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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 스며든 한 줄기 빛

최정원 기자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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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이버 영화

 무엇 하나 의지할 것 없게 되어 버린 삶은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상황들 중 하나다. 이 때, 어떤 사람들은 신에게 의지하며 고통을 이겨내려 한다. 그러나 신마저도 그 고통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는다면? 불행히도 주인공 신애는 그런 상황에 처한 여자다. 남편이 죽고 난 후 주인공 신애는 아들만을 데리고 낯선 도시 밀양으로 내려온다. 그녀는 새 삶을 시작하려 하지만, 얼마 안 되어 유괴범에게 아들을 잃고 만다. 신애는 아들이 죽은 후 교회에 나간 지 얼마 안 되어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하겠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범인을 면회한 신애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만다. “나는 이미 구원받았습니다.” 범인은 너무나도 평온한 얼굴로 말한다.

 <밀양>에서는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과 구원받아야 할 사람이 뒤바뀐 상황이 전개된다. 신애와 범인 사이의 대화는 창살을 사이에 두고 이루어진다. 그런데 오히려 범인의 얼굴은 편안하고, 신애는 기가 죽어 있다. 이 때 범인 쪽에서 비추는 카메라는 쇠창살 뒤에 서 있는 신애를 비추는데, 그녀가 감옥에 갇힌 것처럼 보인다. 그녀가 구원받을 수 없음을,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겪으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이야기를 관통하는 핵심은 ‘구원’이다. 진정한 구원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영화는 쉬운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신애는 신에게 의지했지만 결국 구원을 얻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가장 큰 모순은 죄를 뉘우쳐야 할 범인이 종교로 인해 구원받았다는 것이다. 신은 인간 앞에 나타나지 않으며 인간사에 관여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종교를 통한 구원마저도 사람의 마음에 달린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설령 구원을 바라는 사람이 죄를 조금도 뉘우치지 않는 범죄자라 할지라도.

 그렇다고 해서 감독이 단지 종교를 비판하기 위해 <밀양>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 초반, 신애가 밀양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비밀스러운 햇볕’이라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영화에는 그림자가 진 가운데 햇빛이 드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이것이 가장 극대화되는 부분은 마지막 장면에서 스스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신애의 모습이다. 신애가 머리를 자르는 집 앞마당과 그녀에게는 그림자가 졌지만, 마당 한구석은 은근하게 햇빛을 받고 있다. 신애는 그늘진 삶을 살아가지만, 그녀가 스스로 일어섰기에 그녀를 구원할 한 줄기 따스함은 아직 존재한다. 또 한 명의 주요 등장인물인 종찬은, 비록 그녀에게 내내 퇴짜를 맞기는 하지만 마지막까지 신애 곁에 남아있다. 그는 신애를 위해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고, 순전히 그녀를 위해 함께 교회에 나가기도 한다. 종찬이야말로 그녀에게 비밀스러운 햇볕 같은 존재다.

 <밀양>의 원작은 이청준의 소설 <벌레 이야기>다. 소설은 범인이 신에게 구원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아이의 어머니가 결국 목숨을 끊는다. 소설은 고통 앞에서 벌레같이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데에 그친다. 그러나 <밀양>에서 신애는 비록 자살 기도를 하기는 하지만, 결국 일어선다. 끔찍한 고통에 신음할지라도 여전히 신애는 ‘살아 있다.‘ 감독은 끝없는 절망 가운데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본다.

 <밀양>을 이야기할 때, 전도연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다. 그녀는 뛰어난 연기력이 예술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신애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손목을 그을 때의 연기는 소름이 끼칠 정도다. 보란 듯이 하늘을 노려보다 피가 흐르자 이내 밖으로 뛰쳐나가 고통스러워하며 사람들에게 살려 달라 애원하는 모습은, 진정으로 신애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연기다. 그녀는 그야말로 온몸을 내던져 연기한다. 또한 <밀양>에서의 전도연은 흔히 ‘여배우’라는 단어에서 떠올리는 세련된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그녀는 내내 거의 화장도 하지 않고, 옷차림도 허름하며, 피곤에 지쳐 코까지 곤다. 그럼에도 그녀는 지금껏 본 여배우들 중에서 연기하는 모습이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다고 느꼈던 연기자다.

 <밀양>은 ‘고통스럽다’. 솔직히 말하면, 보고 나서는 머리가 아프고 마음이 괴롭다. 그럼에도 <밀양>을 꼭 봐야 할 영화로 꼽는 이유는 살면서 누구라도 부딪힐,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밀양>을 보게 된다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후 조용히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보기 바란다. 신조차 당신을 구원하지 못할 때, 당신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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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원 기자
hanairean@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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