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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피었으나 향기가 없다 ― <해어화>,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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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김민아] * 약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가 사랑을 다루는 시각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보겠다. 주제의식이 가볍고 비교적 유쾌한 내용이 전개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로맨스’라 부른다. 반대로 강하고 애틋한 감정들이 무게감 있게 교류될 경우, 대부분은 이를 ‘멜로’의 범주 않에 넣는다. 사전에서는 멜로란 용어를 가리켜 ‘사건의 변화가 심하며 통속적 재미와 선정성이 있는 대중극’으로 정의했다. 말하자면 이 장르의 특징은 로맨스보다 훨씬 굴곡지고 사연 많은 주인공의 등장 여부다. 필연적으로 외부 요인의 방해를 받으나, 그럼에도 절실히 상대를 원하는 마음 하나로 보는 이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인물이 있느냐 없느냐.

ⓒ 해어화 스틸컷 (다음 영화 포토)

<해어화>는 의외로 한 문장에 담아내기 쉽지 않은 작품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시대물로 인식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가수가 되고 싶었던 여인의 어긋난 욕심이 빚어낸 참극 정도로 해석할 것이다. 오직 하나의 관점으로 풀어가기에는 얽힌 서사가 깊다. 다만 확실한 건 아무리 다양한 재료를 버무렸어도 <해어화>의 본질은 멜로라는 점이다. 비유컨대 치정과 보복을 곁들인 파멸의 변주곡쯤으로 정리되리라. 나열한 단어들이 주는 이미지가 썩 신선하지만은 않다. 그간 얼마나 숱한 작품이 연인의 배신에 따른 복수를 줄거리 삼았으며 전체가 망가지는 결말을 표방했는가. 그러나 진부한 설정이 반드시 나쁘기만 한 건 아니다. 오히려 익숙하기 때문에 이해가 편하고, 감정 이입도 보다 수월해진다. 모름지기 멜로의 성패는 관객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작중 사랑에 몰입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자면 <해어화>는 다른 개봉작에 비해 유리한 고지를 점해야 마땅해 보인다. 인간이 가진 추악한 면모는 굳이 부연 설명할 필요가 없으므로. 실연은 상처가 어디까지 곪았고 왜 보복을 결심하는지 구구절절 일러주지 않아도 관객은 이미 화낼 준비를 마친 상태이며, 생략이 가능한 사이만큼 상호 보완적인 관계는 세상에 흔치 않은 편이다.

   
ⓒ 해어화 스틸컷 (다음 영화 포토)

그런데 어찌된 영문일까. 유려한 생김새와 친숙함으로 무장하고도 영화는 어느 한 장면 진한 여운이 없다. 식민 치하로 혼란한 사회상과 달리 이국적 신문물의 화려함을 자랑했던 1940년대 경성은 단지 진풍경에서 그칠 뿐이다. 물론 시절의 낭만은 충실히 조명되었다. 다채로운 색감의 의상, 공들인 티가 역력한 배경 미술은 시선의 만족을 누리기에 모자라지 않다. 귀를 즐겁게 하는 정가(正歌)와 유행가도 상당히 비중 있게 다뤄졌다. 그러니 적어도 경성의 향취에 흠뻑 취하고픈 관객에게는 적당할 선택이라 여겨진다. 문제는 그 이상을 기대하는 경우다. 특히 장르가 주는 카타르시스를 만끽할 요량이었다면 관람 후 아쉬움을 토로할지 모르겠다. 이야기는 흠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탄탄한 밀도를 자랑하지도 않는다. 경성 제일의 기생학교 ‘대성권번’의 동기인 소율(한효주 역)과 연희(천우희 역)는 둘도 없는 동무이자 정가를 전수받은 뛰어난 기생이다. 이들 사이에 소율의 정인이자 당대 최고 작곡가인 윤우(유연석 역)가 나타나면서 셋의 운명은 급물살을 탄다. 변치 않는 애정을 맹세했던 윤우가 연희와 맺어지자 질투에 눈 먼 소율은 급기야 스스로를 타락시키고, 전형적인 악인으로 돌변하여 모두를 파괴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예상에서 일말도 벗어나지 않은 기승전결이다. 여기서 명확히 짚고 넘어가는데, 이 전형적이며 다소 식상한 삼각관계는 작품의 구멍 혹은 패착이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낯설지 않다는 건 서로가 빨리 가까워질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니, 비록 유행가를 즐겨 부르지만 아직은 본분을 지키려 하는 순수한 여자가, 정반대의 세계로 도약한 친구에게 꿈과 정인을 빼앗기고 오뉴월 한마저 품는다는 전제 자체가 그저 새롭지 않다는 까닭으로 비판받을 연유는 없다. 어쨌든 아귀가 맞다. <해어화>의 인물들은 각자 당위성을 지니고 행동하며 나름대로 비장한 아픔을 품은 채 부딪친다. 그리고 그게 전부다. 무척이나 극적이고 서글퍼야 할 클라이맥스는 머리론 따라가지만 도무지 가슴이 떨리지 않는다.

   
ⓒ 해어화 스틸컷 (다음 영화 포토)

요지는 울림의 부재(不在)다. <해어화>를 수작으로 끌어올릴 열쇠는, 전후 사정 헤아려 집어넣은 사건과 충분히 납득 가는 캐릭터들의 욕망이 아니라 스크린 밖 관객으로 하여금 감정을 나눠줄 여지를 마련하는 데에 있었다. 단순히 소율이 악해져서 공감이 덜 갔다는 평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도리어 그녀는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처음과 끝이 다른 인물로 활약하며 작품의 흥미를 담당하는 주축이다. 하지만 하자 없는 주인공이 무슨 소용인가. 순수성이 무너지고 희생이 잇따르며 파국으로 도래하는 과정들은 마치 일련의 공정처럼 제때 나온 후 퇴장할 따름이다. 세 인물의 감정은 잘 짜인 틀에 갇혀 오르락내리락 수동적으로 파도친다. 분위기가 고조된 덕에 일이 벌어진다기보다는, 일단 무언가 터지고 난 다음 감정의 개연성을 강요하는 느낌이다. 공산품은 기능적인 면만 충족시키면 끝이다. 그러나 영화는 아니다. 멜로는 더더욱 안 된다. 마지막 장을 덮은 독자가 자신의 연애관에 어떠한 감상도 추가하거나 수정하지 않았다면 그 사랑 이야기는 실패작이다. <해어화>가 내려던 목소리는 다른 것이었다 주장하지는 말자. 영화는 이루지 못한 남녀의 정애를 논하고 있으며 이는 후반부 주제곡 (제목은 ‘사랑, 거즛말이(거짓말이)’다)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엔딩은 외친다. 사랑이 모든 것을 어그러뜨렸으며, 소율이란 여인은 순정을 지킨 죄밖에 없으니 미워하지 말아달라고. 그러나 입으로만 떠드는 호소는 무력하다. 관객은 팔짱 끼고 앉아, 내가 그녀를 마음으로 용서하기도 전에 영화가 나서서 변호해주는 희한한 광경을 목도해야 한다.

   
ⓒ 해어화 스틸컷 (다음 영화 포토)

연희라는 인물이 지나치게 소율을 위한 장기 말로만 쓰인 사실도 안타깝다. 표면상 주인공은 둘이지만 심리 묘사는 한쪽으로 극명히 치우쳐 있다. 연희는 왜 가수의 길을 택했고, 언제부터 윤우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좀처럼 그려지지 않아 내내 물음표를 남긴다. 윤우로 넘어가면 한층 심각하다. 심지어 감독은 지극 정성으로 한 여자만 바라보던 남자가 한순간 돌아서는 계기조차 살짝 건드리고 넘겨버린다. 단적으로 연희와 윤우의 사랑은 소율을 절벽으로 미는 수단으로써만 작용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소율의 복수극을 실현시키는 경무국장은 대사도 거의 없다. 그는 취했으니 베푼다는 공식을 성실히 실천하는 것에 그친다. 기실 작품에 등장하는 전원이 소율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상황은 극의 균형을 신랄하게 위협한다. 도대체 관객은 누구에게 정을 붙여야 하는가. 처지가 딱하기는 하나 소율은 태생적으로 공감을 사기 어려운 인물이다. 연희는 그에 비해 동정 받을 위치지만 관객이 자신을 이입하기에는 너무 먼 대상이라 탈이다. 윤우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작품 안을 표류한다. 과연 빠져들 수 없는 러브 스토리만큼 지루한 소재가 또 있을까.

책임 소재는 분명 감독에게 있다. 극의 흐름을 조성하고 관객이 머무를 공간을 주는 것은 메가폰을 잡은 이가 해내야 할 몫이다. 자신이 없거든 멜로를 만들지 말았어야 한다. 제아무리 아름다운 꽃이어도 향기가 나지 않는다면 조화에 지나지 않는다. <해어화>의 부진은 결국 본인들끼리 해치워버린 장렬한 멜로 흉내에서 비롯된다. 기생이 ‘해어화(말 못하는 꽃)’라 해서 영화까지 말을 못해서야 되겠는가. 호소력을 잃은 연애담은 당사자에게나 대단한 사고일 뿐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최선이었다고 사료된다. 이 영화의 만듦새에 더욱 미련이 남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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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아
dear_movie@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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