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사람 얘기해 줄게.
며 칠 전 사랑하는 그녀와 헤어진 주위
그냥 아는 사람
힘들고 많이 슬퍼하던데, 그냥 그냥 아는 사람 얘기
– 내가 아는 사람 얘기 / S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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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 찌질이 산이의 ‘아는 사람 얘기’의 노랫말이다. 마치 가슴 아픈 이별 이야기가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라 친한 친구의 이야기인 것처럼 소개하는 이 노래는 분명히 이별노래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왠지 모를 웃을 자아낸다. 버거운 감정소모 속에서도, 이 아픔 도한 주위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 담담하다 못해 유쾌하게 말하는 산이의 노랫말은, 숨길 수 없는 슬픔 속에서도 넘치는 자기애로 자신을 감싸는 천경자 화백의 그림과 닮았다. 노래를 듣는 모든 사람이 산이가 지칭하는 ‘그냥 아는 사람’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천경자 화백의 그림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자들에게는 자유로운 여자로서 살고자 했지만 한의 굴레에서 평생 몸부림치던 천경자 본인의 모습이 대놓고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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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사람의 그림을 한 점 소유하고 있다면, 말 그대로 삶의 한 점일 뿐이지만, 수 십, 수 백의 사진이 모인다면 역사가 된다. 서울 시립시립관에 기증된 천경자 화백의 작품 93점을 쑥 훑고 나오면, 그녀의 굴곡진 삶 속에서의 심경변화를 생생히 느낄 수 있다. 때로는 꿈꾸는 한 소녀로, 때로는 상처받은 여인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천경자 화백의 그림을 보면, 누구보다 불같이 사랑하고, 그 불이 태우고 지나간 상처 때문에 아파했을 모습이 그려진다. ‘사랑이 깊으면 외로움도 깊어라’라는 천경자 화백의 수필집 제목부터 꽃에 가슴이 질려있는 여자의 그림까지, 전시회 내내 잊을 수 밖에 없는 사랑 때문에 슬퍼하고, 슬픔에 취해 붓을 놀려대는 천경자 화백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미워하고 억울해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천경자 화백은 자신의 삶에 가득 낀 ‘한’까지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법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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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화백의 그림에서 가장 이목을 끄는 오브제는 대표적으로 세 가지다. 여자, 뱀, 그리고 꽃. 이 세 가지의 오브제가 천경자의 삶에서 어던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쩌다가 그렇게 ‘한’이 넘치는 삶을 살았는지 친절한 팜플렛을 보고 일일이 해설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아무리 사실이라 한들 보는 우리에게 의미가 있어야 할 의무는 없다. 그림을 관객으로서 보는 순간만큼은 그 그림이 천경자의 것이 아니라 나의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림들 속에서 자유롭고 싶어 발버둥치는 천경자 화백의 모습을 보았고, 여자, 뱀, 그리고 꽃 중 특히 꽃을 참 예쁘게 그리는 화가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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