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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디 셔먼, <무제 영화 스틸> #2, 1977 | ||
[디아티스트매거진=양효주] 세상에는 ‘나’에 대해 묘사하는 여러 이름이 있다. 젠더의 구분으로서 ‘무엇’, 혈연관계에서의 ‘누구’, 사회적 위치에서의 ‘누구’… 나는 불리는 대로 형성된다. 김춘수 시인의 유명한 <꽃>도 그렇게 말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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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indy Sherman, Untitled-Film-Still-21, 1978 | ||
“기껏해야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싸구려 영화의 언어로 생각하는 모든 여성과 함께 그녀가(신디 셔먼) 공유하는 정체성의 초상화”
-아서 단토
현대미술에서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사진작가 신디 셔먼. 그녀는 대중들에게 익숙한 영화 속 캐릭터로 분장하여 초상화 작업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I catch a glimpse of myself in the reflection of the glass for one of the prints, and start to question how much of my “look” comes from who I am deep inside.”
–Ciny Sh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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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indy Sherman at the Dallas Museum of Art | ||
셔먼은 ‘모방’을 도구로 하여 사진 모델이 ‘어떻게 관찰되는지’를 보여준다. 역으로 이를 지켜보는 ‘관음증적인 관람자’의 태도도 상기시킨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의 모습은 진정 진실한가? 우리는 거울을 보면서도 ‘진짜의 나’를 외면하고 집단의식에 각인된(혹은 그렇게 되고 싶은) 아름답고 그럴싸한 ‘허구의 이미지’로 나를 투영하지는 않는가?
“You begin to think of women you know or you have met who could be these characters”
-Ciny Sh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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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indy Sherman, Untitled Film Still #6, 1977 | ||
타인이 혹은 사회가 ‘기대하는 나’에 ‘실존의 내’가 맞춰야 한다. 나를 지시하는 모든 제도의 이름들은 내 “정체성을 강요하는 구속복” (Aleida Assmann)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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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indy Sherman, Untitled Film Still 14, 1978 | ||
“너 뭐가 될래?’ 어릴 때부터 줄기차게 들어온 질문. ‘무엇이 되고자 하는가’는 인간이 태어난 순간부터 운명적으로 쫓는 인생 화두이다.
“너는 어느 그룹에 소속되어 있니?” 소속이 없는 것만큼 살면서 위협적인 것도 없다. 투명인간이 되고파 했던 어릴 적 판타지는 놀랍게도 실현 가능하다!
그냥 나 인대로 괜찮을 수 없을까? 지금 이대로에 만족하면서(감히!) 변화를 꾀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형편없는 낙오자가 된 느낌이다.
이제는 웰빙 well-being을 넘어서 웰비커밍well-becoming 이 미덕이 돼버린 시대다. ‘나는 불완전하다. 좀 더 완전한 존재가 되기 위하여 끊임없이 진보해야 한다.’
그런데 어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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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효주 미술 칼럼니스트 | ||
대학과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습니다.
시각문화예술·미학 일반에 관심을 두고 있으며
미술사·미학·철학적 담론으로 우리의 삶을 분석해 보고 보고 있습니다.
blog.naver.com/bomnal0407 효주‘s 휴머니스트 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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