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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네이버 영화 | ||
[디아티스트매거진=김범진] 단순한 영화 이야기가 아닌 영화에 대한 감상은 언어로 그려내기가 애매하다. 어떤 영화는 너무나 큰 감정의 지하실로 논리정연하게 관객을 끌어당겨서 더욱 그렇다. 수많은 아날로지들이 아나토미가 되어가는 과정이 그렇게 무의미한 영화도 흔치 않다. 고맙게도 2014년에는 유독 그런 영화들이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개중에서도 이번에 소개하는 마이크 카힐의 ‘I Origins(2014)’ 앞에서는 많은 생각들이 그만 무기력해지고 만다.
감독은 널리 알려지지는 않은 편이다. ‘I Origins’는 그가 각본을 쓴 두 번째 영화인데 씁쓸하지만 마찬가지이다. 전작인 ‘Another Earth(2011)’가 특이하게 천문학을 활용하여 라스 폰 트리에의 ‘Melancholia(2011)’와 유사했다면, 이번에는 명백하게 생명과학과 종교를 주제로 내세운다. 은근한 SF 요소가 있지만 장르에 잠식당하지 않고 이를 잘 활용하여 몽롱하고 나른하게 그려졌고, 그런 류의 꿈을 꾸다가 잠시 잠에서 깨면 그 결이 촉각으로 느껴지는 정밀함이 있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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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 filmesegames.com | ||
때때로 꿈을 꾸고 나면, 그리고 특히 그 꿈이 깨어나고 싶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꿈이었으면 나른한 객창감이 든다. 그리움이 가지고 있는 정지된 시곗바늘을 돌려서 방향성을 제거하면 얼추 비슷한 아련함이 될까. 과거에 대한 그리움은 자신이 참여했던 시간과 공간의 기억으로 치유가 가능하지만 꿈은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이 그리움 속에서는 뒤로도 앞으로도 어디로도 찾아 헤맬 곳이 없다. 차라리 길을 잃었으면 할 때, 그러나 그마저도 쉽지 않아 꿈의 그늘에서 잠시 숨만 돌리고 싶을 때에도 현실의 아픔과 슬픔이 풍겨오면 어디로도 피할 곳이 없어지지만 완벽한 절망이란 또 그렇게 쉽게 찾아오는 만만한 것이 아니라서인지 다들 또 살아가나 보다. 이 영화도 비슷하다. 이곳저곳을 종으로 횡으로 도려내고 나면 그 많던 아름다움보다는 질긴 삶의 향기가 마지막에 남는다.
그래도 이해라는 말에는 해체가 부연되지 않는다. 해체는 이해를 쉽게 돕기도 한다. 그러나 좋은 영화에 대한 판단기준이 딱 그 영화를 본 관객의 수만큼만 다양한 바와 동일하게 해체의 방법과 수단도 그만큼 다양하다. 복잡한 영화라 그런지 구글에 검색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만한 많은 모범답안들이 많다. 여기서는 그들과 동어반복을 피하고 순박하게 영화를 추천해보려 한다. 사실 스포일러를 하지 않고서는 말들이 공허해져서 그게 좀 까다롭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나와 일면식이 없겠으나 그래도 내게 양해를 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난 차라리 내가 줄거리를 말하지 않고서라도 그냥 영화를 보라고 격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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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 uproxx.com | ||
감성적인 표현에 부담감이 적다면 함께 다음 장면을 상상해 보자. 달도 별도 없는 어두운 밤 깊은 호숫가에 앉은 당신이 있다. 호기심에 잠시 담근 발은 어느새 서서히 치밀하게, 수면 아래로 빨려 들어간다. 물은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으며 끈끈하여 어느새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당신은 무서움을 느끼지 못한다. 가라앉는 속도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조금씩 지속적으로 증가하지만, 그건 마지막 장면에서 Radiohead의 ‘Motion Picture Soundtrack’이 시작되는 순간 멈춘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 지닌 감수성의 질량에 따라 결정되는 관성이 아마 당신을 계속 가라앉히리라. 그렇게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고, 불이 켜진 뒤에도 깨지 않는 꿈처럼 또는 악몽처럼 여운이 계속된다.
분명히 영혼과 과학이 소재로 사용된 건 맞다. 두 관념은 쉽게 마주세울 수 있는 오래된 친구이고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표면적인 대립이 진행된다. 편을 좀 나눠서 보면 주인공 이안 그레이(마이클 피트 분)과 그의 동료들은 진화론을 증명하려고 하고, 그의 연인 소피(아스트리드 베흐제-프리스베 분)는 영혼을 믿는다는 점에서 각자의 입장이 대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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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 writerlovesmovies.com | ||
그러나 과학과 종교의 대립과 화해, 또는 일시적인 정전과 대안으로 이 영화를 설명하는 것은 너무하다. 물론 그에 대한 생각거리를 주는 것은 맞으나 ‘I Origins’는 굳이 그 간극을 해소하려고 하지 않는다. 큰 수채화 붓에 실수로 진득한 페인트를 묻혀 그린 듯한 배경에 절망은 세심하게 흩뿌려져 있고, 주인공들은 그저 그들이 살아오던 삶의 가치관을 디디고 살아갈 나날들의 일상을 걷다 문득 절망을 밟는다. 이 영화가 아름다운 이유가 영속적인 사랑에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인물들이 밟은 절망의 주머니에서 뻔히 절망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데에도 있다. 때로는 슬픔이 나오지만 슬픔을 끼얹은 희망이 보다 자주 발견된다. 사실 PAX6 유전자나 홍채의 연속성은 그냥 인위적인 탐구과정의 연역적 수단일 뿐이지, 결국 둘 모두 진실이라고 믿고 싶은 사실에 본인들이 가까워지기 위한 경로들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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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 www.holyblasphemy.net | ||
그래서 과학은 전적으로 종교에 대립하지 못하고, 반대로 종교 또한 그렇다. 닥터 그레이는 삶을 만들어 주었던 사랑이 죽음으로 단절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그걸 초월한 영속성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인 과학을 바쳐 증명해내고자 한다. 이 과정은 자기부정적이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다. 말미에서 그는 구원받은 것처럼 보인다: 그는 자신이 발견했다고 ‘믿는다’. 그의 믿음은 그를 구원하지만 증명되지 않는다. 가장 힘이 실린 아름다운 이 장면에서 닥터 그레이는 꿈을 꾸거나 삶을 초월한다. 완벽한 절망이 그에게 찾아오지만, 눈부시던 사랑이 그를 삶의 가장 밑바닥까지 끌어내렸지만 그는 자신이 전부와도 같던 과학적 신념을 제물로 바쳐 없는 지푸라기를 창조하고 결국 동아줄로 만든다. 그의 뒷모습은 깨어나지 못하거나 않는 꿈과 같은 제조된 행복에 빠져든 표정을 하고 있기에 감히 누구도 이를 죽음인지 부활인지 판단하지 못한다.
Red wine and sleeping pills
Help me get back to your arms
Cheap sex and sad films
Help me get back where I belong
(Radiohead – Motion Picture Soundt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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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 네이버 영화 | ||
장면을 만들어내는 영상적인 기술성에도 좋은 평가가 따르겠지만 그보다는 각본의 구조성이 주목받아야 하는 이유가 그 행간에서 비언어적인 앰비언트를 잘 조성하였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분위기의 통일에 사운드트랙도 큰 몫을 한다. 가사를 일부만 가져왔지만 사실 엔딩곡이 영화 전체를 포괄한다고 봐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정도로 상호간 시너지가 대단하다. 극 중에서 ‘사랑’이라는 말은 직접적으로 많이 쓰이지는 않으나 남녀 주인공이 같이 카메라에 잡히면 명백하게 그 감정이 그려진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편리하지만 또 그만큼 폭력적이기도 하다. 이 말의 당위성은 단어가 포괄해버리는 수많은 소중한 감정들이 확보해 준다. ‘I Origns’는 천천히 퍼지는 연막처럼 사랑이라는 말이 덮어씌웠던 감정들과 눈빛들, 교감들을 장면마다 되감아서 펼쳐낸다. 사실 아무도 도덕적이진 않다. 그렇다고 악하지도 않은 인물들은 바로 우리처럼 악의와 선의 둘 다 없이, 또는 둘 모두와 같이 느리지만 진솔하게 서로 사랑하고 또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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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 네이버 영화 | ||
부디 성급하게 의미와 의도를 찾지 말자. 이 영화는 많은 종류의 비슷한 결과물들을 손쉽게 기각한다. 종교나 과학 모두 목적도 수단도 될 수 있다. 주목이 필요한 건 그 둘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거나 않으려는 삶의 다양한 표정들이다. 고백하면 난 아직도 이 영화를 볼 때마다 이제는 알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뒤집히는 경험을 하고 있다. 그만큼 여러 번 더 볼 이유가 많아 행복하다.
아직 이 영화를 만나지 못했다면, 한 번은 꼭 보았으면 좋겠다. 늦가을에 잠시 찾아온 따뜻하고 메마른 비를 닮은 영화이니 부담 없이 편하게 젖어들면 된다. 또 보고 싶어지면 그냥 또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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