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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와 멜로, 그 중간 어귀에서…….<캐롤>

신동혁 기자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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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디아티스트매거진=신동혁]****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 남들이 다 이야기하는 것처럼 사랑은 숭고하고 완전한 것일까? 사랑을 소재로 하는 영화는 각자 이런 질문을 갖고 시작한다. 본질을 무엇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로맨틱 코미디가 되기도 하고, 멜로가 되기도 한다. 아주 지극히 개인적으로 멜로를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는다. 슬픔과 그리움을 강조하는 멜로의 정서가 왠지 사랑의 본질은 아닌 것 같아서 그렇다.

사랑은 완전하지 않다. 언젠가 변하기 마련이고, 떠나기 마련이다. 심리학자 자크 라깡은 이런 사랑의 본질을 ‘다시(encore)’라고 말했다. 우리가 이상형을 처음 봤을 때에 느끼는 명문화 되지 못하는 욕망을 굳이 언어로 표현해보자면 ‘내가 감정과 생각과 쾌락을 저 사람과 같이 공유하고 싶다’로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욕망은 절대로 완벽히 이루어질 수 없다. 사람은 독립적인 존재니까. 내 자아의 일정부분을 상대에게 열어줄 순 있대도, 완전히 하나로 합쳐질 순 없다. 사람들은 이 사실에 대한 아쉬움으로 언제나 새로운 사랑을 찾는다. 이것이 사랑의 한계다.

멜로 영화는 사랑의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사람의 한계가 존재할 뿐이다. 이 사실에 대한 이유는 간단하다. 사랑이 한계가 없어야 아련해지고, 사람이 한계에 부딪혀야 숭고해지기 때문이다. <캐롤>의 테레즈와 캐롤은 애초에 각각 이성 연인이 존재한다. 캐롤에겐 이혼을 준비 중인 남편 하지가 있고, 테레즈에겐 결혼하자고 졸라대는 남자친구 리차드가 있다. 그런데 <캐롤>은 계속해서 테레즈와 캐롤이 곁에 있는 남자들을 사랑하지 못할만한 이유를 꾸준히 만든다. 물론 테레즈와 캐롤의 사랑을 조금 더 부각하려는 의도이겠지만, 어쨌든 하지는 의심이 많은 남자이고, 리차드는 지극히 가벼운 남자이며 자기중심적이다. 이런 ‘못된’ 남자들 옆에서 위로 받지 못하고 쓸쓸한 여성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줄 수 있는 동성에게 끌린다. <캐롤>에선 과거의 사랑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가는 지극히 일반적인 사건이 너무도 쉽다. 관객들도 당연스레 그 쉬움에 매몰된다. 결국 ‘리차드와 하지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테레즈와 캐롤이 애초에 그들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테레즈는 ‘거절하지 못하는 여자’이고 캐롤은 ‘동성애자’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 사실이 실연의 대상자인 리차드와 하지가 관객들에게 조롱과 질타의 대상이 되는 당위가 될 수는 없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유사하게 여성의 동성애를 그린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한계선을 사람이 아닌 사랑에 긋는다. <가장 따뜻한 색, 블루>에서 감정적인 교류와 육체적 쾌락을 공유하는 아델과 엠마는 결국 남들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동성 연인이 된다. 그러나 아름다운 햇살 배경에 그려진 동성애의 숭고함은 지극한 외로움이 불러오는 고독감에 끝이 난다. 이 대목에서 드러나는 남자의 품에 안긴 아델의 모습은 그녀가 다시 이성애자로 돌아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만 이성애와 동성애를 같은 사랑의 범주로 등치시키면서 사랑의 본질인 그 한계성을 꼬집는다. 아델을 외롭게 한 엠마, 엠마를 상처 준 아델. 둘 중에 나쁘게 그려지는 사람은 없다. 그들의 사랑이 끝이 남은 단지 그 사랑이 한계에 부딪힌 것 뿐이니까. 그러므로 후에 엠마에게 집착하고 카페테리아에서 그녀를 유혹하는 아델의 모습은 찌질하다거나, 우습지 않다. 아픈 집착을 소묘할 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동성애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강하게 내포할 수 있었다.

다시 <캐롤>로 돌아와서, <캐롤>도 역시 동성애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차원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보이긴 한다.

<캐롤>은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테레즈와 언제나 창 안에 머무는 캐롤의 모습을 그린다. 렌즈를 통한 시선의 접촉은 일정한 왜곡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왜곡을 깨칠 수 있는 건 카메라를 내리고 맨 눈으로 상대를 바라보거나, 직접 창문 안으로 들어가서 상대를 마주하는 방법뿐이다. 이와 같은 형태로써 한계가 명확한 어떤 사건, 감정을 넘어서는 건 ‘사람의 의지’라고 <캐롤>은 스스로 밝힌다. 실제로 테레즈와 캐롤 간의 사랑은 이 의지가 발현하며 시작된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테레즈와 캐롤은 지극히도 다른 사람이다. 상류층 여인이자 성숙한 기혼녀 캐롤과 사진가를 꿈꾸는 미성숙하고 가난한 미혼녀 테레즈. 계급적으로 멀리 떨어진 둘의 사이는 계속해서 무언가 벽으로 가로막힌다. 식당에선 식탁이 그들의 사이를 가로막고, 백화점에선 가판대가 가로막는다. 그 벽을 여는 것은 다분히 의지의 영역이다. 그러므로 테레즈를 관심에 품은 캐롤이 그녀를 집으로 초대하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의지는 다시 가로 막힌다. 처음에는 다분히 호감과 동경이 교차되었을 그녀들의 시선은 캐롤의 남편 하지의 등장으로 방해된다. 캐롤과 테레즈가 서로 서있는 공간은 분리되고, 마주보던 시선은 평행선을 그린다. 거기다가 순수한 시선이 음란한 관계로까지 매도당하며 다가갈 수 없는 거리감이 형성되고 그 아득함에 테레즈는 말없이 눈물을 흘린다. 이 대목에서 다시 의지를 내는 건 캐롤이다. 늦은 밤에는 전화를 해선 안 된다는 예의란 벽을 넘어서 캐롤은 전화한다. “같이 여행가요.”

이 의지를 계기로 남편과 남자친구의 만류를 뿌리치고 캐롤과 테레즈는 여행을 떠난다. 주변의 삭막한 블루 톤의 배경과는 상반되는 원색 옷을 입은 두 여인의 세계에는 오로지 둘 만이 존재한다. 세상의 시선과는 다른 사랑을 꿈꾸는 인물들의 희망은 바깥 세계와는 다른 프레임의 굴레 안에 존재하며 따뜻한 정서를 풍긴다.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은 무엇보다도 달콤했고, 그동안 부끄러운 듯 엇갈렸던 시선도 마주 바라본다. 이 시야 안쪽의 것은 모두 안온하고 평안하다. <캐롤>에서 가장 아름답게 그려지는 장면들은 여행 길에서 서로 감정을 공유하는 테레즈와 캐롤이 마주 보는 장면이다. 이전까지 내내 누군가를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던 테레즈는 캐롤 앞에서 당당해진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성장한 캐롤이 사랑을 표현하면서 그들의 사랑은 깊어간다. 그러나 감정과 생각을 공유하고 함께 동침하며 쾌락까지 나눈 그녀들의 사랑은 가정을 지키려는 캐롤의 남편 하지의 계략에 빠져 헤어질 위기를 맞는다. 이 사건으로 지금까지 캐롤과 테레즈의 아름다운 사랑을 봤던 관객들에게 하지는 속된 말로 ‘죽일 놈’이 되어버린다. 지금까지 아름다운 영상미로 포장되어 그려진 캐롤과 테레즈의 관계는 사랑의 한계를 넘어선 사람의 의지를 그리며 숭고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캐롤과 하지의 관계에서는 각자의 사랑이 서로 다른 욕구를 품는 그 ‘한계성’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하지라는 개인의 한계를 그린다. 이처럼 대비되는 사랑의 형태는 한쪽을 너무 숭고하게 포장한다.

캐롤과 테레즈가 나눈 사랑이 너무도 숭고해서인지, 그들은 며칠 간 밖에 나누지 못한 사랑에 대해 너무도 지극한 그리움을 발산한다. 추억이 없는 그리움은 아마도 일순간의 강렬한 감정의 기억 탓이겠지만, 타인을 의지적으로 자신의 공간에서 밀어내는 테레즈의 행동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캐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혼란스러운 건지 같이 살자는 캐롤의 제안에 테레즈는 처음의 거부를 깨치고 천천히 발걸음을 캐롤에게 향한다. 라깡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완전한 사랑을 그녀들은 성취한 것일까? 엔딩 씬에서 카메라를 바라보며 지긋이 웃어 보이는 캐롤의 미소는 온화하다. 완전한 안락과 완전한 사랑처럼 보이는 이 미소는 그러나 왠지 모르게 작위적이다. 어쩌면 동성애가 우월적 사랑이란 메시지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내 삐뚤어진 시선일지도 모른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물론 <캐롤>은 훌륭한 영화다. 다만 이 칼럼은 <캐롤>을 향해 쏟아지는 극찬 속에서 ‘사랑이 이런 걸까?’하는 내 삐뚤어진 생각이 빚은 억지 칼럼일 뿐이다. 멜로 영화의 구조적, 장르적 맥락에서 <캐롤>은 아득한 그리움을 향한 지독하리만치 완벽한 연출을 그렸다. 결국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엔딩의 미소를 통한 ‘만남의 카타르시스’ 또한 완벽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그게 아니다. 세상에 숭고한 사랑은 없다. 모든 사랑은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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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혁 기자
ziziyazizi@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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