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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봉 여전히 그곳은 가리봉

이준건 기자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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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이준건]

“가리봉 시장에 밤이 깊으면

가게마다 내걸어 놓은 백열전등 불빛 아래

오가는 사람들의 상기된 얼굴마다

따스한 열기가 오른다”

박노해 시인이 쓴 <가리봉시장>은 역동적인 사람들로 가득하다. “긴 노동 속에 갇혀 있던/우리는 자유로운 새가 되어/이리 기웃 저리 기웃 깔깔거리고” 많은 사람들 특히 노동자들이 왕래하는 곳으로 묘사된다. 그렇다면 그곳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로 꽉 찬 공간일까. 지금은 어떤 사람들이 어떤 장소를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고 있을까.

   
 

2015년 11월 15일. 503번 버스를 타고 가리봉시장으로 향했다. 굽이진 언덕을 몇 번 넘자 “이번 정류장은 가리봉시장입니다.”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정류장 근처에 세워진 ‘주폭은 조폭과 같은 폭력행위입니다.’라는 선전문구가 눈에 띤다. 문구 옆에는 같은 의미처럼 보이는, 한문으로 된 문구가 함께 적혀있었다. 한 여성은 신문을 들고 중국어로 무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마 신문팔이인 모양이었다.

사진기를 들고 가리봉시장으로 들어갈 채비를 했다. 입구 사진을 한 컷 찍고 나니 옆을 지나가던 세 명의 청년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왜 굳이 이런 곳을?’하는 표정. 중국어 간판을 내건 가게의 주인들도 다소 경계하는 눈빛이다. 애써 그들의 눈빛을 무시하며 가리봉시장으로 들어갔다.

   
▲ 필자가 그곳 사람들을 경계했던 것처럼, 이들도 낯선 이를 경계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가리봉시장은 경공업이 수출의 주력산업이었던 1970년대, 구로공단을 끼고 발전한 ‘명동 부럽지 않던’ 중심지였다. 7000m3 면적 규모의 가리봉상가와 이를 중심으로 형성된 가리봉시장은 의류중심의 시장이었단다. 많은 사람들이 옷을 사기 위해 이곳에 들렀고, 그 시대의 흔적인 양 현재 가리봉시장 주변에는 여전히 옷가게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1980년대 말, 수출이 끊기고 산업의 중심도 중공업과 서비스 산업으로 옮겨가면서 가리봉시장 일대도 몰락하기 시작했다. 한때는 재개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지만, 인근 지주들의 욕심으로 건설사 간의 계약이 흐지부지되면서 재개발 이야기도 쏙 들어가버렸다. 결국 가장 큰 상가건물이 해체되면서 입주했던 상인들도 흩어졌고, 한때 노동자들의 중심지였던 가리봉시장 일대는 그 위상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 시장의 내부는 한가하기 짝이 없다.

손발이 퉁퉁 붓도록“하루 14시간

유명 브랜드 비싼 옷을 만들어도

고급 오디오 조립을 해도

우리 몫은 없어”

가리봉전통시장 안으로 들어가니 중국식품점 특유의 냄새가 공간을 꽉 채우고 있었다. 해바라기씨와 오리고기, 그리고 약간 시큼한 냄새. 자전거를 타고 가던 사람이 길을 가던 행인을 살짝 건드리고 가자, 행인은 “저 X발 X이 어디서 자전거를 쌩쌩 타고 다녀?”라고 모두가 들을 만한 목소리로 불만을 표시한다. 시장 상인들은 한가한 시간을 즐기며 의자에 눕다시피 앉아 있거나 아예 가게 안에 드러누워 TV를 시청한다. 주말 오후라 사람들이 북적거릴 법도 한데 가리봉전통시장은 한가함만 가득하다.

   
   
▲ 가리봉, 그곳은 여전히 노동자들의 도시. 

가리봉시장은 한때 한국 산업발전의 현주소이자 근대화의 주역들이 모인 곳이었지만, 지금은 해외노동자로 가득한 동네가 되었다. 하지만 어찌보면 그들 또한 그들의 국가가 발전하는 데 크게 기여하는, 근대화의 주역들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가리봉시장은 여전히 노동의 현장이고, 노동자들의 고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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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건 기자
seawhale98@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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