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메뉴 바로가기 (상단) 본문 컨텐츠 바로가기 주요 메뉴 바로가기 (하단)

It’s getting away from me

김범진 조회수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Google 검색에서 디아티스트 기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디아티스트매거진=김범진] 2014년에는 군대에 있었다. 2015년에도 군대에 있었다. 나와 보니 나는 그대로이고 강의실도 그대로인데 뭔가 좀 변한 것 같다. 사실 많이 변한 것 같다.

 ‘위플래쉬’는 2014년에 휴가를 나와 극장에서 심야로 보았고, 2015년에는 외출을 나와 PC방에서 30인치 모니터로 ‘버드맨’을 보았다. 두 영화 모두 2014년에 나왔다고는 하던데 사회의 소식에 둔감했던 시기라 그냥 괜찮아 보여서 봤다. 일과와 관련없는 모든 것은 재미있을 군인이라 둘 다 재미있었다. 안에서는 그렇게 보던 걸그룹이 막상 밖에 나와서 보면 시큰둥한 것처럼 이 영화들도 그렇게 잊혀지고 마는가 했지만 요새도 가끔 유튜브에서 트레일러나 사운드트랙을 찾아보곤 한다. 내게는 아직까진 또는 변함없이 재미있는 영화들이다.

 두 영화 모두 인물이 중심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앤드류(마일즈 텔러 분)와 플렛처(J.K.시몬스 분) 둘은 명백하게 함께 ‘위플래쉬’를 떠받친다. 리건(마이클 키튼 분)은 얼핏 보면 혼자 영화를 이끄는 듯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에게는 버드맨이 있다. 버드맨은 리건 외부의 시간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나 리건은 아직 버드맨과 함께한다. ‘위플래쉬’ 초반에서는 앤드류보다도 플렛처의 인상이 강하지만 ‘버드맨’에서는 버드맨은 크게 돋보이지는 않는다. 나는 제목만 보고 봤어서 ‘버드맨’이 실제로 활약하는 영화인 줄 알았다.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어쨌든 버드맨은 ‘위플래쉬’의 플렛처와 유사한 부분이 있고, 이번에는 그걸 한 번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앤드류와 리건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유사점이자 가장 큰 차이점은 ‘플렛처’의 위치이다. 플렛처를 만나기 전의 앤드류는 순진무구한 소년이었는데, 영화가 끝날 때 쯤에는 많은 사람들이 저 남자가 처음에 어땠는지를 잊을 정도로 변해 있다. 심지어 플렛처에게 욕도 한다! 플렛처가 선생이며 앤드류가 학생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앤드류가 플렛처가 제시하는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서 절망적으로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말미의 앤드류는 이미 플렛처를 적대시한다기보다도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다. 그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던 본성의 일부가 발현된 것이겠으나 어찌 되었든 앤드류는 플렛처보다 더 지독해졌으며 지독해질 것이다. 닦달하는 플렛처는 이제 앤드류의 내면에서 앤드류를 닦달할 것이며, 성격이나 가치관이 극명하게 바뀌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눈이 풀려 드럼을 치는 앤드류를 앞으로도 쭉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위플래쉬’는 플렛처라는 특정한 성격이나 관념이 앤드류에게서 시작되어 커져가는 과정이고, 플렛처가 가지는 성질은 앤드류의 안에서 커져나가 지속성만 보장된다면(그렇게 독하게 살아갈 체력이 보장된다면) 언젠가는 플렛처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왜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 따스한 햇살이 느껴지고 성공한 인생의 밝은 면이 보이지 않을까에 대한 답변으로 앤드류의 성공이 플렛처의 그것을 단위로 하여 측정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위플래쉬’는 플렛처의 잣대로 앤드류의 성공을 재기 시작하며 플렛처의 잣대로 앤드류의 성공을 예측하는 영화이다. 즉 앤드류의 성공가도에 꽃길을 깔아주기 어려운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플렛처의 방식대로의 성공’은 좀 너무하기 때문이다. 앤드류의 성공은 어쩌면 선생 플렛처의 성공이며 그 성공은 그에게는 축복일지 불행일지 모르겠으나 영화는 답을 내려주지 않는다. 드럼 소리만 이어질 뿐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반면에 리건은 영화 첫 장면에서 속옷만 입고 붕 떠있던 것처럼 한때 잘 나가던 전성기에는 말 그대로 붕붕 떠서 다녔을 것이다. 마블 영화의 주연배우들의 삶을 생각해보면 쉽다. 그러나 리건의 성공은 ‘버드맨’이 물어다 준 성공이다. 물론 그가 있었기에 버드맨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사람들은 버드맨을 찾지 리건을 찾지는 않는다. 그리고 본인이 가장 잘 안다. 리건은 ‘리건’이라는 연극배우로 성공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 시절 자신의 성공이 리건의 성공이라기보다도 ‘버드맨’을 통한 성공이기에 이미 중늙은이가 되어 버렸지만 오롯이 자신만의 성공을 바란다.

 과거의 잘 나가던 자신은 아직 ‘버드맨’의 탈을 벗지 못하고 현재의 리건에게 자꾸 말을 건다. 잘 좀 하자고, 잘 좀 해 보라고. 너는 한때 버드맨이었으며 그건 아직도 유효하지 않느냐고 귓속말을 한다. 리건이 원하는 것은 과거의 자신이 아닌 과거의 자신이 대리하여 누려보았던 영광을 이제서라도 가져보는 것이다. 미간에는 주름이 지고 배가 나온 리건은 노력한다. 속옷만 입고 밖에 나가도 사람들은 리건으로 알아보지 않고 버드맨을 앞세운 리건(‘버드맨’의 리건 맞죠?)을 알아본다.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은 리건이 현재 목표하는 방향을 무의식적으로 조롱한다. 물론 그 조롱은 리건 자신이 스스로에게 하는 조롱이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는다.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조롱하지 않는 주변이 아닌 조롱당하지 않을 만한 영광스러운 자신이기에 결국 그는 머리에 총을 쏜다. 

   
출처 : fobes

 실질적으로 두 영화에서 플렛처와 버드맨의 역할은 많이 다를 것이다. 다르다. 하지만 앤드류에게 있어서 성공이란 플렛처를 떼어 놓고 생각하기 어려워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리건은 버드맨 없이 과거의 성공을 설명할 수 없다. 시계열적으로 ‘위플래쉬’와 ‘버드맨’을 이어 놓으면 그래서 개연성을 찾아볼 수 있다. 플렛처/버드맨이 자아를 가졌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앤드류가 플렛처에 밴드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성공이란 플렛처라는 바로미터에 의해 측정되기 시작하였으며, 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영화 버드맨’이 끝난 순간부터 리건의 현재는 버드맨의 성공을 기준으로 평가당한다. 둘의 광기는 각자 플렛처/버드맨에 의해 발현되며, 양상은 다르지만 속성은 동일하다. 

 재능도 노력도 시간도 부족하지만 열망은 가득했던 앤드류는 ‘Good Job’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자신을 반기며 정량적인 성공에 자신이 더 다가갈 수 있음을 인지한다. 말 앞에 당근을 달아놓고 계속 달리는 것처럼 앤드류는 분명 처음보다는 나아졌으나 멈추지 않는다. 플렛처가 앤드류에게 심벌을 던질 때 박자가 어디가 그렇게 틀렸다고 그러는지 알 수 있는 관객은 없다고 생각한다. 앤드류도 그걸 몰라서 더욱 노력한다. 플렛처의 ‘Good Job’이라는 미사여구는 처음에는 멀고도 요원해 보였으나 앤드류의 성장에 따라 절대적인 것이 아님이 적어도 그에게만은 밝혀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가려지긴 했으나 아마 플렛처는 ‘Good Job’이라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들었다고 해도 106분동안 붙은 가속도는 앤드류를 앞으로 앞으로 더 밀칠 것이고, 아마 그는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거나 또는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더 이상 앤드류는 플렛처가 필요하지 않다. 이미 자신 안에 플렛처의 속성을 마련해 두었고 발현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위플래쉬’에서 앤드류의 성공은 단지 성공적인 연주실력이 아니라 정진 끝에 마련한 플렛처를 닮아 자신을 가속시키는 자아의 부분인 것이다.

 ‘버드맨’에서의 버드맨도 같다. 첫 번째로 성공을 맛보게 해주었다는 점, 두 번째로 자발적으로 자신을 몰아세우며 성공하라고 종용한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마지막으로 ‘위플래쉬’의 끝에서, ‘버드맨’의 시작에서 주인공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과거의 흥행이 그를 ‘버드맨’을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며 성공의 단내를 맡아보게 해 주었으며 그래서 그는 시간의 역순으로 특정한 성공을 꾀한다. 그가 하는 모든 노력들은 과거의 자신이 곁에서나마 느껴보았던 성공을 위한 것이며, 그 방향은 앞을 향하지만 동기는 뒤에 자리한다. 늙어버린 리건이 과거에 머물러서 당당한 모습 그대로를 유지하는 버드맨을 넘어설 수 있는지는 작중에서는 불분명했다: 버드맨은 가상의 슈퍼히어로지 않은가. 그래서 지금 리건의 내면에서는 버드맨의 탈을 쓴 리건 자신이 앤드류에게 플렛처가 했던 것처럼 말을 한다. 그의 ‘플렛처’는 리건을 몹시 닦달한다. 성공하자고, 버드맨이 아닌 리건으로 한때 곁에서나마 누려보았던 성공의 달콤함을 진정으로 느껴보자고 때로는 애처롭게 아니면 격렬하게 몰아세운다. 리건이 원하는 바는 버드맨의 목소리가 원하는 바와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에 그런 버드맨을 버릴 수 없다. 리건은 과거의 삶에서 ‘버드맨’이 채웠던 공극을(이제는 모두 빠져나간) ‘버드맨’이 아닌 ‘리건’으로 메꿔보고자 안달복달하는 중이지만 보다시피,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과정은 쉽지 않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일개 풋내기에 불과한 앤드류가 이미 망친 무대를 리드하려는 행위도, 좋은 연기를 해보겠다고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는 리건도 본인의 전체적인 삶을 파멸하는 데에 불과하다. 성공은 삶의 전부가 될 수 없으며 되어서도 안 된다. 이러한 입장은 ‘위플래쉬’에서 앤드류의 아버지가 대변하는데 앤드류와 리건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고의로/과실로 무시한다. 둘 모두 플렛처/버드맨이 대표하는 성공을 위해 그리고 그 달콤함에 끌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광기를 풍기며 문득 성공한다. 이 행위의 가장 큰 문제점은 해당 행위 자체라기보다도 행위를 촉발시키는 성공의 치명성에 있는데, 플렛처/버드맨의 성공은 크기적으로 분명 어마어마해서 누구나 한 번 쯤 꿈꿔볼 만 하나 그건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 한해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앤드류/리건이 그 정도 인물이 될 지는 분명하지 않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이고, 본인이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다. 어떤 크기와 모양을 가진 성공을 향할지는 본인의 선택이고, 그 과정이나 그 이후를 감당하는 것도 결정에 포함된다. 신중해야 하는 이유는 그 모든 것들을 현재로서는 알지 못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인데, 어쨋든 ‘위플래쉬’와 ‘버드맨’모두 그 선택을 한 인물들에 대한 영화인 것은 분명하다.

 정리하면 앤드류/리건에게 플렛처/버드맨은 성공이라는 대분류 안에서 특정한 동기를 부여하고 특정한 행위를 유도하며 특정한 성장을 견인한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병렬적으로 두 영화를 둔다면 ‘위플래시’는 플렛처/버드맨이 표방하는 특정한 크기와 모양의 성공을 향하는 과정에 대한 영화이며 ‘버드맨’은 그 이후의 이야기이다. 그 특정한 크기와 모양의 성공을 향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며 성공 이후의 모습도 다양할 것이다. 두 영화를 함께 두고 생각해보는 것의 의의는 성공 이전/이후의 선택지의 다양성 중 하나를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을 들 수 있으며 그 성공이라는 것이 유사하다는 것에도 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리건이 리건으로 성공했는지는 마지막 장면에서 사라진 리건만이 판단할 수 있다. ‘버드맨의 목소리’인 리건 자신은 이전의 삶을 부정한다기보다도 그 삶에서 느꼈던 성공을 이제는 자기 자신의 것으로 오롯이 만들자고 제안하며, 이는 앤드류에게 있어서 플렛처가 끼어들기 이전에 원하던 성공과 완벽하게 동일하다. 플렛처는 가속하는 역할만을 담당하였을 뿐이다. 앤드류가 플렛처를 내면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 들어섬으로서 그 스스로가 자신을 채찍질(whiplashing)하기 시작하며 주마가편의 영화인 ‘위플래쉬’가 본색을 드러낸다. ‘위플래쉬’는 말에 채찍질을 가하는 주체가 스승에서 제자 본인으로 옮겨가는 영화인 것이다. ‘버드맨’의 말미에서 버드맨의 목소리는 리건에게 더 이상 말을 걸지 않는다. 표면적으로는 ‘버드맨’의 성공을 리건 자신이 (머리에 총을 쏘는 연기를 통해)획득함에 따라 버드맨이 아닌 리건으로서 성공하였기에 필요성이 소거되었고 내면적으로는 일체화가 이루어졌기에 그러하다. 

 앤드류의 미래 중 한 가닥을 리건의 경우를 기준으로 유추해본다면 따라서 그는 일정한 광기로 번역되는 자기학대적인 과정 없이도 앤드류 개인이 원하는/원했던 특정한 성취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특정인의 성공에 대한 열망이 일정한 광기를 거쳐 발현되는 과정을 ‘위플래쉬’와 ‘버드맨’을 이어 붙인 시간적 구성 위에서 살핀다면 ‘버드맨’에서 리건이 소멸하는 결말 부분이 최종적인 성공의 모습이 될 것이다. 사실 리건이 소멸한 것이 아니라 리건 자신이 버드맨이 되었다는 장면을 문언적으로 해석한다면 리건이 되고자 한 것은 버드맨이 아니라 리건이 이루고자 한 것이 버드맨이 이루어주었던 성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소망이었으므로 그냥 리건은 자신의 소망을 이루었구나 하는 사상의 수많은 표현들 중 하나에 불과하다. 어쨌든 리건은 성공하는 데에 성공하였고, 앤드류는 성공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으나 아직까지는 리건의 성공을 성공하는 데에는 실패하였다. 그리고 결과적인 둘의 실패와 성공의 차이는 당연하게도 각자의 영화적 시간 끝에서 플렛처=버드맨의 존재 유무에 있다.

 플렛처가 원하는 앤드류의 성공이 어떤 것인지는 예상은 해 볼 수 있으나 확실하지 않다. 첫 번째로 플렛처는 앤드류가 자신 없이도 자신만큼이나 스스로를 학대할 수 있기를 바랐을 수도 있으며 두 번째로 앤드류가 자신만큼이나 그 스스로를 학대하지 않고서도 성공하기를 바랐을 수 있다. 두 번째를 소망하는 플렛처는 전적으로 선한 인물이다. 앤드류의 선택은 영화의 모든 장면들이 뒷받침하는 것처럼 첫 번째의 성공이었다. 그가 나락으로 빠지는지는 모른다. 본인의 선택이기 때문에 외적에서만 바라보고 판단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수많은 가정 없이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리고 말하고 싶은 것은 그래서 플렛처/버드맨을 통해 앤드류와 리건의 영화에서 추출해낸 ‘플렛처’와 ‘버드맨’이 표방하는 성공의 일면이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성공하면 좋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 성공할지를 선택하는 것은 자유이다. 이 자유는 사회적인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앤드류의 학대는 ‘갈증’의 카나코나 아키카즈와는 달리 자신을 향하는 것이기 때문에 범죄는 아니다. 즉 반대로 보면 개인의 성공을 위해 사회적인 자유를 누리면 범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 갈래를 제외하고 개인적인 면에서, 성공을 향하는 갈림길에는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고 이 시점에서의 선택이 자유라는 것이다. 선택은 본인이 할 수도 있지만 등 떠밀려서 할 수도 있는 것이며, 그렇기에 선택은 신중하게 해야 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알력에 의해 나의 선택의 주체성이 훼손되지 않게 하기 위해 단단해질 필요도 있다. 앞서 말했지만, 앤드류가 저렇게 성공해서 지속적으로 저런 상태로 살아가더라도 본인만 감내할 수 있고 타인에게 피해만 없다면 그에게는 이미 천국에 도달한 것일 수도 있다. 리건이 머리에 총알을 박아 두고 살아가며 버드맨을 벗어나든 말든 본인의 선택이 귀착된 결과로서, 그만 만족스러우면 충분할 수도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는 이 두 영화가 공통으로 강조하는 것은 플렛처와 같은 학대나, 리건과 같은 자기비판의 반사회성이 아니라 선택의 굳건함과 어떠한 선택에도 굴하지 않을 인간으로서의 당당함일 것이다. 

 두 영화 모두 행복감을 불러일으킬만한 영화는 아니다. 그렇지만 이 영화들은 매우 감정적인 영화이다. 그리고 결말을 알고 있던 모르고 있던 결말까지 가는 과정에서 관객에게 밀착하는 영화이기도 하며 처음 본다면 결말을 진짜 예측하기 어려운 영화이기도 하다. ‘버드맨’의 경우 나는 영화 중후반까지 진짜 리건이 초능력을 마구 쓸 수 있는 슈퍼히어로 영화인 줄 알았다. 영화가 끝난 후에 모든 초능력 장면들이 그렇게 아려올 줄도 몰랐다. 두 영화 모두 개강하고 얼마 되지 않아 중간 중간 잘라서 몇 번 봤는데, 그때마다 장면 장면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변하지 않은 것은 영화만 있지도 않은 것 같다. 둘 다 좋은 영화들이고, 개인적으로 항상 영화를 보는 내가 변함없기를 바라게 해 주는 영화들이다.

 (제목은 The Chemical Brothers – Wide Open 에서 가져왔습니다) 

관련 기사

author-img
김범진
bjkim309@theartist.co.kr

댓글0

300

댓글0

[칼럼] 랭킹 뉴스

  • 당신의 관념을 인버전할 테넷
  • 세계로 나아간 한국영화 Choice 5
  • 2019년 한국영화계 키워드 Choice 5
  • 제40회 청룡영화상 주요 부분 수상 예상 Choice 5 (인물 부문)
  • 여성이 주도한 한국영화 Choice 5
  • 나는 사물이 되고 싶다

당신을 위한 인기글

  • 현재 해외에서 한국인 피부를 갖고 논란이 된 이유
    현재 해외에서 한국인 피부를 갖고 논란이 된 이유
  • 한국에서는 평범한데…北 평양 고위층만 쓴다는 귀한 생필품의 실체
    한국에서는 평범한데…北 평양 고위층만 쓴다는 귀한 생필품의 실체
  • 방송일 하기전 SM으로 부터 소녀시대 제안 받은 기상 캐스터
    방송일 하기전 SM으로 부터 소녀시대 제안 받은 기상 캐스터
  • 아버지가 저지른 사기 사건의 공범으로 몰린 여자 아이돌
    아버지가 저지른 사기 사건의 공범으로 몰린 여자 아이돌
  • 100kg 넘던 여고생에서 현재는 화제의 몸짱 글래머 의사로 유명한 이분
    100kg 넘던 여고생에서 현재는 화제의 몸짱 글래머 의사로 유명한 이분
  • 사진 1장에 낚여 하와이에서 사기 결혼한 1,000명의 한국 여성들이 한 일
    사진 1장에 낚여 하와이에서 사기 결혼한 1,000명의 한국 여성들이 한 일
  • 심수봉 또 폭로 목격나와…이번에는 일반인에게 “비꼬며 훈계”
    심수봉 또 폭로 목격나와…이번에는 일반인에게 “비꼬며 훈계”
  • 한때 유재석 보다 잘나가는 국민 MC였는데…방송일 끊껴 호소중인 방송인
    한때 유재석 보다 잘나가는 국민 MC였는데…방송일 끊껴 호소중인 방송인

공유하기

[cosmosfarm_share_buttons url="https://theartist.co.kr" title="디아티스트" align="center"]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