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권오경]
[우디앨런,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
![]() |
||
| ▲ 출처: 구글이미지 | ||
영화감독으로 익숙한 우디 앨런은 사실 신문에 코믹 칼럼을 게재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당시에 굉장히 유명했던 매니지먼트 사업가이던 잭 롤린스와 찰스 조피가 그런 우디 앨런에게 코미디언으로서의 활동을 제안했고 그는 감독이기에 앞서 코미디언으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연기를 배운 적이 없었던 그가 독백 개그쇼를 진행하기란 다소 버거운 일이었다. 몇번이고 포기하려는 우디에게 잭과 찰스는 이러한 과정이 결국 그에게 단순한 서사구조의 개그를 넘어 연기의 영역까지 가는 버팀목이 될 것이라며 끈질기게 설득했고, 마침내 그의 재치와 순발력은 뉴욕 타임즈에서 극찬을 받게 된다. 그 덕에 우디는 ‘비터 앤드’에서 공연을 하게 되며 곳곳에서 방송출연 제의를 받는다.
![]() |
||
| ▲ 출처: 구글이미지/고양이 포스터 | ||
방송계에서 알아주는 코미디언이 된 우디 앨런이 영화로 까지 그 영역을 넓히게 된 계기는 헐리우드의 고참 프로듀서인 찰스 펠드먼이 그의 공연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아 그에게 <고양이>(1965)의 각본과 단역을 맡아줄 것을 부탁하면서부터다. 이로써 우디는 영화 배우이자 각본가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된다. 하지만 영화사의 과도한 개입으로 그가 집필한 각본의 본질이 사라지고 결국 영화는 엉망이 되어버린다. 그가 처음에 의도했던 코미디와는 완전히 반대인, 슬랩스틱이 난무하는 영화로 변질되어버린 것이다. 이 경험으로 그는, 오로지 그가 감독하는 영화에만 출연할 것을 다짐하게 된다. 어떠한 간섭도, 의문제기도 없는 상황 속에서 그는 그만의 상상력을 영화 속에 온전히 담아냈고 그로 인해 시각적으로 한층 더 자극적이며 흥미로운 영화들을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계속해서 이국적이며 이색적인 그만의 특성을 영화 속에 부각시켜나갔다.
[마법에 빠진 파리]
![]() |
||
| ▲ 출처: 구글이미지 | ||
이렇듯 일말의 통제도 없이 영화 속에 극대화된 그의 재치와 상상력은 관객에게 있어서 때로 그를 불친절한 사람으로 만든다. <미드나잇 인 파리> 의 오프닝 장면들이 그렇다. 3분이 넘는 시간동안 어떠한 대사나 나레이션, 자막도 없이 우디 앨런은 그저 대뜸 보여준다. 인적이 드문 파리를, 사람들의 분주한 걸음걸이로 가득 찬 파리를, 햇살이 자리한 파리를, 비가 쏟아지는 파리를, 노을이 지는 파리를, 그리고 어둠이 찾아온 뒤의 화려한 파리를 우리에게 다짜고짜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는 어느새 그가 보여주는 ‘지금 이 순간’의 파리에 녹아든다. 마치 3분동안 우리에게 최면이라도 건 듯, 우리는 이야기가 채 시작도 하기 전에 넋을 빼앗기고 만다.
![]() |
||
| ▲ 출처: 구글이미지 | ||
<미드나잇 인 파리> 속 이야기들은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펼쳐지는데 이는 우디 앨런이 이탈리아 영화감독인 ‘펠리니’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펠리니의 영화 <8과 2분의 1>은 자전적 영화로, 일과 사생활 모두에서 혼란에 빠진 그가 겪는 이야기들은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와 같이 여러 시간을 넘나들며 펼쳐진다. 이렇듯 앨런의 영화는 판타지와 리얼리티를 대비시키며 몽상같은 현실, 현실같은 몽상이 존재하는 독특한 이야기 구조를 지닌다. 또한 12시가 되면 ‘길’을 과거로 데려다주는 오래된 푸조 자동차가 찾아온다는 설정은 우리에게 마치 신데렐라의 동화적 환상을 불러일으키며 그 신비로운 분위기를 배가시킨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과거와 현재, 환상과 현실이 상호작용한다는 점이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스토리라인의 인과 관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놀라운 속도로 관객을 매료시킨다.
[머물 수 없는 과거에 대한 향수, 떠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부정]
![]() |
||
| ▲ 출처: 구글이미지 | ||
영화 속 주인공 ‘길’은 1920년의 파리를 동경하는 헐리우드 각본가다. 길의 방향성은 과거를 향해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또한 노스텔져샵에서 일하는, 과거의 향수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혹은 벗어날 수 없는-인물이다. 안타깝게도 길은, 예술을 그 진정성과 우아함이 아닌 그저 표면적인 지식으로 치부하는 공허한 시대를 살아간다. 이러한 시대적 결핍으로 인해 그는 그의 내면에 잠재된 예술성이 실현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진정성과 본질을 잃어버린 채 상업화된 글을 써내려가는 그의 모습은 마치 <고양이>의 대본을 맡았던 1965년의 우디 앨런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런 길에게 파리는 그가 가진 환상이 실재하는, 마음 속의 축제-헤밍웨이가 말했듯이-가 일어나는 곳이다. 파리에서 그는 우연히 20년대로 돌아가 당대의 예술가들이 간직한 고귀한 예술성을 경험하고, 그들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 걷는다. 하지만 그들의 낭만으로 살아숨쉬던 20년대 파리에 매료된 그에게 돌아오는 것은 예술과 낭만에 대한 갈증이 사라진, 그가 살아가는 시대에 대한 부정뿐이다.
[황금시대는 늘 한 세대 앞선다]
![]() |
||
| ▲ 출처: 구글이미지 | ||
늘 자신이 너무 늦게 태어났다고 생각하던 길은 ‘아드리아나’를 만나면서 자신이 외면하던 현실과 늘 동경하던 과거 사이의 거리가 그리 크지 않음을 발견한다. 아드리아나는 그가 그토록 동경하는 20년대 파리를 살아가는데도 불구하고 되려 벨 에포크 시대인 1890년대의 파리가 로망이라 말한다. 그리고 마침내 길은-우리는-깨닫는다.’한 시대엔 시시하고 초라했던 것들이 단지 세월이 흘렀다는 이유로 신비롭고 흥미로운 존재로 바뀌어갔다.’는 그의 소설 첫문장의 진정한 의미를. 그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지금은 비록 시시하고 초라하지만 언젠가는 이 순간도 세월의 물결로 뒤덮여 다가갈 수 없는 섬이 되고 나면, 신비롭고 흥미로운 시대로 인식될 것이라는 것을.
![]() |
||
| ▲ 출처: 구글이미지 | ||
![]() |
||
| ▲ 출처: 구글이미지 | ||
결국 길은 자신이 그토록 동경하던 과거 속에 남는 순간 이내 곧 현실이 되어버린다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고 그가 품고 있던 낭만과 상상이 한 줌의 모래가 되어 세게 쥐면 쥘수록 손가락 사이로 더욱 빠르게 새어나가버린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로써 앨런은 우리에게 확실히 보여준다. 이제껏 그가 찾아 헤맸던 것은 20년대의 비오는 파리가 아닌, ‘지금 이 순간’ 의 낭만을 공유하며 그와 함께 비오는 파리를 걸어갈 누군가였으며, 앞으로 그가 찾아 헤매야 할 것은 환상위에 자리한 로망이 아닌 현실 위에 피어날 예술이라는 사실을.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