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홍성빈]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에 단역으로 출연했던 배우 송강호는 어느덧 ‘국민배우’(라는 표현을 썩 좋아하진 않지만 어쨌든)이라는 타이틀이 어색하지 않은 배우가 되었다. 무려 20년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뀌었지만, 여전히 형형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는 송강호라는 거인. 회사원에 비유하자면 그는 ‘영화 현장’이라는 직장에서 20년간 화려한 성과를 올리며 승진을 거듭한 셈이다. 그것도 선배와 후배, 고객들 모두에게 큰 사랑을 받으면서 말이다. 그 부침 많은 영화계에서 이른바 ‘근속’을 한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우리는 그 대답을 이미 알고 있다. 어렵다, 그것도 아주아주 많이. 이쯤에서 던지고 싶은 질문 하나. 과연 송강호라는 사람은 어떻게 그걸 가능하게 할 수 있었을까?
폭우가 쏟아지던 2015년의 어느 날, 마침 박찬욱 감독의 <공동경비구역 JSA>(2000)를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명필름에서 주관한 ‘명필름 전작전’ 행사를 통해서였다. 다시 봐도 영화는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수작이었다. 박찬욱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영화적 재능을 마음껏 뽐냈고 흥행에도 성공했음은 물론이다. 배우들 역시 훨훨 날았다. 이병헌, 김태우, 신하균, 이영애. 두말하면 입 아픈 정상급의 배우들이 그야말로 정상급의 연기를 선보였다. 그중에서도 송강호 배우는 가볍게, 때로는 무겁게, 그야말로 자유자재의 리듬감으로 이 비극의 레퀴엠을 지휘했다. 가히 마에스트로라 부를 만한 경지였다.
운이 좋게도 영화가 끝난 뒤 <공동경비구역 JSA>의 마에스트로를 만나볼 수 있었다. 전작전답게 특별히 관객과의 대화(GV) 시간이 마련되었는데 그 주인공이 송강호 배우였던 것이다. 소탈하게 웃으며 등장한 그는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와 영화에 대한 유쾌한 대화를 나눴다. 수많은 인터뷰와 GV를 경험했지만, 관객 앞에 직접 서는 것은 언제나 떨리는 일이라 말하며 그는 허허 웃었다. 송강호 배우 특유의 웃음이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의 연기만큼이나, 친근하고 인간적인 그의 웃음을 좋아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웃음 덕인지 두 사람의 대화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마무리됐다. 그리고 이어진 관객들의 질문. 그날 내린 폭우만큼이나 많은 질문들이 우수수 쏟아졌다. 그 중에서도 배우지망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20대 청년의 질문이 인상 깊었다. 고백하건대 이 글은 전적으로 그의 인상 깊은 질문 덕에 씌어졌다. 어쩌면 그의 질문이 송강호 배우의 불가사의한 ‘20년’을 설명해줄 힌트가 될 것 같았기 때문에. 동시에, 그 힌트가 우리의 삶에 던지는 어떤 화두가 되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의 질문은 이러했다.
“배우님이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 만큼은 자신 있다, 싶은 게 무엇인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신 역시 배우의 길을 걷고 싶은데, 외모도 딸리고 부족한 게 많아서 마음이 힘들다는 청년. 그래서 그는 앞으로 선배가 될 대배우에게 자신감의 원천을 묻고 싶었던 거였다. 송강호 배우는 언젠가 자신의 후배가 될 지도 모르는 이 관객의 질문을 듣고 잠시 숨을 골랐던 것 같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은 좋은 배우가 될 수 없는 조건을 다 갖추고 있다고. (잠시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자신은 외모가 잘 생긴 것도 아니고, 경상도 출신이라 사투리도 심하다 등등 배우가 되기엔 참 안 좋은 조건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자신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끝까지 믿고 사랑했다는 것이다. (그제야 모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참으로 평범한 대답일 수 있었지만 그 평범함이 어떤 진실처럼 느껴졌던 것은, 그것이 자신의 ‘철학’을 기꺼이 몸으로 증명해온 송강호라는 대배우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그간 송강호 배우는 자신의 ‘나쁜’ 조건을 ‘좋은’ 개성으로 바꾸는 방식의 작품 활동을 해왔다. 약점이 될 수도 있을 특유의 억양과 발음을 캐릭터화해 많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이다.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던 <넘버3>(1997)와 <살인의 추억>(2003)을 비롯, 수없이 많은 그의 작품들을 떠올려보자. 만약 ‘나쁜’ 조건만을 탓하고, 비관하고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의 송강호라는 배우는 없었을 것이다. 굳이 ‘자신감’이라는 진부한 단어를 들먹이지 않아도, 단점을 개성으로 바꾸어버리려는 노력, 자신의 단점마저 끌어안고 매력으로 바꾸어버리려는 자신감이 지금의 ‘송강호’를 만든 게 아닐까. 이것이 송강호가 가진 배우로서의 ‘무기’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을 우리의 삶에도 적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GV에서 질문을 던진 배우지망생의 고민은 우리 모두의 고민이기도 하다. 가야만 하는 어떤 길을 앞에 두고 자괴감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자신의 부족한 의지와 재능을 지레짐작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모습에 실망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아무도 이런 모습을 반겨하지 않을 것이라는 짐작이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뒤집어 보면, 그것 또한 나의 개성 혹은 캐릭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제약이 있다면 그 제약에 맞춰 내 창조성을 발휘하면 되지 않을까. 가능성이 지나치게 많거나 선택의 폭이 너무 넓을 때 오히려 창조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창조성의 ‘결정 장애’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때때로 제약은, 약점은, 축복이 되어주기도 한다. 송강호 배우가 그러했던 것처럼. 어떤 길을 앞두고 있을 때, 자괴감과 두려움, 약점마저 개성과 매력으로 바꾸어버리는 능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사랑하는 능력. 송강호의 무기였으며 지금부터는 우리의 ‘무기’가 될 수도 있을 그러한 능력. 그런 자신감이 우리에게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국민배우’ 송강호가 20년간 근속을 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무기’라고 지칭한 그만의 능력, 그 힘이 아니었을까. 물론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누구나 송강호가 될 수는 없다. 노력만으로 불가능한 일이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이 개인의 문제이든, 시스템의 문제이든 모두가 톱클래스의 배우, 가수, CEO가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스스로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는 있다. 모든 ‘성공’이라는 것은 사실 이 지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가 성공이라 부르는 것은 세상이 자본의 논리대로 만들어놓은 임의적 기준에 불과할 수도 있다. 성공이라는 것은 단기적인 목표나 반짝거리는 명예가 아닌 ‘행복’에 방점이 찍혀야 하는 가치다. 행복이라는 가치를 담보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성공이라 부를 수 없다. 송강호 배우 역시 행복하기 위해 연기를 했을 것이고, 행복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가지려 했을 것이다. 지금의 ‘송강호’는 어쩌면 그 행복의 결과물일 것이다. 감히 말하건대, 성공은 행복의 부속물이고,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자신만의 무기를 지녀야 한다. 나의 단점마저, 제약마저 포용하고 웃어버리려는 노력. 그 노력 끝에 ‘성공’을 거머쥘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저 하늘의 뜻에 맡길 수밖에. 오로지 우리는 그 험난한 과정 가운데 얻을 수 있는 행복만을 바라야 할 것이다. 때때로 그 과정에 눈물과 어두움이 드리울 땐, 송강호 배우 특유의 너털웃음을 떠올려 봐도 좋을 것이다.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된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많은 것이 아직 가능하다. 웃음을 퍼붓는 것을 배워라. 웃어야 마땅한 것처럼 웃는 것을 배워라!” 어쩌면 송강호 배우의 무기 리스트에 이 ‘웃음’을 추가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웃을 줄 아는’ 사람이고, ‘웃음을 줄 수 있는’ 배우이니까. 그의 웃음을 보며 우리는 니체의 말대로 ‘용기를 잃어서’도 안 되고, 기꺼이 ‘웃는 것을 배워’야 한다. 그게 아마도 우리의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에겐 아직 많은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족-
동의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송강호 배우의 ‘인생’ 연기는 영화 <밀양>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는 이 영화에서 연기를 하는 듯 않는 듯한 극강의 자연스러움을 보여준다. 전도연 배우 곁에 은밀한 머물러, 그녀를 더욱더 돋보이게 만들어주었던 햇살 같은 연기. 약점일 수도 있는 사투리 억양을 숨기지 않고, (그의 표현대로 하자면) 그리 잘 생기지 않은 얼굴을 억지로 꾸미지 않았던 연기. 웃음과 함께 감탄이 터져 나오는 그 빛나던 순간들. <밀양>은 이런 송강호의 ‘무기’를 가장 잘 활용한 걸작이다. 그의 걸작들을 더 많이, 가능한 더 많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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