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황희지] 2014년 4월 19일부터 8월 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되었던 예스퍼 유스트의 전시는 자극적인 내러티브를 보여주면서도 노골적이지 않은 표현들로, 작품과 대면한 감상자들의 은밀한 구석을 건드리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그의 작품은 간단명료하지만 강렬하다. 인간의 본능을 미묘하게 부각시키는 영상은 존재들의 교감을 섬세하게 추적하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불편한 쾌감이라는 모순을 극대화 한다. 그가 제시하는 욕망의 풍경들은 미묘한 긴장감 속, 우리의 무의식을 마주하게 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무의식이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일차적인 본능, 즉 생리적, 물리적, 원초적 욕구들로 구성된다. 이처럼 사회성이 포함되지 않는, 인간의 내면으로 채워지는 무의식 속에는 당연히 사회적으로 지탄받을 금기된 성향과 욕망, 상상들이 들어있다.
유스트는 이러한 무의식 속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던 욕망의 영역을 수면 위로 끌어내어 제시함으로써 ‘인지’와 ‘각성’의 여지를 남겨둔다. 사회적 검열에 의해 좌절되었던 욕망을 마주한 순간은 억제와 쾌감이라는 불편하고도 모순적인 감정의 혼란 상태를 야기한다.
출처&Video:http://vimeo.com/62385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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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is nameless spectacle 이름 없는 장관, 2011, 13:00min 출처=https://vimeo.com | ||
휠체어를 탔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하이힐을 신은 그녀는 ‘서있음’이라는 내면의 욕망을 대변하는 듯하다. 반대편의 스크린에는 그녀를 좇는 또 다른 시선, 욕망의 대상을 끈질기게 탐닉하는 젊은 남성이 보인다. 여성은 이를 의식한 듯 남자에게 시선을 돌리고 갑자기 경련을 일으키며 괴로워한다. 간질, 신 내림, 오르가즘 같기도 한 그녀의 발작은 내재된 욕망의 분출, 감정의 절정상태로 보인다. 그리고 카메라는 고통과 쾌감 사이를 오가는 그녀의 모습을 무미건조하게 응시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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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is nameless spectacle 이름 없는 장관, 2011, 13:00min 출처=http://www.kunsten.nu | ||
이 작품은 거대한 두 개의 스크린을 양 옆에 두고 감상자로 하여금 양 스크린의 가운데에 서서 휠체어를 탄 여자와, 여자를 따라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게 한다. 이처럼 마주보는 두 개의 대형 스크린은 서로에게 건네는 무언의 대화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정서적 공간을 형성한다.
그녀의 시선과, 그녀를 바라보는 남성의 시선이 교차로 나타나는 양쪽의 스크린은 대상의 움직임을 연쇄적 편집으로 보여준다. 이와 같은 시선의 추적은 스릴러 같은 상황을 제시하며 감상자를 팽팽하게 긴장된 정서적 구조 속에 이입하도록 한다. 가까우면서도 먼 두 사람의 존재는 결국엔 좁혀지지 않는 하나의 틈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평생 만날 수 없는 욕망의 평행선과 같다.
“…모든 가식을 벗어내고 무의식의 상태가 되어 자신과 마주하게 한다. 관람자로 하여금 내면의 성찰과 명상을 유도하는 것이 내가 말하는 욕망의 ‘응시’이다…”
욕망이라는 정서적 여정의 궁극점은 과연 쾌락인가? 라는 물음에 유스트가 제시하는 것은 바로 ‘응시’이다. 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볼 수 없듯이 사람은 자신의 무의식을 객관적으로 탐구할 수 없다. 하지만 거대 스크린 사이에 서서 끊임없이 타자의 욕망을 관찰하는 과정은 그들의 정서적 여정에 동행하도록 한다. 이에 감상자들은 그들의 무의식 속으로 빠져들고 그들의 욕망과 감추어져 있던 자신의 욕망을 동일시하게 된다. 영상 속 타자와 맺은 은밀한 관계 속에서 우리는 무의식과 마주하게 된다. 이처럼 유스트의 물리적 평행선은 나와 무의식의 객관적 응시를 가능케 하는 정신적 틈인 것이다. 그 틈에서 우리는 검열로부터 벗어난 것에 대한 인지, 그리고 그 인지로부터 파생되는 불편한 쾌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감추어왔던 욕망과 마주하는 순간을 감당하는 것은 온전히 감상자의 몫이다. 그가 제시한 것은 ‘응시’이지만, 관람자에게는 불편한 것에 대한 ‘직면’의 순간이기도 하다. 숨겨진 욕망이 있음을 인지하는 것은 일차적인 문제이지만 그 욕망을 응시한 순간 우리는 좁힐 수 없는 거리도 동시에 체감하게 된다. 나의 능력과 상관없이 무의식 속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좌절감은 우리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과도 같다.
‘욕망’은 소유할 수 없는‘이라는 기본 전제를 가지고 있다. 끊임없이 추구되어야 하지만 충족되어서는 안 되며 항상 내재되어 있지만 검열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체로 무의식의 모순적 본질을 대표한다. 마치 유스트의 작품 속 끝내 좁혀지지 않는 남자와 여자의 관계, 거대한 스크린 사이 평행의 공간은 우리가 결코 욕망과 쾌락의 합일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평행선을 형상화한 그의 작품 속, 마주보고 있음에도, 응시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잡히지 않는 욕망은 나약함을 확인함과 동시에 절망감을 안겨준다. 무의식이라는 거대한 바다 앞에 선 순간 밀려오는 두려움은 너무도 거대해서 감히 손 뻗을 수조차 없으리라.
우리는 멀게만 느껴지는 두 개의 시선 속 평행선을 하염없이 바라만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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