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양효주] 일반적으로 망막에 들어오는 시각 정보들을 ‘사실’로 믿는 데에 별다른 망설임이 없다. 하지만 막상 누군가가 ‘보이는 것이 정말 진실일까?’라고 묻는다면 글쎄,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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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Rene Magritte –저무는 해 Le Soir qui Tombe (19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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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는 평소 우리가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상식·의식을 ‘의심해보게’ 한다. 믿어 의심치 않은 세계가 어느 날 “실은, 당신이 알고 있던 것은 모두 착각이야”라며 뒤통수를 가격한다. 작품 <저무는 해>는 바로 이 의식의 세계가 깨지는 사건, 이로 야기되는 혼란스러움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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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 마그리트 Rene Magritte -저무는 해 Le Soir qui Tombe (1964) | ||
저 숲은 그림인가 아니면 그림 밖의 풍경인가? 우리는 어떻게 인식(안)과 세계(밖)를 구분해낼 수 있을까? 우리가 아는 세계는 사실 우리의 지각 너머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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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 마그리트, 폭포, 1961 | ||
나는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간밤에 꾼 꿈은 유독 인상적이었는데, 꿈속에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형체 없는 적과 안간힘을 쓰며 한참을 힘겨루기를 벌이다가 잠에서 깨었다. “아, 꿈이었네”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있다가 ‘진짜로’ 잠에서 깨었다. (‘꿈속에 꿈’이 흔한 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내게는 처음 있는 일이라 꾀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꿈과 현실’, ‘무의식과 현실’, ‘의식과 현실’의 경계는 서로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세 개의 진영을 정신없이 넘나들다 보면 나중에는 그것의 차이가 묘연해진다.
그러다 보면 믿어 의심치 않았던 현실이라는 견고한 담장이 무너져내려, 플라톤이 말한 대로 이데아의 미메시스인 현실에서 살면서 현실 너머의 관념의 세계인 이데아를 열망하는 것이 돌연 바람직해 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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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네마그리트 ,표절, 1960 | ||
무언가를 믿으라고 할 때, 그 기저에는 얼마나 맹목적인 순종이 강요되고 있는가?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오류와 의의를 묵살하고 있을까?
나의 의식은 전적으로 나에게서 기인하는 것인가? 그것은 진정 어떠한 권력에 의해 강요되거나 이념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내적 정신에서 발아한 것인가? 아니 순수한 정신이라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가? 정신이라는 것이 신체를 떠나 자유로울 수 없는데, 내 정신은 내 몸이 속한 이 사회의 이데올로기와 문화, 가치를 내포한 시대정신과 얼마만큼 분리될 수 있단 말인가? 의식은 그렇다 치고 감각은 또 어떠한가? 감각만큼 우리를 속이려 드는 것도 없다.
마그리트가 작품으로 던지고자 한 메시지는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은 ‘진실’이 어쩌면 자의반 타의반으로 빚어진 ‘착각’의 오류일 수 있으니 한 번쯤 모든 것을 의심을 해보라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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