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 매거진=서유진]
1일차. Pamplona~Puente la Reina (24km)
겨울 순례길은 여름에 비해 마이너스 요소가 상당히 많다. 그리고 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날씨다.
겨울은 눈과 비의 연속이다. 프랑스 길의 첫 관문인 생장을 지나는 방법은 피레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 루트를 따르는 것과 발카를로스를 지나는 우회로를 택하는 것 두 가지가 있다. 순례자 대다수는 피레네 산맥을 넘는 것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고, 필자 또한 그랬다. 하지만 눈이 내리면 나폴레옹 루트는 통제되고 무조건 우회로를 따라야 한다. 본인은 오랜 고민 끝에 결론을 내렸다. 나폴레옹 루트를 걸을 수 없다면, 아예 시작을 생장에서 하지 않겠다. 그래서 프랑스 길에서 만날 수 있는 첫 번째 대도시 팜플로나가 필자의 순례길 시작점이 되었다. 순례자 등록을 마치고 얼떨떨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눈은 일찍 떠졌는데 어떻게 시작하는지를 몰라서 쭈뼛쭈뼛 거리기만 했다. 그러다 일단 7시 50분 쯤 문을 열고 나왔다. 나오자마자 보이는 화살표에 괜히 이제 정말 순례자구나, 싶어 마음이 들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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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례길의 첫 시작을 알리던 노란색 화살표. 노란색 화살표는 순례길의 상징이다. | ||
팜플로나는 꽤 큰 도시라서 빠져나오는 데 오래 걸렸고, 처음 본 화살표를 따라가는 게 영 서툴러서 몇 번 길을 잃을 뻔 했다. 하지만 큰 소리로 저 쪽이라고 말해준 아주머니, 휘파람을 불며 거긴 아니라고 알려준 아저씨, 시크하게 손가락으로만 방향을 바로잡아준 할아버지 덕에 멈추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
도시를 빠져나오니 금세 자갈길이 이어졌고, 곧 언덕으로 향하는 길이 이어졌다. 가파른 경사에 헉 소리가 나왔지만 윈도우 바탕화면 속에 있는 듯한 경치에 더 압도당했다. 한 시간 쯤 걸었을까, 페르돈 고개, 한국어로 용서의 고개에 도착했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가만히 서서 ‘용서’라는 단어에 대해 곱씹었다. 나는 누군가를 용서하는 동시에 누군가에게 용서받는 존재일텐데, 이 곳에 서서 하는 나의 일방적인 용서가 의미가 있을까,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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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팜플로나를 지나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용서의 고개 (Monte el Perdon) | ||
다시 힘차게 걸었지만 이내 다리가 후들거렸다. 이제 한계다 싶었을 때 나타난 순례자 한 명. 바르셀로나에서 왔으며 한국을 여행한 적이 있다고 했다. 설악산을 등반해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삼겹살에 소주 이야기를 이어가다보니 어느새 힘든 것도 잊고 나도 모르게 그를 따라 걷고 있었다.
Uterga에서 점심을 간단히 먹고, 힘을 내어 드디어 2시 반쯤 오늘의 목적지인 puente la reina에 도착했다. You are super fast! 라며 칭찬 아닌 칭찬도 받아 더욱더 보람차다. 빨래를 하고, 개운하게 샤워를 한 뒤 시에스타가 끝나기를 기다려 슈퍼에서 저녁거리도 샀다. 알베르게에서 만난 멕시코 순례자가 오늘 광장에서 주현절을 맞이해 축제가 열린다고 했다. 스페인에서는 주현절, 동방박사의 날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다. 밥을 먹고 광장에 나가보니 과연 주현절 전야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조용하기만 했던 마을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니!
한 아주머니가 내 손을 잡고 이끄는 곳으로 따라가보니 곧 동방박사 분장을 한 사람들이 테라스에서 손을 흔들더니 공과 사탕을 뿌려댔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줍기에 여념이 없고, 나도 한 아저씨가 쥐어준 사탕 한 줌을 손에 들고 즐겁게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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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음으로 맞이해 본 주현절. 동방박사 분장을 한 사람들이 던져주는 선물을 받기에 여념이 없다. | ||
내일 걸을 목적지에 대해 순례자들과 함께 상의를 했다. 겨울에는 순례자 전용 숙소인 알베르게가 매우 제한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숙소 오픈 여부에 맞추어서 일정을 짤 필요가 있다. 얻어온 사탕을 나눠먹으며 우리끼리의 주현절을 즐겼다.
첫 날인데도 별 탈 없이 무사히 도착했음에 감사하며 내일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소중한 하루들을 보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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