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출처=네이버 영화 | ||
[디아티스트매거진=홍성빈] 오승욱 감독의 <무뢰한>은 개봉 당시 많은 관객들을 불러 모으지 못했다. 사실 하드보일드 멜로를 표방한 이 영화에 대한 기대는 무척이나 컸다. 감정을 거세해야 하는 하드보일드 장르의 문법으로, 다양한 감정의 결을 섬세히 포착해야 하는 멜로드라마를 과연 성공적으로 빚어낼 수 있을까. 게다가 말이 필요 없는 명배우 전도연과 김남길이 만났고, 영화 <킬리만자로> 한 편으로 독보적 작품 세계를 구축했던 오승욱 감독이 만든 무려 15년 만의 복귀작이었다. 하지만 영화는 낯설었다. 아니 익숙하지 않았다. 인물들이 느끼고 있을 감정은 뜨거운데, 그들을 바라보는 연출자의 시선은 무심했다. 좀처럼 감정을 폭발시키라는 주문을 하지 않는 듯했다. <무뢰한>이 낯설거나 불친절하게 느껴졌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 이질감 때문일 듯했다. 이것은 영화의 흥행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을 요소였다.
물론 흥행을 좌우하는 요소는 다양하다. 개봉 시기, 입소문, 배급 문제, 영화의 완성도와 대중성의 괴리 등등. 다소 장난스럽고 부질없는 가정이긴 하지만, 만약 <무뢰한>의 개봉 시기가 바뀌었다면 영화의 운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이 영화가 개봉한 날은 봄과 여름의 경계에 놓인 2015년 5월 27일. 이 영화의 개봉일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12월 정도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겨울에 개봉하는 <무뢰한>은 봄과 여름에 개봉한 <무뢰한>과는 완전히 다른 영화였을 것이다. 이 영화에서 특정 계절을 겨냥한 혐의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지만, 영화 속 두 남녀의 사랑이 겨울이라는 계절의 쓸쓸한 정서와 어우러지는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단언하자면, <무뢰한>은 겨울의 영화다. 한겨울 어느 한갓진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을 기울이고 싶도록 하는 영화다. 이러한 이유로 영화의 개봉 시기가 더 아쉽게 느껴진다. 아마도 이 글을 통해 영화가 더 많은 이에게 환영받지 못한 데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두 남녀의 쓸쓸하고 낯선 사랑을 더 많은 이에게 소개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이 보잘 것 없는 글은 ‘사랑’ 영화 <무뢰한>에 대한 애정 어린 헌사가 될 것이다. 미리 말해두자면, 영화 자체보다 영화 속 두 남녀에만 초점을 맞춘 글이므로 주제 또한 어쩔 수 없이 ‘사랑’일 것이다. 언젠가 당신의 곁을 스쳐간 ‘사랑’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무뢰한>의 이야기는 고전적이다.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형사 정재곤이 살인자 박준길을 쫓는다. 박준길에게는 그를 사랑하는 여자 김혜경이 있다. 정재곤은 신분을 숨기고 김혜경이 일하는 단란주점에 잠입해 그녀의 일을 돕는다. 박준길은 반드시 김혜경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런 기다림 가운데 정재곤은 김혜경의 외로움을 본다. 살인자의 여자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형사라는 신분을 숨긴 채 그녀를 계속 사랑할 수는 없다. 고백하는 순간 살인자를 잡을 수 없고, 고백하지 않고는 사랑을 잡을 수 없다. 자신이 하고 있는 연극을 그만 두지 않고서는 눈앞의 이 여자를 잡을 수 없음을 정재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상황이야 어찌 되었든, 둘은 이제 사랑을 시작했다. 적어도 정재곤은 그렇다. 김혜경 역시 그럴 것이다. 마음을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건 없건, 사랑을 시작한 이상 이제 돌이킬 수는 없다.
영화 속 정재곤과 김혜경의 사랑은 우리에게 낯설다. 그들의 직업이 각각 형사와 술집 여자라는 특수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한다. 속고, 속임을 당하고 상처를 입히고 또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남자의 몸에 난 상처를 어루만지는 여자의 손길과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은 그 자체로 사랑이다. 그들은 단 한 번 몸을 섞는다. 농밀한 격정이 눈보라처럼 스쳐가는 섹스. 사랑에도 농도가 있다면 이 장면에서 두 남녀가 보여주는 눈빛과 몸짓,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랑 같이 살면 안 될까?”라는 정재곤의 말에 김혜경은 “진심이야?”라고 묻고, 정재곤은 비웃듯 “그걸 믿냐?”라고 답한다. 터져 나와야 할 사랑의 감정은 안으로만 잦아든다. 결코 속내를 고백하지 않는다. 우리는 안타까운 심정으로 그들의 사랑을 목격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서로의 상처를 터뜨리고, 또다시 매만지는 사랑을 바라만 본다. 어쩔 수 없이 파국은 예정돼 있다. 정재곤은 살인자 박준길을 잡기 위해 김혜경에게 접근한 것이었으니까. 처음부터 그들의 시작은 거짓이었으니까. 그렇다면 거짓에서 시작된 사랑은 사랑이 아닌가? 어차피 모든 사랑은 본질적으로 거짓에서 출발한다. 상대방에게 자신을 맞추기 위해, 혹은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기 자신조차 속이는 게 사랑의 속성이다. 오히려 정재곤은 거짓의 자장 안에 있을 때에만 김혜경을 사랑할 수 있었다. 정체를 드러내는 순간 사랑은 끝이 나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무뢰한>의 결말은 비극적이다. 동시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다. 정재곤은 김혜경으로부터 상처를 입은 채, 홀로 눈 내린 언덕을 걸어 내려간다.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대사를 통해 김혜경에게 생뚱맞은 ‘덕담’을 중얼거린다.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기괴한 덕담이다. 이어지는 상스런 욕설. 그러고는 ‘무뢰한’이라는 세 글자의 자막이 정재곤의 얼굴 위에 떠오르면서 영화가 끝난다. 이것이 영화의 라스트신이다. 어안이 벙벙한 우리는 되물을 수밖에 없다. 대체 저 상스런 대사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저 남자의 얼굴 위에 떠오른 ‘무뢰한’이란 단어의 의미는 무엇일까? ‘무뢰한’의 사전적 의미는 이러하다. ‘성품이 막되어 예의와 염치를 모르며, 일정한 소속이나 직업이 없이 불량한 짓을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 형사라는 직업인으로서의 그는 냉철한 프로페셔널이지만, 사랑에 관한 한 그는 일정한 소속도 없이 언저리를 맴도는 ‘무뢰한’에 불과하다. 어쩌면 그의 기괴한 ‘덕담’은 사랑하면서 결국 속일 수밖에 없었던 여자에 대한 ‘참회’였을지도 모른다. 사랑이 담긴 일종의 ‘고백’이었을지 모른다.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줄 몰랐고 표현할 줄도 몰랐던 무뢰한의 마지막 고백은 이처럼 끝끝내 서투르고 거칠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누구나 정재곤이다. 모두에게는 그림자가 있다. 끝까지 들키고 싶지 않은 내 안의 어둠. 하지만 사랑하는 상대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마음조차 사랑이 아닐까. 정재곤에겐 형사로서의 정체성이 자신의 그림자였다. 그는 김혜경을 사랑해도 사랑한다 말할 수 없었다. 사실 세상에는 그런 사랑도 있다. 따사로운 봄날, 햇살 가득한 설렘의 감정만이 사랑이라고? 사랑은 그렇지 않다. 감정의 밑바닥에서 지옥에 있는 듯한 고통을 맛보는 것 또한 사랑이다. 정재곤과 김혜경의 비극도 사랑에서 비롯된 지독한 결과이듯. <우모레기>라는 일본 소설에 이런 구절이 있다. “사랑이라는 것은 (…) 아름다운 것을 꿈꾸면서 지저분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아름다움을 꿈꾸지만 결국 지저분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것.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는 각각의 불완전함을 가지고 자신만의 사랑을 근근이 해나간다. 결국 세상에 존재하는 n명의 사람만큼 n개의 사랑이 존재하는 것이다. 정재곤의 사랑은 정재곤의 것이고, 김혜경의 사랑은 김혜경의 것이다. 나의 사랑은 나의 것이고, 당신의 사랑은 당신의 것이다. 우리는 사랑을 하지 않을 때조차 자신만의 사랑을 지니고 있다. 자신의 세계가 아무리 어둠으로 가득 차 있어도 사소한 마음 하나가 때로는 누군가를 구원하기도 한다. 그것이 순간에 불과할지라도. 오승욱 감독 역시 어느 인터뷰에서 구원은 ‘숨’과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구원은 숨을 쉬는 것처럼 아주 짧은 순간에 훅 다가오기도 하고, 멀리 달아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마치 숨을 쉬듯이, 찰나에 다가와 찰나에 떠나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짧은 인생에 있어 그것이 찰나든 영원이든 어느 하나 사랑이라 부르지 못할 것이 없다. 돌아보면 모든 것이 사랑이었고 앞으로도 모든 것이 사랑일 것이다. 다만 각자가 사랑하는 방식이 다를 뿐. 단지 서투르고 거칠 뿐. 같은 사랑은 단 하나도 없다. 사랑은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니까. 그러니 나의 사랑은 어째서 이리 초라한가 혹은 짧은가 혹은 얕은가 묻지 않기로 하자. 사랑을 잡지 못했다고 슬퍼하지 않기로 하자. 구원은 언제나 숨처럼 조용히 다가오니까. 사랑은 늘 새롭게 시작되고, 표연히 떠나가고,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시 시작되니까. 아름답고 쓸쓸히, 그렇게 반복을 거듭하며 생은 고요히 흘러갈 테니까.
<무뢰한>은 구원이 될 수도 있었지만 기어코 서로에게 상처를 입힌 채 떠나보내고 말았던 어떤 사랑에 대한 기록이다. 찰나처럼 머물렀다 떠나버린 사랑과 같은 영화다. 그들의 낯선 만남과 이별이 어쩌면 이렇게 우리를 뒤흔들어놓는지. 얼어붙었던 감정의 대지(大地)를 어쩌면 이토록 아프게 헤집어 놓는지. 그러므로 다가올 그 언젠가의 겨울에는 영화 <무뢰한>이 다시 상영되길 기대해본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 뺨을 스치는 차디찬 아픔마저 사랑이었음을 아는 이들을 위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겨울을 배경으로 한 낭만적인 장면 하나 없지만 이 영화는 분명 ‘겨울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난 뒤 감자탕과 소주를 곁에 두고, 겨울밤 그리고 찬바람 부는 새벽을 지새운다면 상상을 한다. 문을 열고 들어선 감자탕 집엔 이미 술에 취한 정재곤이나 김혜경이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혹은 그 언젠가 소주처럼 독한 감정을 나눴을 각자의 옛 애인을 떠올려본들 어떠할까. 그러곤 안부를 묻는다. 그대 잘 지내고 있는가. 그가 어디에 있건 정재곤의 고백처럼 부디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끝끝내 사랑이 아니었어도 그 모든 것이 사랑이었으므로. 염치없지만 그들을 아프게 만들었던 모든 미안함조차 사랑이었으므로. 덧붙이자면, 이것이 사랑에 있어서는 ‘무뢰한’으로 살 수밖에 없을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고백일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은 고백을 고백하며 살아가야 할까. “그날 마구 비틀거리는 겨울이었네. 그때 우리는 섞여 있었네”로 기형도 시인의 시가 떠오르는 계절. 많은 이가 극장에서 볼 기회를 놓치고 말았을 쓸쓸한 사랑 영화, <무뢰한>을 다시 보기 좋은 계절이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