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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구글이미지 | ||
[디아티스트매거진=권오경] 청춘이라는 단어만으로 이토록 막막하고 불안정한 시간들을 버텨낼 수 있을까. 스물일곱이라는 이미 ‘늙어버린’ 나이의 프란시스.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은 있지만 정작 그 일을 하고 있지는 않다. 만년 견습생 무용수일 뿐이다.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는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해 환하게 불을 밝히고 그녀는 무대 밖 어둠 속에 그림자처럼 숨어있다. 관객의 환호소리와 박수갈채는 그녀를 빗겨가 다른 청춘을 향해 빗발친다. 그녀의 청춘은 조연일 뿐이다. 청춘이기에 금세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적인 말도 가혹한 현실앞에서는 무너져버린다.
<프란시스의 너무나도 가벼운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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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쾌한 음악을 배경으로 프란시스와 소피의 장난기 가득한 행동들을 보여주며 영화는 시작한다. 청춘의 무게가 그녀의 삶에 깊게 뿌리내리고 의지할 만큼 무겁지 않기 때문에 프란시스는 매우 불안정한 시간들을 보낸다. 어느 것 하나 당당히 말할 수 없는 신세다. 그녀는 툭하면 “I guess”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 가벼움과 불확실성을 증명한다. 프란시스의 청춘은 가볍기에 잘 흔들리고 잘 변한다. 소피가 떠난 후 지루함이 지배하던 그녀의 일상은 두 룸메이트(벤지, 레브)들 덕분에 금세 활기를 되찾고 춤을 추며 뉴욕거리를 쏘다닌다. 마찬가지로 방금 전까지 무기력에 지배당해 우울해하다가도 세금 환급 편지를 받고는 순식간에 미소가 번진다. 돈에 좌우되는 감정이라니 어쩐지 씁쓸하면서도 공감가는 부분이다. 오늘 하루 벌어먹고 살기도 이렇게 벅찬데 꿈이란게 다 무슨소용인지. 머릿속에 맴도는 찬란한 미래의 순간들은 도무지 현실로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직업적으로 성공하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루하루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일이 그저 환상일 뿐이라는 생각이 자꾸만 현실을 비집고 들어와 청춘이라는 푸른 봄날을 그저 우울한 순간으로 전락시켜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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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와 프란시스는 늘 그들의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세계를 접수하게 될 것이고, 프란시스는 유명한 현대무용수가, 소피는 출판업계에 먹어주는 거물이 될 것이며 프란시스에 대한 아주 비싼 책을 낼 것이고 그들이 씹던 사람들도 관상용으로 한권 씩 그 책을 사둘 것이라고. 또 그들은 같이 파리에 별장을 사고, 애인도 만나며, 대학 졸업식에서 연설을 하기도 하며 명예 학위도 잔뜩 받을 것이다. 이처럼 그들은 하고 싶은 일, 해내고 싶은 일, 갖고 싶은 미래, 이뤄내고 싶은 꿈이 이렇게나 많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짊어지기에 그들의 청춘은 너무나도 가볍다. 그렇기에 청춘은 이들이 갖는 사랑에 대한 낭만과 친구에 대한 믿음, 성공적인 앞날에 대한 희망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버린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청춘이 그렇듯, 그들 역시 여기저기 흩어져버린 그들만의 것-낭만, 사랑, 꿈-을 되찾으려 발버둥치며 살아간다.
<프란시스의 청춘은 뉴욕, 소피, 무용으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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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은 생활고를, 소피는 인간관계를, 무용은 꿈을 대변한다. 영화는 흑백처리를 함으로써 특수성을 제하고 보편성을 얻는다. 이 청춘의 이야기가 프란시스 개인만의 이야기가 아닌 가장 보통의 공간에서, 가장 보통의 이십대들이 견디는 가장 보통의 청춘임을 보여준다. 실제로 우리는 매일같이 줄어가는 통장잔고에 주눅이 들고, 영원한 친구라고 생각했지만 각자의 세계에 치여 그 관계가 갈수록 변해가는 것을 보며 씁쓸해하고, 한결같이 고수해온 꿈이 현실에 긁혀 생채기 투성이인 걸 발견하고는 자괴감에 빠지기 일쑤다. 이 세가지로 대변되는 프란시스의 청춘은-우리의 청춘은-한마디로 상실의 시대다. 우리는 그녀가 사랑과 돈, 우정, 꿈을 차례대로 잃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베스트프렌드 소피를 위해 남자친구와의 동거를 포기했고 그 결과 남자친구를 떠나보내지만 정작 소피는 살고 싶어했던 동네에 집이 나왔다며 프란시스를 떠나 집을 옮긴다. 혼자는 감당하기 버거운 집세때문에 프란시스도 결국 다른 동네로 이사하지만 그래도 950달러나 하는 집세때문에 나날이 생활고에 시달린다. 죽고 못살던 소피와는 점점 만나는 일이 줄어들면서 관계마저 소원해지고 결국 사소한 다툼으로 둘의 사이는 엉망으로 꼬여버린다. 직장에서는 크리스마스 공연을 함께하지 못할 것이라는 잠정적인 해고선언까지 듣고 심지어 무용수가 아닌 사무직 제안까지 받게 된다.
<맨발의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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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속하게 흐르는 시간은 내 주변의 사람들, 나의 젊음, 나의 꿈 그리고 나의 청춘을 앗아간다. 우리는 애써 그것들을 붙잡으려 맨발로 뛰어나가보지만 빠르게 지나쳐버리는 시간에 비해 나의 능력은 터무니 없이 굼뜨다.
청춘의 시기에 우리가 고민하는 것은 늘 똑같다.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고 생계를 이어나갈 방안을 찾을 것인지, 꿈이라는 것을 한번 믿어보고 밀어붙여볼 것인지. 둘 사이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서 딱히 하는 일 없이 청춘을 낭비하고 방황하는 우리의 모습은 프란시스에게 그대로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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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결국 사무직을 맡는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빛나는 조명 불빛 대신 그녀를 맞이하는 텅 빈 관객석 앞에서 그녀는 춤을 춘다. 마침내 공연이 시작하고 그녀는 무대 위에서의 힘찬 움직임대신 무대 뒤 장막에 웅크리고 앉아 큐싸인 신호를 보낸다. 영화의 엔딩장면은 그녀의 이러한 선택과 관련해볼 때 아주 흥미롭다. 프란시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우편함의 크기에 맞추어 자신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접어 넣는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프란시스 하’가 된다. 이는 그녀가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과 상황에 맞춰 변화하고 적응해갈 것을 암시한다. 하지만 어쩐지 그녀의 표정은 씁쓸하다기보다 안정적이고 여유로워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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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를 되찾고 불확실한 것들로부터 하나씩 벗어나게 될 때 비로소 청춘의 끝자락으로 향해 간다는 것이, 청춘은 늘 혼란의 동의어라는 것이,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도 찬란한 순간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불안정하고 고독한 상실의 시대라는 점이 한편으로는 억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청춘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청춘이기에 가능했던 도전들이고 청춘이기에 느낄 수 있었던 상처들이었음을 느끼게 해주는 동시에 꿈이 아닌 현실을 택한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내고 위로받을 수 있는, 모든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을 위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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