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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쥐> 포스터, © 네이버 영화 | ||
[디아티스트매거진=최정원] 요즘 극장가를 보며 아쉬운 점은 개성 있는 영화가 드물다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한국 영화는 등장인물들과 내용, 이야기를 풀어가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말과 행동이 거칠지만 알고 보면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닌 중년 남성이 사건을 파헤치고, 그에 맞서 범죄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악당이 등장한다. 범죄와 사기 행각, 언론과 재벌의 비리, 이제는 너무 흔한 패턴이 아닌가. 그런 영화들보다는 좀 더 개성이 넘치고 독특한 영화가 보고 싶었다. 이제는 뻔한 이야기라도 좋으니 최소한 소재라도 참신한 영화를 보고 싶은 심정이다. 아니, 뻔한 소재에 뻔한 이야기라도 좋으니 감독만의 스타일이 보이는 영화가 보고 싶었다.
새로운 영화를 보고 싶다는 아쉬움에 이전에 보던 영화들을 들추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발견했다. 박쥐는 묘한 영화다. 처음 감상했을 때에는, 솔직히 말하면 조금 당혹스러웠다. 한마디로 박 감독의 스타일이 너무 과한 것처럼 느껴졌다. <박쥐>는 박찬욱 감독 식의 기괴함과 블랙 유머, 미적 감각이 작중에서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인물 강우마냥 펄떡거리며 시퍼렇게 살아 숨쉬는 영화다. 그래서일까. 개봉하고 난 후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평은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렸다.
처음에 영화를 감상한 후, 한동안 <박쥐>를 보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서 <박쥐>를 한 번 더 봤고, 이틀 내에 한 번 더 봤다. 지금까지 <박쥐>를 본 횟수를 따지면 10번 정도는 된 것 같다. 원래 같은 영화는 많아야 두 번 정도만 보고, 분석할 부분만 따로 돌려보는 것이 일반적인 감상 패턴이었음을 감안하면 <박쥐>는 내가 사랑하는 영화 목록의 상위권에 든다고 할 수 있다. 박찬욱 감독만이 가진 특유의 스타일을 사랑하게 된 셈이다.
내용은 이렇다. 환자들을 살리기 위해 백신 개발 실험에 참여한 신부 상현은 실험 중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사망한다. 그는 수혈을 받아 살아나지만, 이 때문에 그는 뱀파이어가 된다. 사람을 구하려던 상현은 도리어 사람의 피가 있어야만 살 수 있는 기구한 존재가 되었다. 우연히 상현은 자신을 추종하는 신도 가운데서 옛 친구인 강우를 만나고, 오래 지나지 않아 자유를 갈망하던 친구의 아내 태주와 불륜에 빠진다. 상현은 급기야 태주와 공모하여 강우를 살해하기까지에 이른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죄를 범하게 된 <올드보이>의 오대수, 과거 유괴 사건에 가담하여 괴로워하는 <친절한 금자씨>의 금자가 그렇다. 상현 역시 신부의 도리를 저버리고 쾌락을 탐닉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린다. 가장 기억에 남는 상현의 모습은 자신에 거짓말을 한 태주를 죽여 놓고도 기어이 뱀파이어로 다시 살려내는 장면이다. 그렇게 그는 스스로 지옥으로 걸어 들어갈 구덩이를 판다.
거리낌 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는 태주를 보며 죄책감을 느끼던 그는 결국 스스로를 밑바닥까지 끌어내린다. 자신을 기적이라 추종하던 인물들 앞에서 보여준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다. 언론은 이 장면을 두고 단순히 영화의 노출 수위만을 이야기하며 호들갑스럽게 떠들었지만, 송강호의 노출 장면은 영화의 완성을 위해 꼭 필요한 결정이었다. 그가 태주와 함께 한 마지막 선택 역시 같은 의미다. 죗값을 치르려는 태도. 분명 그는 나쁜 짓을 저질렀지만, 결국 우리는 그를 연민할 수밖에 없다. 내가 상현이라면 욕망 앞에서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영화에서 돋보이는 배역은 단연 태주다. <박쥐>에서 태주 역을 맡은 김옥빈은 자신의 매력을 한껏 살려줄 날개옷을 입고 날아다니는 것 같다. <박쥐>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태주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상현을 유혹하는 도발적인 면모, 상현의 정체를 알고도 귀엽다는 말을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은 정말 매력적이다. 그녀가 다시 부활하는 장면에서의 상현을 바라보는 눈빛은 내가 영화에서 꼽는 명장면 중 하나다. 영화의 끝에서, 둘이 함께 죽어가는 상황에서 지옥에서 만나자는 상현에게 죽으면 끝, 그동안 즐거웠다는 말을 남기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
섬세하고 아름답지만 동시에 질식할 듯한 느낌을 주는 미장센은 강우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 상현이 안방에서 태주를 다그칠 때 빛을 발한다. 강물에 빠진 강우처럼, 그들 역시 공간 속에 물에 잠기듯 가라앉는다. 강물 무늬의 벽, 장롱 문에 새겨진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 무늬, 축축하고 병적일 만큼 검푸른 색감, 물에 흠뻑 젖은 강우의 환상, 강우를 누르고 있는 큼지막한 바윗덩어리는 그들을 괴롭힌다. 태주마저 뱀파이어가 된 후 그들은 집안을 온통 하얗게 칠해 과거로부터 벗어나려 하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진 않다.
앞에서 <박쥐>에 대한 관객들의 좋고 싫음이 극명하게 나뉘었다고 언급했는데, 나는 전적으로 전자다. 누군가는 이 영화가 과잉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그의 개성이 좋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낸 영화들이 좀 더 한국 영화계에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상업적 영화도 중요하지만, 영화의 생태계를 위해서는 다양성을 추구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나올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를 기대하고 있다. 영화<박쥐>처럼, <아가씨>에서도 박 감독의 개성을 기대해도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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