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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저 네이버] 영화 경주 | ||
[디아티스트매거진=홍진희]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인공 최현은 선배의 쓸쓸한 장례식장에서 7년 전 경주의 한 찻집 벽에 붙어있던 춘화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는 즉흥적으로 경주에 찾아간다. 영화는 최현이 하루 동안 경주에서 겪는 일상을 때로는 먼 곳에서 때로는 그의 내면 가까이에서,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따라간다. 마치 일기처럼 그날 하루의 모든 일과를 하나하나 나열하다 중간 중간 느낀 점, 혹은 상상했던 일들을 끼워 넣으며 말이다. 상업적인 영화에서 영화의 빠른 전개와 몰입을 위해 생략하는 컷들도 이 영화에서는 모두 삽입되어있다. 쓸데없이 윤희가 말리고 있는 찻잎을 만져본다던지, 화장실을 간다던지 하는 영화의 전개에 필요하지 않은 행동들을 real time으로 보여주며 이 영화는 한 사람의 일상을 그저 묵묵히 따라간다.
영화 제목처럼 카메라는 최현이 있던 하루 동안의 경주의 모습을 담아낸다. 인물 중심의 촬영이 아니라 사진과도 같은 경주의 풍경 속을 카메라가 바라보고 있으면 그 안에서 주인공 최현이 움직이며 자신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최현은 과거 기억 속의 경주를 더듬으려 이곳을 찾았지만 그 기억 속에서 그가 기억해 내고 찾고 싶어 하는 것은 찻집 벽에 있던 춘화와 만취했을 때 듣던 돌다리 밑의 물소리뿐이다.
최현은 왜 그토록 춘화에 집착하는 걸까? 최현의 경주에서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죽은 선배와의 다정했던 한 때를 그리워한다기보다는 춘화를 보며 선배들과 음담패설을 즐기던 그때의 일탈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보인다. 멀리 중국에 있는 아내의 억압 때문에 한국에 와서도 담배 냄새만 맡던 최현은 과거 술을 많이 먹고 잠자리를 가졌던 여자 후배를 경주까지 부른다. 하지만 후배에게 과거 자신의 아이를 가졌었다는 충격적인 소식만을 전해 듣고 기대하던 희망이 사라지자 아내 때문에 끊었던 담배를 한꺼번에 두 대나 피우며 자신을 누르고 있던 일상에서의 일탈을 간절히 원한다. 착잡한 심정의 그가 찾은 곳은 고작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던 여직원이 있던 관광 안내소이다. 마치 퉁명스러운 후배의 행동에 보상이라고 받고 싶다는 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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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저 네이버] 7년 전에 본 춘화에 집착하는 최현 | ||
춘화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윤희의 찻집을 다시 찾은 최현은 그곳에서 상복을 입은 죽은 선배의 아내를 만난다. 물론 이것은 최현의 환상 혹은 꿈이다. 이곳에 존재할 수 없는 존재인 죽은 선배의 아내를 보고 최현은 놀라기는커녕 “오셨군요, 형수님”이라며 기다렸다는 듯 인사를 한다. 그리고 형수는 남편의 죽음은 스스로 결정한 거지만 자살은 절대 아니라며 최현은 아마 알고 있을 거라고 계속 강조를 한다. 선배의 죽음 때문에 경주에 오게 되었지만 춘화를 찾고 여자 후배를 만나던 최현은 마음 한구석에는 끊임없이 선배의 이유 없는 죽음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죽음의 의문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고 고승들이 자신이 열반하는 날짜를 스스로 결정하는 거처럼 선배의 죽음을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은 욕망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최현의 에로티시즘적인 욕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선배의 죽음의 이유를 당사자인 선배가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어리고 예쁜 아내가 나타나서 전해주는 것은 최현의 무의식 속의 은밀한 욕망을 말해준다. 그녀의 구구절절한 설명에도 최현이 가장 원하는 건 고작 그녀의 손을 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선배의 죽음에 대한 지속적인 압박감과 이를 무겁게 담아두고 싶지 않은 마음, 그리고 여성에 대한 갈망을 최현은 이 환상 속에서 응축해서 표현한다.
최현은 일탈을 꿈꾸는 남자이지만 하필 선배의 죽음을 빌미로 이토록 일탈을 꿈꾸는 이유는 그가 일탈을 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욕망은 강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것을 표현할 줄 모르고 자신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특별한 이유가 없이 최현은 일본어를 잘 하면서도 과거사에 대해 사죄하는 일본인의 말을 못 알아듣는 척 하고, 관광안내소 여직원을 처음 만났을 때도 중국인인 척을 한다. 또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자주 이랬어요?”, “낮에 봤을 때 진짜 변탠줄 알았어요.”라고 묻는 윤희의 말에도 최현은 맞다, 아니다 라는 말도 하지 않고 오히려 윤희에게 그래 보이냐며 반대로 되묻는 자기 자신의 욕망을 철저히 감추는 그런 인물이다. 결국 이런 성격의 최현은 일탈을 간절히 꿈꾸며 경주에 갔음에도 문이 열린 윤희의 방문 앞에서 서성이기만 할뿐 자신의 욕망을 다시 감춘다. 그리고 새벽에 온 아내의 음성메세지에 꿈꾸던 일탈을 접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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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저 네이버] 하지만 최현은 일탈을 할 수 없는 인물이다. | ||
과거의 기억을 쫓아 경주까지 왔다고 믿은 최현은 영화 결말에 와서 이 모든 게 자신의 기억을 핑계 삼은 욕망 때문이었음을 짐작하게 된다. 일탈을 꿈꾸며 불러낸 후배의 남편에게 쫓기면서 그는 오토바이 사고를 목격한다. 그리고 자신이 꿈꾸던 일탈이 얼마나 위험한 것이며, 자신이 외면했던 죽음은 죽은 왕들의 무덤처럼 멋지고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 너무도 갑작스럽고 비참한 것이라는 걸 자각하며 두려워한다. 그렇게 현실의 두려움에 도망치다 도착한 돌다리에서 그는 자신의 기억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취해서 듣던 물소리는 돌다리에서 나던 것이 아니라 저 멀리에서 흐르던 강에서 들려오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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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저 네이버] 기억이란 얼마나 부질없는지를 영화는 말한다. | ||
그래서 강을 바라보며 과거 춘화가 있던 시절의 찻집을 회상하던 최현은 윤희가 등장하자 그렇게 웃을 수 있었던 것이다. 정확한 그 시절의 모습을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욕망하던 여자 윤희가 찻집의 주인으로 나타났으니 말이다. 기억이란 부질없는 것이고 이 모든 게 다 욕망 때문이라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기 위한 위장이었음을 그 순간 그는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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