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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구글이미지 | ||
[디아티스트매거진=권오경] 영화예술의 발달은 시대적 흐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새로운 영화 사조들이 등장하고 그토록 다양한 장르와 연출법이 나타나게 된 경위도 모두 사회적 변혁과 관계를 맺는다. 일례로 앞서 살펴본(이전 칼럼 참조) 독일의 표현주의나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과 같은 영화사조또한 전쟁 후 유럽에 팽배한 경제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한마디로-총체적 위기로 인해 등장한 경향들로 영화의 형식적 표현영역을 확대해주는 한편, 영화를 다른 인접예술들과 분리해 제7의 예술로서 자리하도록 만들었다.
전쟁과 냉전을 겪기 이전의 미국에서 제작되던 영화들은 미국적 정체성을 보호하고 유지하기 위한 철저한 검열을 거쳐야만 상영이 가능했다. 개인주의와 프로테스탄티즘의 종교적 윤리를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던 미국이었기에 영화를 보는 사람들로하여금 어떠한 도덕적 기준을 저하시킬 수 있는 요소라도 포함되어서는 안되었다. 그렇기에 범죄, 비행, 악 혹은 종교적 죄악 등은 주제로서 부적절했다. 이토록 엄격했던 영화에 대한 규정과 검열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위기 상황 속에서 점차 완화되어갔다. 그 변화의 물결 속 중심으로 부상한 것이 바로 ‘필름 누아르’영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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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구글이미지 | ||
1940년 후반에서 1950년 초반, 미국의 할리우드를 중심으로 발달한 새로운 영화 사조 ’필름 누아르(Film noir)’는 프랑스어로 ‘검은 영화’라는 뜻으로, 당시 전쟁으로 인해 혼란을 겪던 미국적 정체성을 영화 속에 그대로 담아낸 영화들을 지칭한다. 주로 살인이나 마약 등과 같은 타락한 윤리의식을 보여주는 소재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사건의 중심에는 팜므파탈의 전형을 보여주는 여성이 등장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여성의 이미지는 이전과 같이 정숙한 여인의 모습이 아니라 남성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주도적 주체’로서의 모습으로 변한 것이다. 이는 전쟁동안 군대에 나간 남자들을 대신해 직업을 가진 여성들로 인해 기존 미국 사회를 유지시키던 남녀의 역할이 뒤바뀌었음을 보여주며, 전통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던 가족에 대한 개념이 해체되었음을 나타낸다.
서사적인 면이외에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필름누아르의 영화들은 이전과 다른 양상을 띤다.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보다 중심이 되는 사건을 시작으로 범죄나 살인 비행에 대한 추적이 관객과 함께 이루어진다. 무엇보다도 논리적 사건에 의한 전개보다 운명적인 사건에 의해 이야기를 개진시켰으며 결말또한 사건이 계속되거나 도출되지 않는 형태를 취하였다. 이러한 필름누아르의 서사구조는 인물에 대한 관객의 시각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고정적이며 불변하는 존재가 아니라 운명적 사건에 의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시각적 표현 수법 역시 이러한 영화적 내용과 표현 수법을 강화하는 요소로 기능하였다. 필름 누아르 영화들이 담아내는 긴장감과 불안을 극대화하기 위해 빛과 어둠의 대비를 명확히 하였으며 카메라 앵글과 구도의 불안함이 지배적 형식으로 사용되었다. 인물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긴장과 해결되지 않은 사건들이 가져오는 답답함 등을 표현하기 위하여 인물의 모습을 주로 철창, 문 등에 배치하면서 공간을 분할하였다. 이것들은 모두 안정감보다는 불안감을 조성하기 위한 수직적 이미지들로 심리적 긴장감을 배가시켰다.
<말타의 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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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타의 매 포스터 (출처: 구글이미지) | ||
존 휴스턴의 <말타의 매>는 스페이드와 어셔의 탐정 사무소로 ‘샤네시’라는 여인이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앞서 말한 팜므파탈의 여인을 대표하는 인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더스비’라는 남성을 미행할 것을 그들에게 부탁한다. 사건의 중심이 되는 소재는 스페인 왕에게 헌납하기 위해 만들어진 보석이 박힌 매 형상의 장식품이다. 엄청난 가치를 가진 이 장식품을 손에 넣기 위해 카이로, 거트맨, 더스비 그리고 샤네시 각각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른다. 그리고 이들의 범죄에 개입하게 된 어셔는 죽음을 맞고, 스페이드는 범죄자로 누명을 쓸 위험에 처한다.
필름 누아르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말타의 매>는 확실히 이전보다 완화된 검열로 인해 살인, 비행과 같은 주제를 담을 수 있었으나 어셔의 부인과 스페이드 사이의 불륜이나 동성애자인 카이로의 모습 그리고 스페이드와 샤네시의 성적 관계는 상당부분 생략되어서 미미하게만 보여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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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타의 매 이미지 (출처: 구글이미지) | ||
샤네시의 거짓말로 영화가 시작된 만큼 스페이드가 갖게 되는 의심과 답답함 그리고 자신이 누명을 쓸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관객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어떻게 사건이 진행된 것인지 이전의 서사적인 부분은 과감히 생략되고 관객과 주인공 스페이드가 처리해야 할 몫으로 남겨진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과 사건에 대한 의문은 번갈아 나타나는 로우앵글과 하이앵글, 인물보다 사물을 가까이에 보여주는 구도를 통해 그리고 비연대기적 순서로 인해 고조된다.
<이중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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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중배상 포스터 (출처: 구글이미지) | ||
필름 누아르의 또다른 대표작 <이중 배상>에도 어김없이 부정한 사건을 기획하고 관장하여 남성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여인, ‘필리스’가 등장한다. 보험회사 직원인 ‘네프’에게 접근해 사랑을 가장하여 살인을 꾸미고 사리사욕을 챙기는 ‘치명적인 여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편 ‘네프’는 필리시의 위선과 영악함에 속아 혼란을 겪으며 문제 해결 능력이 부족한 인물로 등장한다. 그는 당시 미국 사회가 겪은 남녀의 뒤바뀐 역할을 보여주는 대표적 인물로, 팜므파탈의 원형인 필리시에게 속아 강인함보다는 미약함, 능동적이라기보다는 수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필리스’라는 인물이 가지는 더욱 필름 누아르적인 요소는 그녀가 가변적인 인물이라는 점이다. 관객에게마저 그녀가 ‘네프’를 향해 갖는 사랑을 의심할 여지를 주지 않다가 마지막에 결정적으로 그 속내가 드러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미국에서 중시하던 ‘가족’의 중요성은 해체되고 ‘필리시는 죄책감없이 남편의 전처를 죽이며 결국엔 남편까지도 돈 몇푼을 위해 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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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팜므파탈 필리스 (출처: 구글이미지) | ||
필름 누아르 영화들에서 보여지는 이러한 서사구조와 인물들의 특징 그리고 표현상의 특징은 이전의 전통적이고 근본적인 미국적 가치의 정체성을 확보하고자 한 미국의 정치적 흐름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이 영화들은 혼란을 겪는 미국적 전통가치들과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개혁의 목소리를 내는 영화들이라기보다 그러한 가치들이 심각하게 위협받던 고된 시기를 거치며 형성된 미국의 특정한 영화적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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