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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n.wikipedia.org | ||
[디아티스트매거진=민소영]
사람을 사냥하면서도 사랑하면 동물을 면한다는 아이러니와 사랑하지 않고 홀로 존재할 수 있지만 사랑할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한다 – 극단적인 설정을 통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은 지극히 단순하다. 속박하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나 쟁취하는 것, 그것이 기본 욕망이고 사랑이다. 자유를 쫓아 바람을 따라가보면 도달하는 곳에 사랑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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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네이버 영화 | ||
필자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블랙코미디를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영화 <더 랍스터>에서도 그 블랙한 유머들은 다소 기분 나쁘게 혹은 어이없게 등장한다. 하지만 필자가 이 유머를 극찬하는 이유는 그 것이 인간을 너무 잘 표현하고 드러내기 때문이다. 진중히 살아가는 삶 속에서도 예기치 않게 감독이 표현해오던 우스꽝스런 하지만 시니컬한 장면들을 발견하곤 한다. 블랙코미디의 진수를 보여주는 방식은 다소 폭력적이고 극단적이다. ‘사랑’을 할 수 있는 적임자를 찾기 위해 코뼈를 부수어 피를 내는 것을 마다 않는 남자, 자위를 한 사람에게 벌로 토스기에 손을 넣어버리는 호텔 지배인. 노래와 같은 감수성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규율 때문에 모두가 이어폰을 끼고 파티를 벌이는 장면은 충격적일 정도로 우습다. 상영관에서 여기저기 실없는 웃음소리가 들릴 정도로 기괴하다. 배경음악과 풍경만 달랐더라면 그것이 우습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장소와 방법이 다를 뿐인데 그 것이 주는 기괴함은 이 영화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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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thefilmstage.com | ||
처음 포스터를 접한 이들은 아름답지만 슬픈 사랑을 상상했을 것이다. 슬프다기에 이 영화는 감성을 증폭시키기보다 멀리서 바라보게만 한다. 이질감이 주는 일종의 편안함이랄까, 기발한 상상이지만 그 상상을 통해 현실 속의 사랑을 바라보게 하는 힘은 무서울 정도로 날이 서있다. 처음 사랑이 필수적으로 요구되어진 환경 속에서 그나마 자신과 닮은 사람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데이비드(콜린 파렐)는 그러한 사람을 찾지 못한다. 흥미를 잃고 있는 그는 오로지 살기 위해 그나마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도 만날 수 있는 ‘잔인한 여자’를 만난다. 자신의 모습을 속이고 만난 커플 생활의 최후는 친형을 살인한 그 여자를 도로 동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었다. 사랑할 때 자신의 모습을 아닌 척 가꾸는 사람은 충분히 많을 텐데 왠지 모를 경각심에 등골이 싸늘해지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데이비드의 친구였던 절름발이 남자(벤 위쇼)의 경우는 달랐다. 그들은 무사히 요트생활을 마치고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식탁 앞에서 탁구공 크기나 말하고 있는 것을 보아 그들이 정신적으로 소통하고 사랑하는 사이 같아 보이지 않는다. 탈출을 위한 구멍을 찾기 위해 애타게 협력하는 동반인으로만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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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네이버 영화 | ||
인간의 모습으로 살아서 나가기 위해 맺어진 커플들의 모습 속에선 행복보다는 스스로의 생명과 안위에 대한 이기심만 넘칠 뿐이었다. 가까스로 보여지기 애정이 존재하는 것을 증명하고자 미소짓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얼마나 가벼움을 느꼈던가. 데이비드는 이 곳에서 탈출을 감행하여 외톨이 무리에 끼게 된다. 외톨이의 무리는 정반대이다. 혼자여야만 하며 심지어 자신의 무덤을 파고 스스로 알아서 들어가 죽어야 한다는 말을 건네는 리더(레아 세이두)는 호텔의 지배인들과 다를 바 없이 냉정하고 차갑다. 사랑에 빠지는 이들을 엄벌하는 무리 속에서 데이비드가 자신처럼 근시인 여자(레이첼 와이즈)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서로 닮은 점이 있는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것을 보면서 필자는 처음에 이것도 나름의 규율과 구속에 익숙한 사람들의 선택방식인가 싶었지만, 생각하고 보면 자신과 닮은 그림자를 상대방에서 발견할 때 우리는 사랑에 빠진다고 하지 않던가? 아마도 그는 그 것을 그녀의 아름다운 눈 속에서 발견했으리라. 들키지 않기 위해 그들만의 몸짓으로 암호를 만들어 대화하는 모습은 영화 중 가장 감동적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떤 몸짓만 해도 그 기분과 이유를 알 수 있어.” 라고 말하는 전형적인 연인들 사이의 대사가 극한의 상황에선 대화의 필수적인 요소로도 작용하는 것이다. 오랜 시간 공들여 몸짓을 알아가는 것도 사랑을 여실히 보여주겠지만, 1주일이 지나고서부터는 몸짓만으로도 대화가 가능했다는 그들의 모습 또한 강한 사랑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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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네이버 영화 | ||
문제는 언제나 방해요소이다. 근시인 여자의 일기를 주워 읽어버린 외톨이의 리더는 결국 그녀를 눈멀게 만들어버린다. 도망치기로 약속한 전날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되어버린 그녀에게 그는 사물 맞추기 놀이를 통해 다른 감각으로 시력을 대체해주고자 노력한다. 지극정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도망치고 싶어하는 그의 눈을 보면서 이들의 사랑은 진심이리라 믿게 만든다. 하지만 또 다른 전환점을 만날 때마다 다른 방식으로 행동해가던 인간을 논해온 이 영화의 결말에 다가갈수록, 그들이 외톨이 리더를 따돌린 채 도시로 도망가는 것에 성공해갈수록, 어딘지 모르게 그 믿음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어간다. 자신이 하는 말에 즉각 반응하는 눈먼 여자를 앞에 두고 그는 웃어보라고 말한다. 그녀는 그녀가 받고 있는 햇살만큼 환하게 웃는다. 그는 그녀와 같이 눈이 멀기로 결심하고 얼마 걸리지 않을 거라며 칼을 들고 화장실로 향한다. 여기서 과연 그가 자신의 눈을 포기하고 그녀를 닮고 싶을 정도로 그녀를 사랑하는 것인가에 대해 영화가 끝난 후 이런저런 의견이 많이 오가기 마련이다. 그녀의 곁에 남을 것이다, 떠날 것이다 부터 그는 시력을 포기할 것이다, 아닐 것이다 까지 사람마다 해석하는 것이 다른 점이 바로 그 사람이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것의 가치일 것이다. 답은 항상 존재하지 않는다. 답이라는 것이 존재하기엔 인간은 너무 복잡한 존재이며, 한 상황을 만드는 요소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사랑의 크기와 방식은 다르고, 상황에 따라서도 달라지리다. 아무리 극단적인 묘사와 혼돈의 환경을 보여준 영화이지만 결말만은 오로지 우리에게 맡긴다.
당신이라면 사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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