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양효주]
만인을 위한 아름답고 착한미술,
공공미술 & 장소특정적미술
-‘공공’, ‘공동체’의 의미를 미술에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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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lue Bear, Colorado Convention Center | ||
‘예술을 위한 예술’(Art for Art sake) 을 주장했던 모더니즘 미술은 삶과 분리된 고유의 영역에 머물며 오직 미적 순수성과 형식주의를 강조할 뿐이었다. 그러나 포스트모던사회로 진입하면서 변화된 사회상은 기존의 모더니즘 미학의 지위를 박탈시키고 미술에게 삶과 통합할 것을 요구했다. 더불어 미술기관 내에서는 그간의 미술제도가 미술과 삶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구조로 기능해 왔다는 자성적인 비판이 일었다.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조류는 삶과 미술의 단절을 극복하면서 소통과 통합의 미술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이끌었고 변화된 시대의 요청에 따라 ‘공공미술’(Public Art)이라는 뉴 장르가 탄생하게 되었다.
공공미술이란, ‘공공장소에 설치된 미술’을 일컬으며 야외 조각에서부터 벽화, 대지미술, 그리고 도시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을 포괄한다. 또한 공공미술은 정통적인 미술 전시공간인 미술관,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도시의 공공영역에서 다양한 예술적 형태를 갖는다. 그런데 이 공공미술의 특징과 전개양상이 1970년도를 기점으로 달라진 것이 흥미롭다.
1970년대 이전의 관례적 공공미술
1970년대 이전, 모더니즘식 공공미술은 작품이 설치되는 장소나 관람자를 고려하지 않고 유명 미술가의 작품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모더니즘식 공공미술은 ‘공공성’이 부재하는 것으로, 건축물의 장식으로서 혹은 도시 홍보의 수단으로 기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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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he Chicago Picasso, 1967, 출처:구글이미지 | ||
“피카소가 당시 결혼한 부인 재클린(Jacqueline Roque)과 자신의 애완견 이미지를 혼합한 것으로, 작품이 위치하는 시카고 광장과는 주제 상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다. 여기서 공공장소는 그 장소가 가지고 있는 환경적 맥락과는 무관하게 작가에 의해 예술적 특성이 부여되기를 기다리는 추상적인 빈 공간으로 설정되었던 것이다”
-안세령, 「‘행동하는 문화(Culture in Action)’의 활동을 통해 본 확장된 공공미술 개념」,2011, p.17
“모더니즘식 공공미술 작품들은 야외라는 물리적 장소에 놓여 있다는 점과 작품의 크기나 규모를 제외하면, 그 자체만으로 ‘공공’미술이라고 할 만한 특성을 갖고 있지 않다”
-권미원『장소 특정적 미술』,현실문화, 2011
1970년대 후반, 미니멀리즘의 ‘장소 특정적’ 개념의 공공미술
70년대 후반, 모더니즘식의 공공미술을 벗어나 작품을 둘러싼 환경인 ‘장소’와 ‘작품과 장소의 맥락’을 고려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공공미술의 ‘장소’(site)에 대한 논쟁이 대두되면서 작품과 그것을 둘러싼 환경에 주목하는 보다 확장된 형태의 공공미술 작업이 행해진다. 이것이 ‘장소특정적미술’(Site Specific Art)의 등장이다.
미니멀리스트들은 외부 환경적 요소들을 작품 속에 포함시키고자 하였다. 따라서 작품이 놓이는 장소는 중성적 공간인 화이트 큐브를 넘어서, 공간과 빛, 온도, 그리고 관람자의 경험까지 포괄하는 특수한 공간으로 전환되었다.
이때 ‘장소’라는 의미는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직접적인 신체적 공간이 되고 더 나아가 담론적(현상학, 사회적, 정치적)이고 유동적인 공간으로 확장된다. 다시 말해 통계나 사회학에서 다루는 담론적 문제가 미술의 영역에서 받아들여져 ‘보이는 물리적 장소가 보이지 않는 담론적 장소로 이동’ 으로 장소의 의미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관람 주체 각자의 신체적 현전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 공간의 연장과 시간의 지속을 직접적으로 감각하는 가운데 단일하고도 다중적으로 경험되는 것이다.”
-권미원,『장소 특정적 미술』,현실문화,2013, p.27
모더니즘 예술을 구성하는 3대 요소는 ‘작가’, ‘작품’, ‘관람객’이었으나 60년대에 미니멀리즘에 이르러서는 ‘오브젝트’, 작업의 결과보다는 ‘작품 제작의 과정’이 중요 요소가 된다. 이는 일시성·한시성을 강조함으로써 예술 작업이 이루어지는 ‘순간’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에 따라 관람자의 역할도 영향을 받아 과거의 수동적 위치에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능동적 위치로 변모한다. 미술가는 창조자가 아닌 설계자로서 관람자와 협업을 통하여 작품을 일구어내고 작품의 속성에 따라 미술작업의 과정 자체가 완성 작품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장소특정적미술을 요약하자면 신체적 현전(Presence)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here and now), 실제의 장소가 갖고 있는 서사적 공간에 작품을 설치하여 예술적 담론을 담는 미술이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여기서 주목할 점은 불특정 다수로 전제되어 있던 관람자를 ‘공동체’로 구체화시켰다는 것이다. 공공미술은 더 이상 공공장소에 놓인 미술 오브젝트가 아니라 공공의 담론이며 이것은 ‘공동체간의 참여와 논의’로서 그 의미가 심화된다.
장소특정적 미술의 대표적 예를 꼽아 그 의미를 더 살펴보자.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기울어진 호Tilted A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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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ichard Serra, Tilted Arc | ||
높이가 3m 65cm, 길이가 36.5m 를 자랑하는 이 거대한 벽과 같은 작품은 미니멀리즘의 대가 리차드 세라의 작품<기울어진호>이다. 뉴욕 맨해튼 연방광장 앞에 설치된 그의 작품은 그것의 큰 스케일 때문에 통행을 방해받는다는 많은 원성을 발생시켰다. 뉴욕시는 쏟아지는 민원 때문에 작품<기울어진호>를 철거하고 다른 장소에 옮겨 설치할 것을 리처드에게 제안한다. 그러자 이에 반대목소리를 높인 리처드는 연방정부와 무려 9년에 걸친 법정 공방과 공청회를 거치게 된다.
이때 리처드가 내세운 주장은 “작품이 놓여진 ‘바로 그’ 장소를 떠나면 파괴되어야 한다” 곧 장소와 작품은 땔래야 땔 수 없는 불가분한 관계에 있다는 ‘장소특정적’미술의 개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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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ichard Serra, Tilted Arc | ||
리처드의 말은 작품을 계획할 때에 특정 장소를 염두해두고 그것의 일부가 되도록 제작하기 때문에, 작품/작업이 그 장소를 떠나면 작품의 본래의도, 의미, 개념 자체가 파괴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법원은 공공의 권리에 손을 들어주었다.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호>는 1989년 철거되었다. 이 사건은 미술가의 표현의 자유와 공공의 권리가 대립하며 마찰을 일으킨 사례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공공미술 및 장소특정적미술의 주요 쟁점을 단순히 ‘어느 장소에 어떤 오브젝트가 놓여 졌는가’가 아닌 ‘공공의 공간에서, 공공의 담론을 담은, 공공을 목적으로 한 것인가?’에 둘 필요가 있겠다. ‘그 장소’에서 ‘그 곳의 구성원들이’ ‘그 장소의 내러티브’를 담는 공공미술. 이러한 작업들은 점차 지역사회의 이슈를 구체화시키고 미술을 통하여 지속적인 담론을 형성시킨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대화와 협력을 통한 ‘소통하는 미술’, ‘행동하는 공동체 미술’. 이는 진정 이 사회를 성숙하게 하는 매체(medium)로서 추호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예술적 가치를 잃지 않으면서도 지역주민들의 삶에 다채로운 풍요와 의미를 제공함으로써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미술. 물리적으로나 개념적으로나 또한 심미적으로나 나무랄 데 없는 참으로 ‘착한’ 미술이다.
[참고문헌]
단행본: 장소 특정적 미술, 현실문화, 권미원, 2013
석사학위 청구논문: ‘행동하는 문화’의 활동을 통해 본 확장된 공공미술 개념, 이화여자대학교,2011, 안세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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