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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와 시간-이미지 그리고 꿈_<인셉션>

이준건 기자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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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이준건] 최근 뜨고 있는 VR은 증강현실사회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증강현실이란 가상세계와 현실세계가 결합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는 고전영화 <매트릭스>나 <마이너 리포트>의 세계가 도래할 날이 결코 멀지 않았음을 알린다.

그런데 증강현실의 세계를 몇십 년 전부터 예측한 철학자가 있었다. 1925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형이상학의 완성자’로 불렸으나 1995년 갑자기 자살로 생을 마친 철학자. 그는 ‘시간-이미지’라는 개념을 통해 영화를 비평하는데 그가 묘사하는 영화 속의 시간-이미지는 증강현실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과 흡사하다.

잠재성과 현실성의 판별 불가능성

들뢰즈의 시간-이미지에 관해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철학자 베르그송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철학자 베르그송은 실재론과 관념론의 이원화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물질과 정신을 ‘이미지’로 간주하였다. 그리하여 세계는 다만 절대적 체제(객관적이고 있는 그대로의, 무한적인 세계)와 상대적 체제(개인의 주관적 인식)로 나뉠 뿐이었다. 이때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세계는 상대적 체제(현실 세계)에 불과하지만 절대적 체제 또한 잠재돼 있을 뿐 분명히 존재한다. 여기서 시간의 논리도 비슷한 의미를 가지는데, 그에 따르면 이미지의 과거는 현재와 아주 다르지 않다. 베르그송은 이미지가 현재인 동시에 과거라고 말한다. “지각되는 현재만큼이나 기억되는 과거가 충분히 존재하는 것이라면, 현재는 언제나 과거와 공존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우위는 사라진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것이라면 현재는 이미 과거다.”

   
▲ 철학자 베르그송(1859-1941)과 질 들뢰즈(1925-1995)

들뢰즈는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 시간-이미지에 관한 개념을 정립했다. 즉, 공존할 수 없는 것의 공존,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의 공존, 현재와 과거의 공존이 바로 들뢰즈의 시간-이미지이다. 이때 들뢰즈의 시간 이미지는 단순히 전자시계나 시계탑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그것들은 과거와 현재의 공존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들뢰즈에 의하면 그런 것들은 단지 간접적인 시간 이미지에 불과하다.

직접적인 시간 이미지는 그 경계가 모호해 잠재성과 현실성이 공존하는 이미지로,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거울 이미지다. 실제 인물과 거울에 반사된 상의 구분이 어려울 경우·내러티브적 순환 구조에 의해 주인공이 조연이 되고 조연이 주인공이 되는 경우·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여 그것을 정확히 구분할 수 없는 경우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한다.

   
▲ 시간-이미지는 단순히 시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시간-이미지란, 베르그송이 말한 잠재적 이미지와 현실적 이미지의 경계가 모호해짐으로써 그 둘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를 의미한다.

들뢰즈는 이를 <잠재적 이미지와 현실적 이미지의 판별불가능성>이라고 부른다. 판별불가능성은 라이프니츠에 의해 성립된 개념인데, 모든 물질을 완전히 쪼개다 보면 결국 양적으로 다른 게 아니라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존재(=모나드)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추론이다. 세계를 구성하는 질적인 실체는 서로 상호작용하지도 않으며 완전히 구분되는데, 다만 그 차이는 아주 미세하므로 세계는 연속적으로 구성될 수 있다. 현대 영화는 이러한 판별불가능성과 연속성의 원리에 의존하며 내러티브의 귀결점이 분산되거나 영화 이미지들 사이의 연결이 느슨해지는 것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이처럼 판별불가능성은 잠재적 이미지와 현실적 이미지의 경계를 그을 수 없다는 점에서, 과거·현재·미래의 경계를 지을 수 없다는 점에서 들뢰즈의 시간-이미지의 개념을 잘 드러낸다.

인셉션과 들뢰즈의 시간 이미지

   
▲ 영화 인셉션의 포스터

영화 <인셉션>은 시간 이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인셉션>에서는 시간과 공간, 기억과 꿈의 경계마저 흐릿하게 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꿈 속에 들어가 생각을 심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주된 내러티브인데, 이때 주인공들은 목표의 꿈 속에 생각을 심기 위해 꿈 속의 꿈으로 들어가며 단계가 올라갈수록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고 공간의 위치가 변화한다. 특히 공간은 이전 단계의 꿈의 영향을 받는다. 예컨대 영화에서 1단계 꿈의 반영으로 주인공 일행이 탄 차가 추락하자 2단계 꿈에 있던 사람들은 무중력 상태가 된다. 또, 3단계 꿈에서 의식을 잃은 코브에게 전기충격을 가하자 코브의 꿈 속에서 번개가 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것은 현실이라고 믿어지는 꿈속에서 시간과 공간이 왜곡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인셉션>은 전형적인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고 시간과 공간의 경계가 흐릿한 영화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작중 인물 중 하나인 코브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알아내기 위해 자신만의 아이템, 토템을 들고 다니며 그것을 확인하려 하지만 그것마저도 타인의 꿈일 때만 가능하고 자신의 꿈일 때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코브가 자신의 토템인 팽이를 돌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팽이는 멈출 듯하면서 멈추지 않다가 영화가 끝나버려, 실제로 이것이 코브의 꿈인지 아닌지 판명하기 어렵게 한다. 이런 점은 한편으론 라이프니츠가 이야기한 판별불가능성, 그리고 들뢰즈가 이야기한 잠재적 이미지와 현실적 이미지의 판별불가능성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인셉션에서는 시간과 공간이 꿈의 영향을 받아 왜곡된다.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우리도 꿈을 꿀 때는 아무리 이상한 일이 일어나도 그것이 꿈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꿈에서 깨어난 뒤에야 그것이 꿈이었음을 깨닫는다. 즉, 꿈에서 등장하는 모든 일들은 잠재적 이미지와 현실적 이미지가 혼합된, 그 차이 또한 아주 미세하여 인지하기 어려운 판별불가능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연속성의 원리 또한 여기에 적용된다. 꿈에서 아주 말이 안 되는 꿈을 꿨다고 하더라도 거기에는 일정한 개연성이 있다. 물론 그 개연성 또한 말도 안 되는 것일수도 있지만, 분명히 어떤 일을 촉발하는 데에는 매개체가 존재하는 것이다. 예컨대 코브의 작전 타겟인 피셔의 꿈속에서는 갑자기 기차가 등장하여 주인공과 그 일행을 공격한다. 코브는 작전을 수행하는 도중에 계속해서 자살한 자신의 아내인 맬의 방해를 받는다. 이러한 것들은 분명 현실 속에서는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만, 어느 정도는 개연성을 바탕으로 한 일들이고 작중 인물들은 그것의 미세한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한다.

   
   
▲ 인셉션이 대작이라 칭송받는 이유는 잠재적 이미지와 현실적 이미지의 판별불가능성을, 디지털 영화의 특징을 살려 효과적으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디지털 영화는 이러한 꿈과 현실 그리고 시공간의 왜곡을 가능케 만들었다. 특히 추락하는 차는 아주 서서히 떨어지는데(=슬로우 모션), 이것은 디지털 기술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러한 슬로우 모션을 통해 관객들은 1단계 꿈의 시간에 시간 개념을 맞추는 게 아니라 2단계에 맞춘다. 한편 2단계 꿈에서도 어느 순간 갑자기 슬로우 모션 상태가 되는데, 이것은 또한 관객들로 하여금 3단계 꿈의 시간에 관객 자신을 도입하게 한다. 이렇듯 영화 <인셉션>은 꿈과 현실의 경계, 시공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여 관객들에게 (들뢰즈의) 시간성을 느끼게 해주는 대표적인 영화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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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건 기자
seawhale98@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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