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 아티스트매거진=어한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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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포스터[ⓒ네이버 영화] | ||
스산해 지는 가을, 어느새 찬바람이 손끝을 훑어지나간다. 차가워지는 온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에는 이성을 만나는 것도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 마음이 훈훈해 지는 어떠한 일이 생기는 것만큼 뜨거운 게 없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살아가면서 마음 따뜻해지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냉정하게 말해 희박한 편이다. 오로지 한 번으로 끝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바쁜 우리에게, <어바웃 타임>의 남자주인공 팀처럼 이틀을 살 여유를 열고 살아가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다보니, 우리는 힐링(healing)을 시간 내서 찾는다. 그런 우리들에게 지금보기 딱 좋은 영화 한 편이 있다. 가을의 찬 기운도 따스하게 감싸는 영화, <코러스(Les Choristes, Chorists, 2004)>가 바로 그것이다. 아마, 보고나면 포근해진 마음에 잠이 들 때까지 옅은 미소가 남아있을 것이다. 영화의 순간, 순간을 떠올릴 때 마다 지어지는 미소 덕에 엄청난 긍정인으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어떠하리!) 이리 저리 꽉 막힌 나의 마음이 잠시 웃는다면 그 정도의 시선은 얼마든지 기꺼이 받아줄 수 있을 것 같다. (굳이 좋은 일이 일어나길 바라지 않아도 웃을 수 있으니 말이다. 실제로 이 영화를 보고, 한 번만 미소 지은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랑을 마음속에 간직한 클레몽 마티유(제라르 쥐노분)가, (학교라지만 보육원이나 다름없는) 퐁드레탕에 신임교사로 들어와 파직되기까지의 이야기로, 이야기 안에는 아이들의 순수함과 어른들의 잣대가 대비되고 갇혀버린 무질서 속에서 피어오르는 관심과 사랑의 힘이 들어 차 있다. 전쟁 통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거나, 사정상 일반학교에 보낼 수 없거나, 버려지거나 등 각각 저만의 사연이 있는 아이들을 모아두고 최소의 기본 교육을 하고 있는 퐁드레탕. 이 곳은, 피치 못 하게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기 때문인지 장난이 심하고 괜스레 어긋나려고 안간힘을 쓰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교장이 내세운 철칙은, ‘Action-Reaction : 행동에 대해 교사도 행동, 즉 처벌한다’이다. 그런데, 열악한 시설에서 부모님을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부모님이 있는 아이들만) 보고, 항상 조용히 해야 하며 조금의 실수나 장난에도 언제나 처벌이 기다리는 곳에서 과연 아이들은 아이들일 수 있을까. 책에 교장 흉을 봤다고 10살 남짓 된 우리(내)가 반드시 독방에 갇혀야 한다면, 우리는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사람으로써의 존중을 일체 받지 못 하는 느낌은 분명할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초반 20분에 나오는, 종소리가 울리면 구호 소리와 함께 발 맞춰 내려오는 아이들의 발걸음엔 일말의 희망도 힘도 없어 보인다. (종소리가 울린다는 것은, 교내에서 사건이 발생 해 학생 전체를 모아두고 범인을 가리며 처벌하겠다는 의미이다.) 이 곳의 선생님들을 통해 이야기를 전해들은 마티유는, 아이들이 조금 남다르다는 것을 알고 그도 조금 다르게 대하리라 마음먹는다. Action-Reaction으로 처벌하는‘듯’하면서 아이가 잘못을 깨닫고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게끔 한 것이다. 실제로 한 아이와, 교장실에 데려가 처벌을 받게 하는 대신 자신의 장난으로 인해 다친 사람을 간병하기로 약속한다. 이렇게 마티유는 아이들이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생각을 하게했고 때론 아이들을 감싸주기도 하며 조금씩 다가갔다. (이런 마티유를 보고 있자면 키팅이 떠오르게 된다. 프랑스판 <죽은 시인의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마티유와 키팅은 닮아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우리(나)를 잡아준 한 사람이 있듯이, 이 아이들에게는 마티유가 바로 그런 존재였다. 다시 말해, 아이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 관심을 ‘표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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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꿈을 적어보라고 한 뒤, 페피노에게 관심을 갖는 마티유[ⓒ네이버 영화] | ||
흔히들 사랑의 반대말이 ‘사랑했었다.’ 라고 하지만, 필자는 사랑의 완전한 반대는 ‘무관심’이라고 생각한다. 애초에 무엇을 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 상태 말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 무관심은 서운함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이렇게 관심의 힘은 그 무엇보다 관계에 있어 크게 작용되며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마티유가 처음으로 아이들에게 이 관심을 보인 것이다. 덕분에 아이들의 모습과 반응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고 이 변화의 시작은 음악-합창부를 만나 더욱 확실해 지고 예뻐진다. 그리고 우리는 알 수 없이 마음이 따뜻해지고 때로는 벅참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미소는 덤으로 지어지며 마치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처럼 말이다.) 마티유가 기숙사에서 우연히 노래를 듣고선, 아이들을 위해 노래를 작곡하고 합창부를 꾸려 수업시간에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가장 활기를 띈다. 아이들과 아이들, 아이들과 마티유 간, ‘음악이라는 대화’가 이루어지면서 하나씩, 하나씩 맞춤의 소통이 생겨난 것이다. 특히, 타고난 음색과 리듬감을 가진 모항주(장-바티스트 모니에분)를 집중적으로 가르치면서, 모가 나 있던 모항주는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흘러나오는 아이들의 하나 된 목소리를 듣고 또 보고있자면 절로 감탄이 나오고 괜스레 뿌듯하기까지 한다. (모항주의 솔로 부분에서 특히 더 감탄하게 되리라 단언한다. 실제로 이 배우는 프랑스의 유명한 합창단 생마르크의 단원 중 한 명이다.) 아이들이, 무대에 서서 새 하얀 셔츠를 다 같이 입고 제각기 다른 얼굴에서 같은 입모양으로 하나로 맞춰지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굳이 바라보지 않아도 따스함이 귀로 전해져 온다. 필자는 이 장면을, ‘따뜻함이 울려 퍼지는 순간’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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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무대에 올라 합창하는 아이들과 지휘하는 마티유[ⓒ네이버 영화] | ||
닫힌 공간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이 ‘마음을 열고 입을 맞추는 마음의 단결’에서 전해지는 힘은 그 무엇보다 단단했고 쉬이 이루어지기도, 쉬이 깨지지도 않을 따스함이었다. 마음이 맞았을 때에 발산되는 그 강한 온도를 영화를 통해 느낀다는 것은, 우리가 직접 그 주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받아낸다는 점에서 더 확실한 따스함이 되어 전달됨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 영화의 따스함에는 울림이 있다. 하나되는 아이들을 바라볼 때 전해지는 감동의 울림이자, 하나 된 아이들의 눈빛에서 전해지는 고마움의 울림이 그것이다. 추운 가을이 다가오는 이 때에, 강한 온도를 주위에서 찾을 수 없다면 이 영화를 통해 확실하게 따뜻해 질수 있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 미소 짓는 우리를 보며 또 미소 짓게 될 것이 분명하기에, 반드시 이 시간은 두고두고 따스하게 남을 것이다. 따스함을 오래도록 마음에 간직할 수 있을 만큼의 강한 온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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