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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들을 개, 돼지처럼 다뤘는가

박동수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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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탠리 큐브릭 <영광의 길> 포스터

[디아티스트매거진=박동수] 인간이 개, 돼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뭘까? 인간에겐 감정이 있고, 개, 돼지에겐 없다는 것은 틀렸다는 것은 밝혀진지 오래다. 하지만 개, 돼지에게 없는 감정이 있고, 인간에겐 있어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감정이 있다. ‘연민’이란 것이다. 연민은 타인을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기는 감정이다. ‘동정’과는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데, 동정은 연민의 대상을 도와주는 행동이다. 연민은 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기는 감정 그 자체이다. 그리고 그 대상이 타인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길에서 보이는 노숙자, 실연당한 친구, F학점을 받은 복학생부터 버려진 유기견, 매서운 겨울밤 길거리에서 태어난 새끼 고양이, 심지어 불타 버려진 폐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타자에게서 연민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개나 돼지는 연민을 느끼지 못한다. 돼지가 죽는 것을 보면서 개가 연민을 느낄 수 있을까? 개언어 번역기가 나오지 않는 이상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광의 길>은 전쟁의 희생자들에게 연민의 감정을 내비친다. 연민의 대상은 전쟁 중 죽을 운명에 처한 말단 병사들이다. 배경은 1차 세계대전, 프랑스와 독일의 전투가 한창인 상황이다. 아내와 자식들을 집에 두고 온 이들은 왜 죽을 위기에 처했을까? 독일군과의 격전을 앞두고 있어서? 야밤에 위험한 정찰임무를 맡아서? 대부분의 반전(反戰)영화들은 적에 의해 죽을 위기를 맞은 주인공에게 연민을 보내며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하지만 <영광의 길> 속 병사들에게 운명으로 다가온 총알은 독일군의 것이 아니다. 병사들을 총살한 프랑스군의 총알이다.

   
▲ <영광의 길> 스틸 컷

불쌍하고 가련한 말단병사들이 사형대에 오른 경위를 살펴보자. 그들이 속한 701부대는 독일군이 점령한 개미고지 앞에서 참호를 파고 대치중이다. 사단장 미로(아돌프 랜주)는 프랑스군의 용맹함과 자신의 승진을 위해 무리한 작전을 감행한다. 전력의 70퍼센트 가까이를 잃을 것을 알면서도 돌격을 지시한다. 부대를 이끄는 닥스 대령(커크 더글라스)은 무리한 작전이라며 거부하지만, 거부는 역시나 거부당하고 작전을 실시하게 된다. 결과는 참패. 점령은커녕 적의 철책 근처에도 도달하지 못한다. 무리한 작전을 감행한 미로 사단장은 그 책임을 닥스 대령에게 떠넘긴다. 그리고 각 소대별로 한 명씩 뽑아 군법재판에 올릴 것이라고 한다. 정찰병 파리(랠프 미커)와 두 명의 병사가 재판을 받게 되었다. 전직 변호사였던 닥스 대령의 변호에도 사형을 선고받고, 총살된다. 프랑스군의 떨어진 사기를 올리기 위함이라는 명목이었다.

미로 사단장은 자신의 승진을 위해 부하들을 아낌없이 희생시킨다. 아니, ‘투자’한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그에겐 부하들의 희생은 자신의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그를 꼬드긴 동료 조지도 마찬가지다. 그는 프랑스군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 몇 명쯤 총살해야 한다면서 병사들을 ‘소비’한다. 불가능에 가까운 작전으로 전장에서 죽을 뻔 한 위기를 넘긴 병사들은 제비뽑기 혹은 자신이 밉보인 상관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게 되었다. 전장에서든 전장 밖에서든 병사들은 맨 꼭대기 상관들의 소유물처럼 다뤄진다. 마치 개나 돼지 같은 가축처럼 말이다. 그들에겐 연민이 없다.

   
▲ <영광의 길> 스틸 컷

반면 닥스 대령은 자신의 모가지가 걸렸음에도 상관인 미로와 조지에게 “당신들은 연민이란 것이 없습니까?”라고 되묻는다. 연민이 동정으로 번져 재판에 회부된 세 명의 병사들을 직접 변호한다. 닥스 대령은 그들이 자신의 부하들이기 이전에 병사들도 같은 인간이기에 연민을 가지게 된다. 부하들의 희생을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투자’하고 ‘소비’하는 상관들과 확실한 차이를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 다시 전장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닥스 대령은 한 가게를 들여다본다. 부하들이 술을 마시며 한 코미디언의 만담을 박장대소하며 관람하고 있다. 그러던 중 코미디언은 독일에서 왔다는 여자를 무대로 데리고 온다. 병사들은 걸그룹을 만난 훈련병처럼 환호하고, 스트리퍼를 앞에 둔 것처럼 음흉하게 웃는다. 개그도, 춤도 못 추는 독일 여자의 유일한 재주는 노래다. 그녀가 노래를 시작하자 소란은 멈추고 다 같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언어는 모르지만 허밍으로 함께한다. 전쟁 속에서 가축 같던 병사들은 연민을 가지고 독일 여자를 바라보면서 인간성을 되찾는다.

   
▲ <영광의 길> 스틸 컷

군대 조직 꼭대기에 있는 상관들은 연민이 없다. 전쟁에서 한 발 떨어진 곳에서 전쟁을 치루면서도 말이다. 그들에게 병사는 국기를 흔드는 투우사에게 덤벼드는 소와도 같다. 하지만 소, 혹은 개나 돼지 같은 병사들은 전장에서 돌아오자 연민을 되찾고 사람으로 돌아온다. 자, 과연 누가 짐승이고 누가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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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수
dsp9596@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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