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권오경]
관객을 갖고 노는 영화가 좋다. 뒷통수를 제대로 치는 영화. 그렇다고 반전까지는 아니지만, 감독의 연출과 구성에 살짝의 배신감을 느끼는 정도랄까. 내게-그리고 관객 모두에게-‘이터널 선샤인’은 충분히 그런 탄성이 나오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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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순서대로 보면 기억을 제거한다는 것 외에는 단순한 멜로영화지만, 시공간을 마음대로 뛰어넘는 공드리의 매력은 영화 속에 여실히 드러난다. 클레멘타인의 머리색이 약간의 힌트가 되기는 하지만, 우리 눈에 순차적으로 보이는 것이 도대체 어디에 끼워지는 순간인지 혼란스럽다. 그리고 이 시간상의 혼란은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의 흥미를 급속도로 높여준다. 그리고 마침내 조엘이 눈을 뜨고 일어나 출근하는 것 대신 몬토크행 기차를 타러 달려가는 순간 우리는 말그대로 공드리에게 한대 얻어 맞은 듯이 탄성을 내뱉게 되는 것이다. 공드리의 또다른 매력은 (‘수면의 과학’에서 극대화된) 그만의 상상력이다. 조엘에게서 사라져가는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그는 단순히 기계조작과 시간의 흐름으로만 나타내지 않았다. 그는 엉뚱하면서도 천진난만하게, 또 그만의 재치있는 아이디어로 조엘이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을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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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구글이미지 | ||
조엘은 발렌타인 데이에 충동적으로 회사를 빠진다. 스스로를 즉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도 그는 기차에 올라타 몬토크로 향한다. 그곳에서 어쩐지 계속 마주치는 클레멘타인을 만나고, 독특하고 당찬 그녀와 조엘은 ‘하루만에’ 사랑에 빠진다.
사랑에 막 빠진 사람들 중 92.7퍼센트가 제일 처음으로 하는 생각이 ‘앗, 젠장’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 생각 속에는 대체로 이런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앗, 젠장, 또다시 사랑에 빠져버리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앗, 젠장, 지금까지 잘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잠깐 방심한 사이에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렸군.’, ‘앗, 젠장, 이제부터 그 모든 지겹고 끔찍한 일들을 시작해야하는 건가? 도망치기에는 이미 너무 늦은 건가?’,’앗, 젠장, 나의 평화로운 시간들은 모조리 끝장난 건가? 지루하고 느긋한 휴일과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시작하는 아침, 아무런 번민도 없이 잠들었던 그 밤들은 다시 오지 않는 건가?’
황경신의 소설집, <슬프지만 안녕>에 나오는 <한 밤의 티파티>의 서두다. 마치 조엘과 클레멘타인의 대사라도 되는 듯 그들의 생각과 꼭 들어맞는 구절이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설레기도 하면서 결국 찾아올 이별때문에 망설여지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토록 좋았던 점이 결국엔 자신을 상처입히는 단점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조엘에게 클레멘타인의 오렌지색 스웨터가 그러했던 것처럼-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반복되는 싸움과, 설렘이 사라진 화해의 키스에 어떠한 애틋함도, 아무런 미련도 남아있지 않다면 라쿠나(라틴어로 ‘잃어버린 조각들’을 뜻한다)같은 회사는 필요도 없을 테지만 사랑은 기억보다 강하고, 사람은 기억보다 약하다. 그렇기에 클레멘타인은 조엘과의 사랑의 기억을 영원히 지워버리길 원했고 ‘망각의 축복’을 누리고 싶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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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 구글 이미지/ 기억을 없애주는 라쿠나 주식회사. | ||
‘망각의 축복’이나 ‘흔적없는 마음의 영원한 행복’이라는 영화 제목에서도 나타나듯이 조엘이 없는, 순수한, 온전한 그녀만의 삶은 클레멘타인이 원했던 것이다. (제목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은 포프의 시에서 발췌한 것으로, 프랑스 철학자 아벨라르와 그의 연인 엘로이즈에 대한 사랑이야기를 바탕으로 한다. 엘로이즈는 아벨라르와 헤어진 후 그와의 기억을 잃어가는 것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물론, 반어적인 제목이다.) 조엘이 없는, 조엘이 없었던 삶으로 돌아간 지 단 몇일 만에 클레멘타인은 조엘과 사랑에 빠지고, 클레멘타인을 기억 속에서 없앤 지 단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조엘은 그녀와 몬토크에서 재회하고, 사랑을 확인하고, 만남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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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구글이미지 | ||
태양이 뜨고, 햇살이 비치는 동시에 그림자가 생기듯이,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상처입은 이별이 동시에 싹을 틔운다. 그림자없는 햇살은 인위적이고, 불완전하며,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클레멘타인은 조엘이 드리워놓은 사랑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그 어둠과 비애의 낯빛 대신, 그녀를 반기는 끝없는 햇살만이 남아있기를 바랐지만 그녀는 자신의 불완전함을 느낄 뿐 찬란한 축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엘과의 사랑, 이별, 지긋지긋한 권태까지도 모두 내다버렸기에 역설적이게도 그녀가 기대했던 영원한 행복은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기억은 조각나고 부서져 세월이라는 물살에 휩쓸려 사라질 수 있지만, 기억을 내모느라 사방이 물결에 휩싸여버리면, 결코 우리는 사랑이라는 섬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만일 우리가 그곳을 벗어나더라도, 그것은 단지 우리가 놓아버린 세상으로부터의 허무한 안식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은 기억은 잃어도 사랑을 잃지는 못하는 존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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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구글이미지 | ||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안간힘을 쓰며 서로에게서 벗어나려 노력한다. 사랑 후에 남겨진 찌꺼기들 속으로 침잠하지 않기 위해서, 거칠게 몰아치는 풍파를 외면하고 싶어서, 이 반복되는 자연재해마저도 서로의 모든 기억으로 통하는 길 잃은 방황따위는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그들은 기를 쓰고 기억이라는 대해를 헤치고 노를 저어간다.
재개봉한 ‘이터널 선샤인’이 이토록 사랑 받는 이유는, 어쩌면 서로에 대한 기억을 잃고 모든 것이 처음으로 되돌아 갔을 때 그들이 느꼈던 순간의 달콤함에서 우리의 설렘을 엿보고, 그들이 또다시 번거로운 권태에 휩쓸려 상처입어도, 같은 실수와 같은 사랑을 반복해가는 모습에서 우리의 사랑을 보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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