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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애니웨이] 외로운 사랑에 대한 화려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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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티스트매거진=권오경]

   
▲ 출처: 네이버 포토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일, 차마 상상해보지 못한 일들을 가까이서 지켜봄으로써 그들이 느낄 고통과 환희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고 이를 통해 유희를 얻는 것이 영화의 역할 중 하나다. 로렌스 애니웨이는 참 잘 꾸며진 사진전같은 영화다. 다채로운 색상, 파격적인 연출과 기묘한 패션, 화장법, 독특한 카메라 앵글, 예상치 못한 적막과 적절한 타이밍에 들려오는 장르를 뛰어넘는 노래들. 

   
▲ 출처: 네이버 포토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굉장히 판타지적이다. 하늘에선 형형색색의 빨랫감들이 눈처럼 쏟아져 내리며 자동차 밖의 비오는 풍경은 마치 그들이 물 속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거리에 멈춰선 사람들의 시선은 어쩐지 조금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며 동시에 그들의 저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호기심과 입가에 스치는 냉소, 약간의 거리낌 등이 영화의 몽환적인 느낌을 살려낸다. 이런 비현실적인 연출에도 불구하고 내용적인 면에서 프레드와 로렌스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로렌스가 누구이든간에, 남자이든, 나이가 몇이든, 게이이든, 여자이든간에 모든 조건을 뛰어넘어 존재하는 사랑은, 프레드에게 존재하지 못했다. 

   
▲ 출처: 네이버 포토

   
▲ 출처: 네이버 포토

그런 사랑은 프레드에게 너무나도 ‘이상적’인, 하늘 위에 떠 있는 구름같은 것일 뿐이었다. 남편에게 가발선물을 해준 적 있냐는 프레드의 질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 옆에 있는 누군가를 이미 사랑하게 되었다는 이유로,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하건 어떤 사람이건 간에 ‘상관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또, 사회로부터 외면받는 나의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이해해야만 사랑일 것일지, 정말로 사랑하면 이해가가능한 것인지. 프레드는 로렌스를 사랑했고 또 이해하는 듯 보였지만 스스로를 로렌스의 그 높고 넓은 세상에 올려둘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사랑과 이해가 하나라면, 자신의 아들보다도 더 사랑한다던 로렌스를, 프레드는 어째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일까. 로렌스는 정체성을 마음껏 펼치지 못했던 애벌레 시절을 견디고, 마침내 찬란한 날개를 달아 나비가 되어 그 환희를 맛보지만 프레드는 여전히 땅에 붙어 살고 있는 존재였다. 둘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서 그들만의 언어로 소통하고, 웃고, 공유했던 지난 추억들만으로 로렌스의 정체성을 받아들이기란 프레드에게 너무나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어쩌면 사랑은 둘만의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고상한 감정놀이가 아닌, 사회의 그물망 안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대기층을 넘어가버리면 존재할 수 없는 공기같은 것은 아닐까. 

   
▲ 출처: 네이버 포토

로렌스와 프레드가 찾던 것도 결국엔 행복이다. 숨이 막히게 하는 것에서 벗어나 그들을 숨쉬도록 하는 것에 대한 갈증으로 행복을 앗아가는 것에 대한 리스트를 만들고, 무엇이 그들에게 행복인지 끊임없이 되뇌이는 것처럼 보인다. 행복에 대한 그들만의 기준처럼 영화는 하나의 작은 연결고리-예를 들어 빨간색이면 다음 화면에 나오는 빨간 네온사인의 미스테리한 가게들-들이 병렬적으로 나열된 장면들은 영화의 기묘한 분위기와 특색을 한 층 더 심화시켜준다. 물론, 단순한 나열만이 아닌 현재와의 긴밀한 연관관계로 계속해서 나레이션이 과거의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다. 현재에 이루어지는 인터뷰에서 ‘물 밖의 머리’ 라는 소설의 한 챕터에 대한 물음에 로렌스는 이렇게 답한다. 

   
▲ 출처: 네이버 포토/빨간 조명의 여자

“ 제가 어렸을 때 샤를 빌의 삼촌 댁에서 항상 놀았어요. 사촌들과 함께요. 수영장이 있어서 수영도 하고 누가 잠수를 오래하나 내기도 했었죠. 그리 어렵지 않아요. 마지막까지 물 속에 있으면 이기는 거죠. 사촌들은 금방 포기했고 난 계속 있었어요. 언제까지 있을지 몰랐어요. 그러다가 튀어나왔죠. 가슴이 터지기 바로 전, 죽기 일보 직전에요.”공교롭게도, 이러한 인터뷰 나레이션 다음에, 뉴욕에 가자는 프레드에게 마침내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게 되는 그 순간 그들이 있는 차는 세차 중이다. 물 속에 숨을 죽이고 버티고 있던 로렌스를 암시하듯이. 그리고 그는 말한다. “더는 못참겠어. 죽을 것 같아. 난… 곧 죽을거야”

이로써 로렌스는 애인(프레드)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고 물 밖을 빠져나온다.

영화의 주제가 특이한 부분도 있지만 그것을 관객에게 보여주는 연출또한 그에 못지않게 특이하다. 색감이 화려한 것외에도 요즘엔 잘 쓰이지 않는 줌 인 촬영방식이라든가, 인물이나 대상을 가운데에 두고 대칭시키는 방식, 극적인 장면에서도 오히려 정적인 분위기를 내세워 숨소리를 강조한다든가 하는 독특한 연출방법이 눈에 띈다. 

   
▲ 출처: 네이버 포토/블랙섬
   
▲ 출처: 네이버 포토/블랙섬

무엇보다도 포스터에서 볼 수 있는 빨래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블랙섬’ 장면이 인상깊다. 마치 런웨이를 하듯 당당한 그들의 뒷모습과 마침내 행복해보이는 그들의 미소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옷가지들의 알록달록함과 잘 맞아 떨어졌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첫 장면에서 우리를 호기심에 가득 차게 했던 몇몇의 눈빛과 시선들은 로렌스가 “치마를 입고 끝까지 가보고 싶어졌다” 며 물 속에 빠져든 순간 ( 직장에서의 커밍아웃) 해소된다. 흘러나오는 음악과 로렌스의 걸음걸이, 눈빛 그리고 구두의 색 전체가 조화를 이루며 그가 드디어 물 밖으로 나와 (혹은 물 안으로 뛰어들어) 당당히 우승을 맛보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폭넓은 음악들과 섬세한 멜비 푸포의 연기, 여기에 자비에 돌란의 살아있는 감각을 대변해주는 인물의 의상까지. 특이하다 못해 서툰 듯 완전한 어울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불완전한 조화로부터 첫 장면의 미스테리한 그들의 눈빛의 원인을 알게 되고 왠지모를 짜릿함과 통쾌함까지 맛보게 된다.

   
▲ 출처: 네이버 포토

사실 긴장감있는 내용이 담기지 않은 대사란 지루하기 마련인데, 함축적인 대사 외에도 볼거리, 들을 거리가 많은 <로렌스 애니웨이>는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되려 짧게 느껴질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가 상상해보지 못한 일을 봄으로써 간접적으로나마 그들의 환희와 기쁨, 행복을 느끼고 그들의 슬픔, 고통 그리고 비애를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영화의 역할 중 하나이다. <로렌스 애니웨이>는 우리들이 느껴본 사랑과 세상에 존재할, 이보다 더욱 현실스럽고도 고통스러우며 화려할, 차마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한, 그들의 사랑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기회라는 점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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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경 기자
okyung1205@thearti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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