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티스트매거진=김정아]
한국 현대사와 그 호흡을 같이해온 우리 시대의 민중판화가 이철수 작가가 원불교 100주년을 맞아 자신의 오랜 관심사였던 대종경 연작 판화 전시 『네가 그 봄꽃 소식 해라』를 선보인다. ‘대종경’은 소태산 대종사가 어려운 문장과 화려한 수사를 버리고 쉽게 이해되도록 편찬한 원불교의 최초 한국어 버전이다. 이 작업은 애당초 특정 종교를 선전하기 위한 것이 아닌, 당대의 화두들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이철수 작가의 정신과 원불교의 사상이 만나서 공명한 깊은 사유의 결실이었다. 동양의 자연관을 바탕으로 한 정신의 언어와 단아한 화풍으로 일상의 깨달음을 새겨온 작가는 3년 여간 대종경을 수없이 곱씹으며, 그 뜻을 목판에 새기고 종이에 찍어내 채색한 결과물이 총 203점의 판화로 태어난 것이다. 그는 그 말씀들을 대중들이 더욱 쉽게 이해하도록 판화로 형상화함으로써 간결한 선과 작은 움직임에 그 핵심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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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철수, <봄바람은…> | ||
이철수 작가는 1980년대 폭압적인 사회에 보내는 저항의 언어로서 격렬한 선묘 판화 작업을 선보인 바 있다. 판화를 통해 현실 변혁 운동에 매진했던 그는 1988년 무렵 자기 성찰과 생명의 본질에 대한 관심으로 미술가로서 영역을 확대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의 판화세계는 평범한 삶과 일상사를 관조하면서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찾아내거나, 다채로운 자연을 소재로 삼아서 그 안에 깃들어 사는 인간의 면목을 다양한 관점에서 제시한다. 조용하고 차분한 언어로 옮겨진 세상과 일상사의 이야기들은 따뜻하고 정겨운 한편, 초월적이어서 쓸쓸하기도 하다. 작가는 연민의 눈으로 내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자 하고, 평범한 일상이 드높은 정신으로 가는 피할 수 없는 길이라고 말한다. 낮은 목소리로 존재의 경이를 이야기하고 삶의 긍정을 노래하는 작품 하나 하나에 담긴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마음공부’의 교본이 되어주었다. 담백한 화풍과 여백의 여운에 무심히 빠져 있다 보면 문득 무엇인가를 깨우치게 되는데, 이는 선문답식 글귀 끝에 도드라지는 느낌표처럼 마음에 짧고 강렬한 파장을 일으켰다. 더불어 간결하고 단아한 그림과 선(禪)가의 언어 방식을 이끌어 온 촌철살인의 짧은 글귀에는 현대적이면서도 전통적인 깊이가 느껴졌다. 시(時), 서(書), 화(畵)가 한 화면에서 조화롭게 공존하는 형식을 통해 전통적 회화를 현대적 판화로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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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철수, <참회문> | ||
이철수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미술가의 신분을 잠시 내려 놓고, 자기 수행의 미덕을 통해 정신적인 목마름을 채워나가는 구도의 여정을 지나온 것으로 보인다. 오로지 칼을 쟁기 삼아 목판 경작에 매진하며 평생을 목판화로 용맹정진 해 온 작품 활동은 수도자의 고행과 겹쳐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므로 책 속에서 만나게 되는 작품들은 대종경과 이철수의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는 대종경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봄꽃 소식’이었다고 한다. “봄마다 꽃이 핀다” 이 얼마나 귀한 소식인가. 하지만 이토록 귀한 소식을 사람들은 듣지 못한다. 아마 반쯤 죽어있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대종경 판화는 반쯤 죽어 있는 나무에게 “내년 봄에도 꽃이 핀다”고 소식을 알려주는, 그래서 끝끝내 살아 꽃을 피우라는 작가의 귀뜸이다. 아무리 좋은 바람이라도 살아 있어야 느낄 수 있고, 아무리 아름다운 꽃이라도 살아 있는 나무라야 피워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봄꽃 소식’이다. 이제 우리가 그 ‘봄꽃 소식’이 될 차례다. 겨울의 문턱에서 아직은 결이 거친 마음 밭에 고운 봄꽃 하나 피워 올리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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