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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미, 1953년 서울 출생 | ||
[디아티스트 매거진=문희경]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대략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는 아직 싸이월드를 주축으로 한 온라인 클럽(강남의 옥타X같은 그런 클럽말고, 동호회 내지는 커뮤니티 성격의 클럽)문화가 활발하게 이어지던 시기다. 한 아마추어 예술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나는 그곳에서 우연히 알게 된 분의 미니홈피에서, 유튜브 영상 속 하나의 ‘춤사위’로 그녀를 만났다. 1971년 윤복희 쇼, 자신의 데뷔곡으로 라이브 공연을 펼치던 나팔바지 차림의 김정미였다.
6남매의 둘째 딸로 태어난 그녀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신중현 사단에 합류했다. 1971년, 아직 국내에 ‘사이키델릭’이라는 장르자체가 생소했던 시대였다. 당시 해외에서도 사이키델릭 록 장르를 구사하던 ‘여성’보컬리스트는 “마마스 앤 파파스”의 미셸 필립스와 캐스 엘리엇, “빅 브라더 앤 더홀딩컴퍼니”의 재니스 조플린 등을 비롯해 몇 안되는 상황에서,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사이키델릭 록’이라는 신기한 장르와 더불어 ‘여성’ 록보컬리스트로 데뷔한 김정미는 시대를 앞서가도 한참이나 앞서간 가수였다. 1969년 먼저 데뷔한 김추자와 함께 그녀는 신중현의 사랑을 받는 아티스트로 자신만의 커리어를 쌓아나가기 시작한다.
1. 간다고 하지 마오(1971)
김정미는 특이하게도 라이브 무대나 방송이 아닌 영화 OST 녹음을 통해 데뷔한다. 1971년 신성일이 주연으로 등장하고 김무현 감독이 연출한 영화 <대합실의 여인>, 동년도에 개봉한 박종호 감독의 <늑대와 고양이들>의 OST를 작업한 그녀는 이후 신중현으로부터 첫 데뷔곡인 ‘아니야‘와 ‘간다고 하지 마오’를 받아 본격적인 가수 활동을 시작한다. 필자가 유튜브를 통해 그녀를 처음 본 영상이 바로 그녀의 데뷔 무대이다.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퍼포먼스가 범람하는 시대에 속한 젊은이로서, 비주얼적인 면에서 더 이상 받을만한 충격은 없다고 생각했는데―흑백화면 속 끈 소매의 나팔바지 점프슈트차림으로 정체불명의 춤사위를 휘두르는(?) 그녀의 모습은 당시 한국사회의 보편적인 정서를 헤아려 보았을 때 작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온다. (물론 비주얼적인 면에서의 파격을 논한다면 김추자를 먼저 언급해야겠지만 말이다.)
2. 봄(1973)
김추자와 김정미 모두 신중현으로부터 직접 노래 지도를 받았지만 둘은 음악적으로 지향했던 방향이 사뭇 달랐다. 트로트와의 구별을 꾀한, 당시 신중현이 천착하고 있었던 ‘한국적 록(rock)’의 효시 격이 된 김추자는 창법에서부터 한국 전통의 판소리적 요소를 도입하는 등 대중적인 코드와 장르음악 사이를 절충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굳혔다. 반면, 김정미는 타고난 성량이나 목소리 등의 부분에서부터 김추자와 차이가 있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특유의 가늘고 몽환적인 음색은 사이키델릭 장르를 구사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고, 이는 신중현의 음악적 재능과 만나 빛을 발하게 된다.
데뷔 직후부터 끈질기게 거듭되던 유신 정권으로부터의 ‘저속’시비로 결국 1977년 6년간의 짧은 음악활동을 접고 가요계를 떠나지만, 김추자와 함께 신중현의 뮤즈로 한 시대를 풍미한 김정미는 그녀를 기억하는 소수의 매니아층과 더불어 대한민국 가요계에 새겨진 역사 한 줄로 남는다. 1973년 발표한 4집 <김정미 나우(NOW)>는 그런 면에서 김정미에게 있어 일종의 상징점으로 불릴만하다. 신중현이 실험해 온 ‘한국식 사이키델릭’의 완성이면서 록 보컬리스트로서의 김정미의 정체성이 완성된 앨범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앨범에 실린 ‘봄’은 신중현표 사이키델릭의 진수로 꼽히는 곡으로, 같은 해 3집 <김정미 바람>에서 수록되어 최근까지도 꾸준히 리메이크되고 있는 ‘아름다운 강산’과 견줄 만큼 그녀를 대표하는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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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미 4집, <김정미 나우(NOW)>, 1973 | ||
한편, 청아한 푸른색의 가을하늘을 올려다보는 김정미와 그 앞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코스모스는 사이키델릭을 상징한다고 한다.)가 인상적인 4집의 앨범재킷은 신중현이 직접 촬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앨범이 제작되던 시기, 이미 ‘정부에게 찍힌 뮤지션’이라는 낙인이 공공연한 탓에 전문 사진작가에게 작업을 의뢰하는 것 마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제작자인 신중현이 직접 촬영에 나선 것인데, 아이러니 하게도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 신중현의 발품으로 제작된 이 재킷은 그녀의 모든 앨범을 통틀어 ‘가장’ 세련되고 현대적(?)이며, ‘김정미’스럽다. 튀는 것은 곧 범죄가 되던 시대, 서슬퍼런 군사정부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음악에 열중했던 신중현-김정미 콤비의 뚝심을 잘 대변하는 듯하다. 코스모스는 가을에 피는 꽃이지만―, 내가 유튜브를 통해 ‘간다고 하지마오’를 접한 이후 가장 처음 들었던 그녀의 노래가 하필 4집의 수록곡들 중에서도 ‘봄’이었기 때문일까. ‘봄’을 들을 때면 이 앨범재킷의 푸른 이미지가 떠오른다.
3. 난 정말 몰라요(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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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 1943~ 1970. ⓒDavid Gahr/출처: 재니스 조플린 공식 사이트 | ||
1974년 5집을 기점으로 신중현과 작별한 김정미는 이후 여러 작곡가들과 만나 음악작업을 이어가지만, 자신의 노래에 계속되는 금지곡 판정 시비에 시달리다 결국 1977년 9월 지구레코드사에서 나온 앨범을 마지막으로 가요계를 완전히 떠난다. 수록곡들 중 눈에 띄는 곡이 하나 있으니, 그게 바로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 원곡의 ‘난 정말 몰라요(원제:Move Over, 지명길 역사)’다. 60년대 후반 혜성같이 나타나 1970년 29살의 나이에 약물중독으로 세상을 뜨기 까지 4년간 활동했던 조플린의 마지막 앨범을, 김정미가 은퇴 직전 리메이크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남성보컬 위주의 밴드들이 지배하던 록의 세계에서 여성 록 보컬리스트로서의 뚜렷한 정체성을 가졌던 조플린. 하지만 화려한 명성과 달리 무대 밖에서 그녀의 삶은 끝없는 외로움과 그로 인한 약물, 술과의 싸움이었다. 전위적인 창법과 독보적인 색깔, 그에 따른 인기와 그것에 대비되었던 비운의 삶. 시대가 만든 이데올로기에 갇혀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정체성마저 거부당해야했던 김정미는 어쩌면 그러한 조플린의 삶에 일종의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재니스 조플린은 2집 발매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1970년 가을에 한 호텔 방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다음해인 1971년, ‘Move Over’가 실린 그녀의 2집 <Pearl>은 발매되자마자 빌보드 차트를 휩쓸고, 전설적인 명반으로 남는다. 1977년 가을, 김정미는 그 재니스 조플린의 의미심장한 리메이크 곡을 마지막으로 종적을 감춘다. 2000년대 초반 신중현과 그녀의 음악이 재조명되기 시작하면서 조용히 그녀를 사랑해왔던 팬들이 하나, 둘 목소리를 내왔지만, 그녀의 근황에 대해서는 현재 ‘어디에 살고 있는지’ 조차 정확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항간에 미국에서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오기도 한다.) 1981년 결혼으로 활동을 중단하면서 삼십여 년 간의 긴 공백을 가졌지만 최근 다시 가수로 컴백한 김추자와는 정반대의 행보다. 그러니까 김정미는, 마지막 앨범을 내던 그 해를 끝으로 음악과 더불어 ‘가수’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히’ 떠난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정말로 어디로 갔을까? 혹자는 김추자처럼 김정미 역시 다시 가수로 돌아와 주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지금처럼 앞으로도 영원히 전설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언젠가 그녀가 돌아오는 날이 있다하더라도, 적어도 그것이 그녀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염원이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어쩌면 지금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이 한국이 아니라 쉽게 가닿을 수 없는 ‘미국’땅이라는 소문이 도는 것도, 그렇게 ‘김정미 자신의 것인지 혹은 다른 그 누구의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없는 미련’을 이유삼아 가수로서 소환되는 일이 자신의 음악뿐만 아니라 그 시절의 찬란했던 자신을 추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아쉬운 흠 같은 것을 남길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소신이 투영된 것은 아닐까. 어쨌거나 그녀는 내게 사라진 봄처녀로 남았다. 푸른 하늘 아래, 코스모스 위로 연약하지만 고집스런 날갯짓으로 날아가는 하얀 나비를 닮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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