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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www.shocktillyoudrop.com | ||
[디아티스트=김범진]
처음 ‘킬빌’을 보았을 때는 초등학생이었다. 그때는 동네에 두어 곳 정도 비디오 대여점이 있었다. 아버지를 졸라 ‘매트릭스’를 빌려 본 이후로 비디오 대여점 가기를 좋아했던 나는 어디선가 ‘킬빌’의 포스터를 보기라도 했었는지 청소년 관람불가였으나 역시 아버지를 졸라 ‘킬빌’의 비디오를 빌려서 보았다. 조건은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보아야 했다.
비디오를 재생기에 넣을 때 까지만 해도 나는 마냥 신이 났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보고 싶던 영화를 보기 직전의 기분은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 테잎이 돌아가고, 낡지만 컸던 대우 브라운관 TV에서는 조금씩 잔인한 장면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줄거리는 간단했다. ‘복수’는 초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는 원초적인 감정이었다. 키가 크던 여주인공이 노란 체육복을 입고 일본도를 휘두르기 시작했고, 옆에서 아들과 함께 아들이 보고 싶어한 영화를 같이 보시던 아버지는 심기가 좋지 않아 보이셨다. 중간에 한 번 비디오를 뺄 뻔 하였으나, 부자는 결국 영화를 끝까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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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네이버 영화 | ||
‘킬빌’의 감독이 타란티노 라는 사람이었구나, 하고 알게 된 것은 한참이 지난 대학생 시절이었다.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을 순전히 디카프리오가 나온다는 이유로 보려던 참이었다. 자초지종을 밝히자면 사실 영어공부를 좀 해 보겠다고 ‘셔터 아일랜드’원서를 샀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소기의 목적을 조금 비뚤어지게 달성한 뒤 해당 영화를 본 후였다. 어렸을 때에도 디카프리오는 가라앉아가는 배에서마저 멋있었는데, 초등학생이 대충 어른이 되어가는 동안에도 멋있었다. 그래서또 다른 멋있는 배우가 누가 있나 찾다가 브래드 피트가 불현듯 떠올라 검색해 보고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이었다. 맞다. 그냥 이번에도 어쩌다가 보게 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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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네이버 영화 | ||
영화를 좋아하는 부모님 덕에 어렸을 때 부터 연령제한 없이 다양한 영화를 참 많이 봐 왔었다. 시간이 많다면 하나씩 다 기억해 낼 수 있을 것만 같지만, 그 중에서 특히 기억해 내기 쉬운 영화들이 있다. 난생 처음으로 롯데시네마에서 보았던 ‘고질라’나,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보았던 ‘매트릭스’, 러셀 크로우와 어색한 호랑이가 인상깊었던 ‘글래디에이터’등. ‘킬빌’또한 마찬가지이다. 나는 아직도 우마 서먼이 루시 리우의 머리 윗 부분을 날렸던 장면을 디테일하게 기억한다. 영화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매기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자극적인 장면들만 기억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몇몇 명장면들, 그리고 단순하고 일관된 복수, 그리고 잔인한 복수를 정당화하는 스토리 등 사실 더 많은 것들을 기억하고 있으며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을 역시 아버지와 함께 보았다는 것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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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네이버 영화 | ||
그에 대한 감상을 길게 적지는 않겠다. 그냥 큰 골자는 ‘복수’이다.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 중 복수보다 독한 것을 나는 알지 못하고 복수만큼 해소되었을 때 시원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영화를 많이 보고 사는 것은 아니지만, 복수를 다루는 영화들은 많고 사실 그 중에서 복수만을 꾸준히 러닝타임 내내 밀고 나가는 영화는 많지 않다. 밀고 나가더라도 잘 만들어서 인물들의 복수에 관객들이 함께 하여 영화가 끝난 후 통쾌함을 안고 나갈 영화는 더더욱 많지 않다. 영화평을 쓰게 된 지가 얼마 되지 않아 하나 써 볼까 하고 마음먹고 나면 포털에 해당 영화를 검색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보았나 하고 염탐을 해 보는데, 개중에서 ‘잔인한 눈폭풍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그 곳에서 벌어지는 기괴한 핏빛 랩소디를 관객들은 찡그림이 아닌 옅은 미소를 뜨며 보고 있습니다(출처:cafe.naver.com/logosesang/3386530)‘ 라는 문장을 읽었다.
나는 이 영화를 어제 보았는데, 저 문장이 묘사하는 정확한 장면을 관객석에서 볼 수 있었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고, 끄으으 하는 소리들이 잔인한 장면에서 좀 나오긴 했지만 다들 분명 살짝씩은 웃고 있었다! 타란티노의 영화들이 명백하게 B급성을 내세우고 있지만 여기에서만큼은 A와 B를 나누는 기준은 순전한 영화 외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킬빌’에서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을 이어 ‘헤이트풀8’까지 이어지는 개인적인 타란티노의 영화들에게(사실 ‘장고:분노의 추적자’도 보았다) B급이라는 분류를 하는 것은 이해는 하지만 아쉬운 부분이다. 영화를 보고 나온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도 그럴 것이, 상영관은 꽤 컸는데 관객은 저녁 피크 시간대였음에도 많지 않았으며 연령대가 매우 다양하였다. 게다가 나오면서 보니 다들 환한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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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네이버 영화 | ||
2016년이 되어 한 살을 더 먹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게 되면서 A라는 것을 말하고 싶으나 상대방이 이해한 것은 A가 아닌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어 곤란했던 경험들이 늘어가고 있다. 언어적인 부분이나 비언어적인 부분이나 타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은 쉽지가 않으며, 나의 의사에는 어떻게든 의도가 포함되고 상대방 또한 그렇다는 점이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의 어려움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어른들이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진다던가, 아니면 말이나 행동에 신중해지고 일종의 ‘내공’이 쌓이게 된다는 말씀들을 하시나 싶은데, 영화도 그런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글이나 영상이나 인간의 창작인 이상 제작자 또는 해당 작품이 세상에 나오고 또 나와서 개인들에게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참여한 사람들의 의지가 반영이 되고, 그와 같은 연결이 없이 독립적으로 부유하기란 어렵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 이루어가는 세상에서 말이나 글과 같이 A를 보다 정확하게 A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발생하는 매개들 중 하나가 또한 영화인 바, 예술성과 비상업성이 같은 말이 아닌 이상 보고 나서 통쾌했다는 말로는 어떤 영화의 모든 것을 개별적으로라도 정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님에 틀림없다. 감상을 글로 조각하여 엮어내는 과정도 마찬가지로 지금 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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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네이버 영화 | ||
”헤이트풀8’은 보고 나면 통쾌하다’라는 말을 보다 정확하고 정밀하게 해 보고 싶은데, 이 영화는 너무 통쾌해서 세부적인 감정들을 지워버린다. 절대로 비난이 아니다. 과연 백지에서, 지금과 동떨어진 미국의 남북전쟁이 끝난 시대의 이야기에서 내용이 포괄하는 시대적 배경에서 가져오는 교훈이나 빌려오는 무게감과 권위 없이 말 그대로 가볍게 이러한 통쾌함을 쉽게 얻을 수 있기가 쉽던가? 웅장한 배경음악과 남녀노소 빠져들 수 있는 추리극을 뻔뻔하게 빌려와 등장인물 간의 갈등의 실을 팽팽하게 하지만 끝까지 균형되게 조정하여 마무리해 낸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힘들게 찍은 영화였구나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만큼 이런 영화가 흔하지 않다는 말이고, 그저 ‘통쾌함’의 수준의 일면이 이 정도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재밌게 본 영화는 스포일러를 피하면서 추천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살짝만 더 말해 보면 ‘헤이트풀8’도 그냥 감독의 다른 영화들처럼 ‘복수’의 소재가 들어 있기는 하나 그 단어만이 가져올 수 있는 긴장감이나 비장함, 또는 화통함과는 다른 가볍고 ‘맛이 있는’긴장감과 비장함, 화통함이 또 있는 영화이다. 순수하게 재미있고 또 화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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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네이버 영화 | ||
타란티노가 제안하는 시간 동안, 영화는 자체적으로 가려운 부분을 만들어 내고 그 점을 정확하게 해소하는 과정을 여러분은 세 시간에 달하는 상영시간동안 함께한다. ‘헤이트풀8’을 보고 나온 관객들이 ‘좀 잔인하긴 해도 재미있는 영화였다’라고 생각하면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이다, 라던 하위징하의 이론이 힘을 얻는다. 배경만 두고 보면 서부극이고 남북전쟁 후의 미국 내 갈등이 영화의 소재 중 하나이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조미료일 뿐이다. 타란티노는 비겁하게 시대적 배경에서 기 존재하던 갈등이나 갈증을 데려오지 않고 관객들을 알아서 간지럽힌다. 우리는 정확하게 영화 내에서만 존재하는 갈등과 사건을 향유하고 영화 내에서 완벽하게 해소되는 갈증을 즐기다가 찜찜한 기분 없이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상영관을 나설 수 있다. 깔끔하다. ‘호모 루덴스’에서 그렇게 역설하는 놀이와 가장 가까운 오락영화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물론 ‘바스터즈:거친 녀석들’도, 아니면 또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2016년에 즐길 수 있는 가벼우나 왠지 모르게 묵직한 작품은 지금 주변 영화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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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네이버 영화 | ||
여담인데, 미국에서 이 영화를 보고 나온 현지인들의 반응을 크게 둘로 나눠 보면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흑인은 마냥 신나서 재미있게 보고 나오지만 백인들은 왠지 어깨를 쭈뼛대며 목을 숨기고 나온단다. 별 의미는 없다. 영화 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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