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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되는 고통의 괴기스런 공포.<검은 사제들>

신동혁 기자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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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검은 사제들> 포스터

[디아티스트매거진=신동혁]***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검은 사제들>(2015, 장재현)

한국판 <엑소시스트>(1973). 이 한 마디로 부족할까? <검은 사제들>을 보고 극장을 나서는 내 머릿속엔 40년 전 영화가 가득했다. 귀신들린 한 소녀에게 두 신부가 행하는 구마. 외국에선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선 생소한 천주교의 구마의식이 어지럽게 펼쳐지는 스크린은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다. 최근 얼마 간 그다지 기억 남는 호러 영화가 없던 한국 영화판에서 이 정도로 웰-메이드 영화가 등장했다는 사실도 흐뭇하게 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날아드는 질문, ‘<검은 사제들>은 <엑소시스트>의 한국판 변주일 뿐인가.’ 이 질문은 일차원적 단순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다만 ‘<검은 사제들>과 <엑소시스트>간 40년의 차이가 어떻게 영화 속에 녹아들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면 보다 날카로운 시선을 견지할 수 있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귀신들린 소녀 영신

<검은 사제들>은 미남 배우 강동원과 관객들 사이에 공유하는 비밀이 한 가지 존재한다. 강동원, 그러니까 영화 속 최부제가 어린 시절에 큰 개에게 죽임을 당하는 여동생을 버려두고 혼자서 도망쳤다는 것. 이 사건에서 비롯한 죄의식은 환영(幻影)으로 시각화된다. 그리고 이 환영은 김신부(김윤석)나 다른 이들의 눈엔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관객들과 최부제만 바라보고 공유하는 죄의식 혹은 고통이다.

이 죄의식은 <엑소시스트>와의 차이로써 <검은 사제들>의 서사에 큰 지점을 형성한다. <엑소시스트>에서 구마의식을 진행하는 두 신부들에게 그들 각자의 죄의식이나 고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고통 받지 않고 단지 악귀가 든 소녀를 구하는 영웅일 뿐이었고 이 행위는 단지 ‘치유의 서사’에 불과 했다. 하지만 <검은 사제들>에서의 고통은 단지 악귀가 씌인 소녀에게 한정되지 않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구마의식을 하는 김신부와 최부제도 고통 받는다. 김신부와 최부제는 소녀와 함께 고통을 공유한다. 그들의 몸이 검게 썩어가며 시각화되는 고통은 언제 어디로든 퍼져나갈 수 있는 ‘전염성’을 지녔다. 소녀의 몸에 씐 악귀가 본인 스스로 수천 명의 몸을 옮겨 다녔다고 외친 것처럼. 이 영화에서의 ‘악귀’는 단지 개인적인 고통의 차원을 벗어난다.

여기서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검은 사제들>에서 소녀를 구하기 위한 구마의식은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한 자비롭고 숭고한 행위가 아니라는 점이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구마의식이 실행되기 전, 김신부가 연 창문을 통해 달빛이 들어오고 카메라는 그대로 창문을 통과해 바깥 풍경을 조망한다. 이 대목에서 카메라의 행위에는 어떠한 맥락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 움직임은 어두운 하늘과 밝은 도시를 대치시키고, 환한 네온사인과 캄캄한 뒷골목을 연이어 보여준다. 그리고 이 검은 풍경의 질척임을 뚫고 결국 카메라는 다시 소녀의 방으로 되돌아온다. 이 움직임은 확실히 소녀의 몸에 자리한 악령이 일상과 관련되어 있음을 밝힌다. 뒷골목의 스산함과 질척임이 소녀의 몸 안에 깃들어 있다는 듯이.

더욱이 의식 후에 소녀의 몸을 빠져나온 악령이 돼지로 옮겨지자, 그 돼지를 품고 최부제는 한강으로 뛰어든다. 여기서 한강은 악령에게 있어 정화되는 순백의 환함을 지니지만, 완전한 소멸이 아니라 봉인되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새까만 어둠도 지닌다. 여기에 한강이 지닌 역사적 상징을 생각해본다면, 우리 민족이 공유하는 죄의식과 고통은 ‘한강의 기적’ 속에 봉합되지만, 이는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멈춰있는 형상이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역사는 반복된다.’는 영어 속담처럼 잠시 감추어진 공유된 고통은 반복될 따름이다. 다만 언제고 되돌아 올 수 있는 악령에 최부제의 용기처럼 ‘선’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 계속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러한 가정은 무겁다. 공유되는 고통에 죽어가는 이를 위해서 자기 자신이란 존재를 거는 용기. <검은 사제들>은 이 용기를 묻기에 공포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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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혁 기자
ziziyazizi@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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