제들 말이다. 하지만 영국 더블린(Dublin) 출신의 작가 ‘엠마 도노휴(Emma Donoghue)’는 이러한 ‘가해자―피해자’ 프레임 “밖”에서 사건이 갖는 의미를 찾고자 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일어났는가’, 혹은 ‘어떻게 아비가 자식에게 욕정을 품는 일이 가능한가’ 같은 이슈들을 뛰어 넘어서, 그런 논의들을 통해 끊임없이 피상적으로 소비되고 있던 사건의 피해자들―엘리자베스와 그녀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이다. ‘비극적’, ‘패륜적’, ‘충격적’ 따위의 “당연한” 수식어를 사건으로부터 떼어 내고―보다 더 내밀하게 그 속으로 들어가서, 문제의 ‘방공호’안에서 살아가야 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엘리자베스와 2008년 당시 다섯 살이었던 그녀의 막내아들 펠릭스(Felix)에게서 영감을 얻은 소설 <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작가는 영국 가디언지(the guardian)와의 인터뷰 및 수기에서 자신이 프리츨 사건으로부터 찾아낸 소설의 모티브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첫 번째는 ‘극한의 환경에서도 그녀(엘리자베스)를 엄마이게 만든 것’, 즉 엘리자베스의 모성애였고(*‘The idea of the bonds of motherhood―and how to be a mother in an extreme environment―inspired Emma Donoghue to write her Booker-nominated novel’, 가디언지 2014년 3월 21일자 기사 부제 인용) 두 번째는 ‘어린아이의 눈’을 통해서 보는 세상의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는 것. 벽과 벽사이의 거리가 불과 열 걸음도 되지 않는 작은 ‘방’의 세계에서 살던 다섯 살 ‘잭’이 혼자 문 밖으로 나가 세상을 딛는 과정을 통해서, 작가는 보편적인 ‘인간’이 겪는 ‘성장’의 의미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사실 실제 영화에서는 첫 번째 모티브(모성애)보다 두 번째, 즉 어린아이(잭)의 눈을 통한 인간세상의 묘사와 그의 성장에 좀 더 무게가 실리는 느낌을 준다. (*영화의 각본작업은 원작 작가인 도노휴가 직접 맡았다.) 실제로 그녀는 가디언지에 실린 수기를 통해서도 스스로 두 번째 모티브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좀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풀어놓는데, “같은 극한의 상황을 겪어도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어른을 뛰어넘는 성장을 해내는 것은 어린아이가 가진 순수함, 그것에서 비롯된 ‘회복력’(resilience) 때문 ―가디언(the gaurdian), 2015년 12월 31일자 기사 ; Room author Emma Donoghue : ‘the situation is horrible, but the story is not’ 참조”이라는 말만 보아도, 그녀는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 있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던 것임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소설의 출간 직후부터 줄곧 그녀에게 꼬리표처럼 나붙은, ‘사건의 충격과 심각성을 미화하는 이야기’라는 비판에 선뜻 동의하기 힘든 이유다. 패륜적인 폭력이 주는 무게와 충격, 그리고 오래도록 끝나지 않을 상처에 대해서는 이미(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인간이 사회를 이루며 사는 한 ‘영원히’) 모두가 입이 마르도록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엠마 도노휴는 거기서 더 나아가, 그 틈에서 소외된 ‘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3. ‘방’은 방이 아니라, 세계다

 ‘아이의 눈을 빌어 세상을 투영하고자 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영화는 시종일관 납치된 주인공 ‘조이’의 아들이자, (어떻게 보면) 사건의 가장 비극적 피해자인 다섯 살 ‘잭’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흥미로운 부분은 ‘잭’이 자신과 엄마 사이의 관계, 납치범이자 자신의 생부인 ‘닉’과의 관계, 그리고 ‘방(room)’과의 관계를 인식하는 방법이다. 가령 조물주를 ‘빛구멍(창고 꼭대기에 난 창문)’ 위에 사는 하늘나라의 ‘외계인’이라고 말한다거나, (자신의 출생에 관련해서) 바로 그 ‘외계인’이 하늘에서 자신을 내려 보낸 것이라는 엄마 ‘조이’의 이야기를 그대로 믿고, 일주일에 한 번씩 밖에서 여러 가지 생필품과 식료품들을 사오는 ‘닉’을 TV속 그림들을 실제의 것으로 만들어내는 ‘마술사’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또 방 속 사물들(세면대, TV, 화분)에 인격을 부여하고 매일같이 인사하는 모습도 인상적인데, 사실 이러한 것들은 오직 ‘엄마’ 한 사람만을 통해 사회적인 규범/관습들을 학습할 수밖에 없는 ‘방’의 공간적 특수성이 만들어낸 결과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잭이 그렇게 스스로가 만들어낸 ‘동화’속 세계에서 아무런 의심 없이 생활할 수 있는 건, 성인이 된 엄마 ‘조이’와는 다르게 아주 어린 나이 때문이다. 아직 사회성이 막 생겨나기 시작할 무렵, 채 관습적인 규범들을 학습하지 못한 ‘백지’같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 식의 판타지적인 사고가 가능한 것이다. (반면 이러한 세계관을 가진 이가 ‘조이’라면 이야기는 아주 달라질 수 있다. 가령 거듭된 폭력이 야기한 정신분열이라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서 엄마 ‘조이’의 ‘방(=room)’과 ‘잭’의 ‘방(=world)’은 각각 다른 공간이 된다. 열일곱 살이 되던 해 까지 창고 밖 세상에서 살았던 ‘조이’에게 자신을 잡아 가둔 ‘닉의 창고’는 상상력의 여지가 없는, ‘닫힌 공간’이다. 즉, 그녀에게 있어 ‘방’이란 폭력과 억압의 근거지이자 무력감과 좌절의 정서로 가득 찬, 탈출에의 공간일 뿐인 것. 반면 ‘잭’에게 있어 ‘방’은 자신의 출발점이다. 바깥 세상에 자신의 존재 근거를 둔 엄마와는 달리, 방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이다. ‘밖’과 ‘벽’의 개념을 모르는 잭에게 있어 ‘방(room)’이라는 단어는 사실상 ‘세계(World)’에 가깝다. 조물주(외계인)가 있고, 하늘나라(빛구멍)와 지상이 있고, 엄마와 친구들(방안의 사물들)이 있으며 마법(TV와 닉)이 살아있는 하나의 완전한 ‘세계’. 때문에 ‘잭’이 방 안의 물건들에게 ‘이름’을 부르며 인사를 건네는 행위는 동화 ‘신데렐라’ 속의 마법과 유사하다. 요정할머니가 요술지팡이를 휘두르자 호박 넝쿨이 근사한 마차로 변하고, 신데렐라를 도와주던 생쥐들은 마차를 끄는 마부로 변신하는 것처럼, 좁은 방 안의 세계가 ‘진짜’라고 믿는 잭의 부름에 의해 ‘방’은 죽어있는 딱딱한 직육면체가 아니라, 각각의 이름을 가진 생명체로 ‘살아나는’ 것이다. 절망 속에 살던 ‘조이’가 자신에게 찾아와준 아들에게 ‘외계인이 내려 보낸 하늘나라의 천사’라고 이야기했던 것은 아마도 이렇게 ‘잭’만이 부릴 수 있는 마법에서 희망을 보았기 때문일 거다. TV속 화면에 나오는 평면의 음식들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닉’아저씨가 마법사라고 생각하던 아이. 그러나 사실 처참한 폭력이 주는 좌절 속에서도 끊임없이 연약한 삶의 불씨를 살려내던 마법사는 ‘잭’, 바로 자신이었다.

4. 엄마 되기가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엄마’일 수 있는 건

 ‘벽’이 무엇인지, 또 ‘밖’이 무엇인지 모르던 아이에게는 ‘탈출’이라는 개념 또한 있을 수 없다. ‘닉’의 창고에 살던 때나 창고 밖의 ‘세상’으로 나왔을 때나 잭에게 세계는 여전히 ‘방(room)’이다. 단지 그 크기가 무한하게 커졌을 뿐. 따라서 탈출 후로도 더 오랜 시간, 더 지독하게 ‘방’의 악몽과 싸워야 하는 것은 바로 ‘조이’다. ‘그 날’의 탈출이 잭에게는 자신의 세계를 구획 짓고 있던 네 면의 벽을 걷어낸 것―즉, 세계가 무한히 확장하던 순간―이라고 한다면, 조이에게는 자신에게 가해진 억압과 폭력의 상징(창고 건물)을 다시 한 번 뚜렷하게 확인하는 순간이었을 테니까. 그녀는 앞으로 한참의 세월동안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보이지 않는 방’과 싸워야 할 것이다.

 물론 훗날 ‘동화’를 완전히 벗어난 잭이 자신의 출생에 얽힌 진실을 알게 되는 날은 또 다르게 생각해보아야할 지점이기는 하다. 하지만―어쩐지, 음독자살을 시도한 엄마에게 자신의 ‘힘샘’이 필요하다며 다섯 살 인생 평생을 길러온 머리를 썩둑 잘라 건네고, 혼자 남겨진 집에서 딸의 원망에 괴로워하던 할머니에게 먼저 ‘사랑한다’고 말할 줄 아는 이 아이라면, 이 어른스러운 아이라면. 스스로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해 되물어야하는 슬픈 순간이 오더라도 그것을 조금은 더 단단하게 버텨낼 수 있지 않을까. 시간이 흘러 자라는 만큼 세상이 순수함을 앗아가고, 그 과정에서 (아마 나의 짐작보다 훨씬 더) 혹독하게 상처 입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괜찮을지도 모른다. 엄마와 단 둘이었던 세상에서 이제는 낸시 할머니, 레오 할아버지까지 모여 함께 ‘가족’이 되었으니까. 그러니까, 언젠가 ‘잭’이 아파야만 하는 ‘그 날’이 온다면, 그 때가 아마도 ‘조이’가 ‘잭’을 살릴 차례일 것이다. 처참했던 지옥에 찾아온 기적이었고, 다시 만난 세상으로부터 야멸치게 난도질당했을 때에도 엄마를 살린 ‘잭’에게― 감당키 어려운 고통 속에서도 ‘나’를 엄마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닌 ‘너’라고. ‘바로 네가 나의 구원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

*노파심에 덧붙이는 작은 변

 글을 쓰고 며칠 간 퇴고 작업을 하다 생겨난 노파심으로, 글의 말미에 작은 변명을 하나 해보고자 한다. 필자는 앞서 글의 서두에서 프리츨 사건을 다나에 이야기(페르세우스 탄생 신화)와 비교하며 ‘신탁 때문에 갇힌 다나에가 아이러니하게도 신탁이 이루어짐에 따라 탑에서 풀려났듯, 엘리자베스도 자신에게 가해진 폭력으로 태어난 아이를 통해 방공호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라고 썼다. 그런데 이런 식의 비유는 자칫 ‘영웅을 낳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탑에 갇히는 것이 운명 지어졌던 다나에’처럼 엘리자베스가 감금되었던 것 역시 ‘어쩔 수 없었던 것 아니냐’는 식의 위험한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하지만 필자가 다나에를 끌고 와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했던 것은 단순히 그 스토리적 유사성에서 이 글의 첫 실마리를 쉽게 풀어보고자 했던 시도였을 뿐, 결코 사건을 미화하거나 천박하게 해석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음을 밝혀둔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신화 속 ‘다나에’와 프리츨 사건의 피해자 엘리자베스 사이에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영역이 있다. ‘탑에 갇힌 다나에’ 이야기는 ‘신탁’이라는 신성성과 함께 ‘페르세우스’라는 영웅의 탄생을 빛내기 위해 설치된 운명론적 ‘장치’에 불과하지만, 엘리자베스에게 가해진 폭력은 그러한 신화적 ‘인과관계’와는 전혀 무관하게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이다. 아버지가 딸을 ‘감금’하는 폭력이 영웅의 탄생을 미화하는 장치로 쓰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신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즉, 현실세계에서 폭력에는 인과가 있을 수 없다. 그것의 동인이 사랑이었든, 증오였든, 호기심 혹은 그 무엇이었든 폭력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때문에 사건 직후인 2009년 3월, 요셉 프리츨이 최종적으로 벨기에에서 ‘15년간 가석방이 불가능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는 데에서 ‘그 모든 법리를 떠나, 죽여야 마땅한 범죄에 왜 사형이 아닌 징역형을 선고했는지’에 대해 분개하는 사람으로서, 이러한 나의 작은 불찰이 이 글을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지금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야만적인 폭력에 신음하고 있을 여성들을, 그 폭력과 똑같이 야만적인 시각으로 재단하고 해석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하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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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경 기자
sinclair@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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