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홍진희]
꽃이 만발할 거라는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날씨마저 이렇게 추울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3월 중순 교토는 아직 쌀쌀한 날씨였다. 바람도 제법 불고 예상과는 다르게 관광객도 많지 않았다. 하필이면 기온거리가 공사중이었기 때문일까. 전날 화려하고 사람들로 북적이던 오사카의 밤을 경험하고 와서인지 아직도 오래된 건물과 거리를 간직한 고즈넉한 교토는 많이 낯설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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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은 없고 공사만 진행 중인 기온거리 | ||
한가한 거리를 걷다보니 딱 봐도 오랜 시간을 견뎌온 것을 알 수 있는 다리가 보여서 잠시 길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다리 입구에는 길을 안내해주려나 싶은 귀여운 두 사람의 동상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주름진 얼굴의 한 노인이 앉아있었다. 무관심한 표정과는 다르게 그 노인은 외국말로 동상의 의미가 무엇일지 추리하는 나와 내 친구가 신기한 건지 힐끔힐끔 쳐다보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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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을 안내해 주는 것 같은 귀여운 동상들 | ||
제법 일본말을 할 줄 아는 친구가 노인에게 말을 건넸다. 별다른 준비 없이 간 여행이었기에 현지인에게 특별히 추천할만한 교토 관광코스가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는 헤이안신궁을 추천하면서 덧붙여 자신이 이 오래된 다리가 지어질 때 참여한 사람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한국에서 온 우리에게 한국에 자신의 가게도 하나있다는 말도 해주었다. 하지만 이 말을 하는 그의 얼굴에는 다리를 지었다고 말할 때와는 다르게 어딘가 슬퍼보였다. 나는 ‘아내가 죽은 후로 한국에는 가지 않아. 그래서 그 가게가 어디있는지도 이제는 기억이 않나.’라는 노인의 말에서 그 이유를 추측해볼 뿐 다른 질문도 어떤 말도 덧붙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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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래된 교토의 다리 | ||
여전히 꼼짝 않고 앉아있는 노인을 뒤로 하고 길을 건너가니 무언가 전통의 느낌이 물씬 나 보이는 과자집을 발견했다. 친구의 말로는 400년 전통을 자랑하는 과자집이라고 하는데 40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곳에서 대를 이어 과자를 만든다는 것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나는 친구의 일본어를 탓하며 쉽게 믿지 못했다. 너무도 빨리 변해가는 세상 속에 사는 나 같은 사람은 확실한 증거를 들이밀어도 의심하겠지. 나는 교토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불필요한 자괴감을 가지고 그 중에 맛있어 보이는 과자를 두 봉지 집어 들었다. 생각보다 맛있음에 놀라고 모양이 다른 두 과자가 같은 맛임에 또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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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 같은 양념을 쓰는 것 같은 전통과자 | ||
그렇게 과자를 입에 물고 다리에서 만난 노인이 추천한 헤이안신궁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주황빛의 건물과 청녹색 지붕이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시선을 빼앗았다. 이곳에 오면 ‘신의 정원‘이라는 뜻의 신엔에 꼭 가봐야 한다는 말에 입장료를 내고 들어섰지만 아직은 쌀쌀한 날씨 탓에 황량한 느낌이었다. 날은 또 어찌나 잘 잡았는지 이곳도 공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인지 정원을 걷다 우연히 만나는 꽃 한 송이마저도 너무도 반갑고 소중한 기분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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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쌀쌀한 날씨 탓에 우연히 만나는 꽃 한 송이도 소중하다 | ||
어느 정도 걸었을까 평상 두 개가 놓인 신엔 내의 카페를 발견하고 자리를 잡았다. 뛰어난 맛은 아니지만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제법 운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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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페에 앉아서 바라본 신엔의 풍경 | ||
신엔을 빠져나와 다시 헤이안신궁으로 향했다. 신사에 왔으니 운세를 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금색통을 요란하게 흔들고 나서 나오는 기다란 막대를 보니 7번이 나와서 200엔을 내고 점괘가 적힌 종이를 받아들었다. 어설프게나마 친구에게 의지해 풀이해 본 점괘는 ‘소길‘. 흉만 아니면 된다던 말과는 다르게 대길이 아니라고 아쉬워하는 나라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소면 어떻고, 대면 또 어떤가. 어쨌든 길인데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점괘가 적힌 종이를 나무에 매다는 것을 보고 따라하려니 신사의 관리 아저씨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다가왔다. 혹시나 실수했나 싶어 이렇게 하는 게 아니냐고 물어보니 아저씨의 말이 나무에 묶는 것도 좋지만 간직해두고 조심하라는 글귀를 보며 항상 경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며 부연 설명을 해주었다. 친구는 나무에 매달기로 했고 나는 아저씨의 말이 더 와 닿아서 간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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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이안신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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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헤이안신궁 | ||
교토에서 만난 모두가 그랬다. 무심한 표정이지만 그들이 무심코 던지는 말들은 다정하고 자세했다. 관광객이니까 그렇겠지 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속없는 나는 그저 이래서 여행이 좋다고 말한다. 뜻밖에 예상치 않은 곳에서 아주 사소한 일이지만 마음이 따뜻해지게 만들어 주는 사람들을 만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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